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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인터넷, 입에 물린 재갈을 풀라
[김영호 칼럼] 실명제는 정치적 탄압, 인터넷에서 차단된 언로 열어야
 
김영호   기사입력  2007/12/25 [15:00]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에는 아고라(agora)라는 집회장이 있었다. 아고라의 어원이 '모이다'라는 뜻에서 나왔듯이 시민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던 광장이었다. 사상적-정치적 토론을 하던 곳이기에 사람들이 쉽게 모일 수 있는 야외공간을 아고라로 삼았다. 직접민주정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민회를 소집하는 장소였던 것이다.
 
 나라가 커지고 사람도 많아져 모두 모여서 국가문제를 토론하기 어려워지자 직접민주주의는 간접민주주의로 바꿨다. 국민의 대표를 뽑아 의회에서 국사를 논의하는 의회정치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국민은 선거철에만 후보자의 정견을 들을 수 있었는데 도시생활이 복잡해지면서 정견발표회마저 없어져 버렸다. 다만 언론을 통해서 그들의 활동을 알 수 있게 됐다. 언론이 정치와 국민을 잇는 매개자가 된 것이다.
 
 언론이 뉴스와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면 일반국민은 수용자의 입장에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언론이, 그것도 소수자가 뉴스를 취사선택하고 의견과 주장을 통해 여론을 형성해 나간다. 거기에는 국민이 없는 의제여론(pseudo-opinion)이 자리 잡는다. 그 결과 권력이 정치와 언론으로 이동해 민주주의의 본질인 참여정치가 왜곡되어 버렸다.  
 
 그런데 새 천년 개막을 앞두고 쌍방향 언론매체인 인터넷이 일반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소통하는 공론장으로 떠올랐다. 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공간을 초월한 현대판 아고라가 등장한 것이다. 네티즌은 2002년 대선에서 '대통령 노무현' 탄생의 주역이었고 2004년 탄핵정국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2007년 대선에서는 인터넷이 주류언론에 밀려 정치적 의사를 소통하는 공론장의 역할을 잃어버렸다. 
 
▲5일 인터넷 선거실명제 폐지 공대위가 인터넷 선거실명제 폐지기자회견에서 인터넷실명제 폐지하고 선거법 개정하라며 힘찬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정은
 
 대선이 노무현 심판론에 밀려 일방적으로 치러진데 상당한 원인이 있다. 그보다 더 큰 원인은 선거법이 네티즌의 입에 재갈을 물린 데 있다. 선거법 93조(사전선거운동 금지), 250조(허위사실 공표), 251조(후보자 비방)가 그것이다. 웬만한 정치적 의사표현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12월 2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대선과 관련해 인터넷 상에서 삭제된 글이나 UCC(이용자창작물)가 무려 6만5,108건에 이른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하고도 남는다.
 
 무엇보다도 선거법 82조에 따른 인터넷 실명제가 네티즌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봉쇄했다. 세계에서 유일한 국민식별번호인 주민등록번호를 실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인권유린의 수단으로 악용이 가능한 주민등록번호로 실명제를 실시한다는 것은 정치적 탄압이다. 참여민주주의 꽃을 피우기 위해 사이버공간에서 차단된 언로를 열어라. 선거법을 개정해서 4월 총선에서는 네티즌의 활발한 정치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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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12/25 [15:0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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