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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차별을 감추기 위한 또 다른 차별의 악순환 막아야
 
이원재   기사입력  2004/04/21 [09:31]

“이 땅에 살아가는 450만 장애인에게는 더 이상 장애인의 날은 없다. 정부는 일년 내내 우리를 억누르고 핍박해왔다. 하지만 일년에 단 하루, 그들은 우리에게 떡고물을 안겨준다. 각종 행사, 언론, 정책에 단 하루만 존재하고, 주목 받는다. 우리는 그 기만적인 정부의 장애인의 날을 우리 스스로 거부한다. 사회에서의 시혜와 동정, 억압적인 현실에 저항하며 우리는 2002년부터 장애인의 날이 아닌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라 선포하였다. 그리고 지금 현실의 차별에 온몸으로 부딪혀 저항하며 싸우고 있다....”(2004. 4. 20.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결의문’ 중)

정부가 장애인을 위해 지정했다는 ‘장애인의 날’, 정작 장애인과 장애인 관련 단체들은 장애인의 날을 거부했다.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 그 공공연한 집단적 범죄 행위에 대한 알리바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장애인 주체들은 “일년에 단 하루”, “떡고물”, “시혜와 동정”에 안주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채 버렸다. “온몸으로 부딪혀 저항”하는 동안, 그 대가로 돌아 온 지독한 억압과 고통의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이번 420 투쟁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420 투쟁이 시작되던 날,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집시법’조차 장애인을 이중 차별한다는 사실을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같은 날 광화문에서 진행된 탄핵반대 촛불시위를 관망했던 공권력은, 유독 장애인 문화제에 대해서만은 강제 철거, 폭력 연행을 서슴치 않았기 때문이다. 공권력과 집시법조차, 차별과 탄압을 비판하는 행위에서조차 장애인은 또 다시 차별을 받고 있는 셈이다. “차별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차별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운동사회의 무관심 역시 새롭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운동사회내에서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장애인의 문제. 하지만 당위와 실천은 또 다른 문제이다. 장애인의 권리투쟁에 대한 운동사회내의 관심, 연대 그리고 자기실천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물론 이동권 투쟁, 교육권 투쟁 등을 통해 장애의 문제가 운동사회내에서 다양한 연대와 실천을 확대해 왔지만, 지금까지는 전적으로 장애인 운동가들의 노력에만 기대 온 것이 사실이다.

더 이상 운동사회 내에서조차 장애운동이 타자의 문제이자 개별 운동영역의 문제라는 '제한적인 인식과 형식적인 연대'로 묵인돼서는 안된다. 이제 사회적 장애의 문제는 여성, 환경 등의 경우와 같이 삶의 태도이자 일상적 실천의 과정으로 이해돼야 하며, 각자의 삶의 공간, 운동의제 속에서 장애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자기 실천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한편 장애인의 문제는 몸의 문제와 특권적 관계를 형성한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억압은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몸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권력관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을 둘러 싼 권력관계는 거시적인 구조의 층위만이 아니라 미시적인 주체의 층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적인 삶의 공간, 삶의 구성하는 과정과 방식, 주체간의 관계맺기 등 장애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몸의 권력지형에 있어 사회적 소수자인 장애인의 삶의 권리와 질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는 문화운동, 문화정치, 문화정책 등과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다.
따라서 “장애를 무릅쓴 예술 행위”, “장애인을 위한 온정주의적 문화정책” 등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장애와 문화’간의 관계설정을 문화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실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장애운동과 문화운동간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연대가 모색돼야 할 것이며, 장애인의 특이성과 필요성에 근거한 ‘장애인 문화운동’이 의제화돼야 할 것이다. “형식적 민주주의에 근거한 시혜적 차원의 복지정책”을 넘어 “장애인의 삶의 창조성, 표현, 소통, 공유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애인 문화권”이라는 문제설정이 필요하다.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이다.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인 장애인이 행복한 사회가 진정 행복한 사회이다. “장애인을 위한 사회 변화”가 아니라 “모든 차별을 철폐하라!”는 장애인 운동가들의 메시지가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루 빨리 ‘장애인의 날’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 [문화사회]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 협약을 맺은 문화연대에서 발행한 주간문화정책뉴스레터 '문화사회 81호' (http://weekly.culturalaction.org/) 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 필자는 이원재 문화연대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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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4/21 [09:3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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