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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맘대로 "국가보안법 폐지 절대안돼" 외치나?
박근혜의 '국보법폐지 반대'는 언어도단, 악법 폐지해야
 
홍성관   기사입력  2004/07/22 [17:16]
송두율 교수(59세, 독일 뮌스턴대)가 21일 집행유예로 석방된 것을 두고 해묵은 색깔논쟁이 불붙고 있다. 몇몇 보수언론들이 강한 유감을 표시한 데 이어, 여러 보수단체들은 송 교수 체포조를 결성하겠다는 식의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렇듯 송두율 교수의 석방이 가져온 파장은 국가보안법 폐지논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런 와중에 22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열린우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움직임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나왔다. 박 대표는 이날 열린 당 운영위원회의에서 ‘운영상의 문제가 있는 몇 가지를 개정할 수는 있지만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민들도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원하지 않고 있다’며 ‘국가보안법이 갖는 상징마저 무장해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과연 국가보안법이 갖는 상징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국가보안법의 상징은 독재정권의 수호일 뿐이다
 
국가보안법의 존립목적은 제1조 "이 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에 나타나 있다. 즉 국가보안법의 목적은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의 확보에 있다. 사실 이 문구에 대해서 이론을 달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과연 국가보안법의 존속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아니다. 어떤 악법이라도 형식적인 표현에 있어 그 실제 의도를 드러내는 법은 없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그 숱한 독재정권들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지껄였지만, 그것이 거짓이었음은 자명해지지 않았는가.
 
국가보안법의 근원적인 문제는 이 법의 존재로 인해 누가 이익을 보느냐를 따지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따지기 위해 이 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먼저 알아보자.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강행하려고 하자 각계각층에서 분노가 분출됐다. 이 영향으로 제주 4·3항쟁이 일어났으며, 이 사건을 진압하라는 출동명령을 받은 여수·순천지구 주둔 제14연대와 그 인근 주민들에 의해 무장봉기가 이어졌다. 이를 탄압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해진 이승만 정부는 일제 시대 독립투사들을 탄압했던 치안 유지법을 모태로 1948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을 제정 공포했다. 이어 1949년 12월 19일에는 1차 개정이, 1950년 4월 21일에는 2차 개정이 이뤄졌는데, 이는 ‘남조선노동당’을 비롯한 좌익세력의 제거가 목적이었다. 국가보안법 제정 단 1년 만에 118,621명이 투옥되고, 132개의 정당, 사회단체가 강제 해산된 것만 보더라도 이 법의 존재가 누구에게 이득을 안겼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다름 아닌 정권을 쥐고 있는 독재자들이 일등 수혜자였다.
 
그 후 국가보안법은 7차례에 걸쳐 개정되었는데, 5.16 군사 쿠테타가 일어났을 때에는 박정희 군사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바로 지난 국민의 정부에 이르기까지 총선, 경제위기 등 집권당에 불리해지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공안사건, 조직사건을 터트려 난국을 헤쳐 가는 수단으로 삼았다.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했던 김영삼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대선 전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긍정적으로 생각 내지는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이는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통령 되기 전에는 몰랐는데, 되고 보니 필요한 법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국가보안법의 존재는 제 정권에 대한 비판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칼이었기에 그 칼자루를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국가보안법의 존재가 누구를 철저히 옹호해왔는지 알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전면 폐지되어야 한다
 
이런 국가보안법에 대해 개정 또는 폐지해야 한다는 논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 바로 제7조 찬양고무죄에 대한 입장이었다.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는 사례의 90% 이상이 제7조 위반사건이고, 유엔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한결같이 독소조항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도 제7조라는 점이 논쟁의 중심에 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쟁은 수년에 걸친 끝에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그간 2000년 남북공동선언 등 남북관계가 급진전한 배경도 있고, 존립을 옹호하던 측에서도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국제적 시선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제7조가 없어진다고 해서 국가보안법이 저지르고 있는 폐단이 없어지는가.
 
국가보안법의 다른 조항들을 보자. 제3조 반국가단체 구성 등, 제4조 목적수행, 제5조 자진지원·금품수수, 제6조 잠입·탈출 등, 제8조 회합·통신 등, 제9조 편의제공 등, 제10조 불고지죄 등 불고지죄와 같은 항목들은 여전히 인권침해요소로 남는다. 다른 항목들은 형법을 비롯해 다른 법률에 중첩되는 것이 상당수다. 이런 중첩이 생긴 것은 국가보안법이 우리나라 형법이 제정되기 5년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제 정권유지가 급했던 탓이다.
 
많은 국가보안법 존속론자들은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들에게 국가의 정체성을 뒤흔든다고 말한다. 그 국가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헌법 제5조는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고 밝히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존속이야말로 국가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국가보안법 폐지논쟁의 더 핵심은 북한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있다. 대개 옹호론자들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상정하기 때문에 논쟁은 평행선을 달리는 것이다. 헌법 제4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것도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간의 남북 관계가 개선되어 온 상황이나 국제정세의 변화를 무시하는 태도다. 그리고 북한을 여전히 반국가단체로 본다면 통일을 위한 정부나 정치권의 공식적 비공식적 모든 행위가 국가보안법에 위반된다.
 
박근혜 대표 스스로 일전에 북한방문에 대해 시사한 적이 있다. 그 발언 자체로 이미 그는 구속수감 됐어야 한다. 심지어 지난 북한 룡천 돕기 운동을 벌였던 숱한 보수언론들도 폐간되어야 한다. 이는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모순 된 법인지를 보여주며, 또한 이를 존속시키려는 세력들의 행위 자체가 얼마나 모순 된 것인지를 증명해준다.
 
한나라당 내부 여론조사에서도 국가보안법 개정 찬성이 60~70%를 차지한다고 한다. 대강 인권침해와 관련해 개정은 하되 북한 앞잡이 노릇까지 하는 것은 막자는 것이다. 그나마 예전에 비하면 많이 달라진 풍속이다. 이는 대선과 총선의 패배를 겪은 후 당의 정체성에 대한 내부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멀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어떤 국가일까. 그들이 말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 개념을 교과서에서 배운대로와 같다면 개인의 사상과 신념, 표현에는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보수세력이 그토록 주창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라도, 무고한 국민들을 어이없이 죄인으로 옭아매는 국가보안법을 전면 폐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당 내부 비주류와의 갈등과 ‘박정희’에 대한 맹공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국가보안법 폐지안’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박근혜 대표는 곰곰이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박정희 판박이’라는 세간의 평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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