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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에 맞선 머슴, 노무현 대통령을 위한 변명
[칼럼] 낡은 것과 새것 사이에서 고투하는 대통령을 위해
 
이태경   기사입력  2004/03/23 [13:32]

대한민국은 진정 민주공화국이었나?

돌이켜보면 3.12 의회쿠데타는 상고 출신 노무현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순간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재벌과 관료, 보수정당, 법조, 언론, 학계로 대표되는 한국사회의 주류(main stream)는 영남이라는 지연(地緣)과 경기고, 서울법대로 상징되는 학연(學緣), 혼인과 교차혼 등을 통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확대재생산하여 왔다.

그들은 국회를 통하여 법률을 입안하고 행정부를 매개로 이를 집행하며 사법부에서 법률의 적용과 해석까지 도맡아 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법치(法治)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치외법권에서 생활하였다. 책떼기에, 가방떼기에, 차떼기까지 저지르고도 만고에 떳떳한 것이 그들의 정신 속 풍경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규정은 그들에게 박제(剝製)된 선언에 불과하였다. 권리를 행사하는 데는 철저하고 악착같았던 한국사회의 주류들은 공화국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를 이행하는데는 놀랄만큼 둔감하였다. 각종 부정부패에 연루되고, 탈세를 절세(節稅)라 강변하며, 자신과 자신의 아들들의 병역은 어떤 이유로건 면제받아 왔던 것이 한국사회 주류들의 행태였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여전히 반상(班常)의 구별이 엄연한 봉건제 사회였고, 법치(法治)가 아닌 인치(人治)의 사회였다.

친일과 자유당, 유신독재를 거쳐 5, 6공에 이르는 기나긴 세월 동안 한국사회의 각 부면을 주름잡고,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사회질서를 구축하면서 여러 가치와 자원-권력, 자리, 돈 등등-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분배하여 왔던 그들은 문민정부 시절에도 큰 위축됨이 없이 건재를 과시하였다.

물론 문민정부 초기에 진행된 '하나회 숙청'으로 말미암아 한국사회에서 군부의 위상과 영향력이 급속히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현상은 한국사회 주류(main stream)중 일개 분파가 탈락한 것에 불과하였다.

그들이 처음으로 긴장한 것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던 국민의 정부 출범 시기였지만, 이미 기존의 부패한 정당구조와 문화에 깊숙이 침윤되어 있던 국민의 정부는 그 스스로 지배블럭의 일원으로 편입되어 무섭게 부패하였고, 그 결과 햇볕정책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의미있는 개혁정책들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평가절하되었다.

게다가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은 국민의 정부가 지역주의에 기반한 소수정권이었다는 사실이었고, 인사 등에 있어서 그리 공평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호남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박정희 집권 이래 역대정부가 철저히 추구해온 일관된 정책으로 거의 40년 동안 한국사회는 영남패권주의가 각 부면에서 기승을 부리고, 영남출신들이 각종 자원과 인사를 독식하였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기에 어떤 면에서 국민의 정부는 억울한 면이 없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인사 정책이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물며 수구보수세력의 나팔수임을 자임하는 '조·중·동' 이 끊임없이 현상을 왜곡하고 이데올로기 공세를 가하는 상황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렇다면 간난신고(艱難辛苦) 끝에 등장한 국민의 정부는 햇볕정책과 몇몇 개혁정책들 이외에는 한국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없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무릇 정치를 가치-각종 자원과 자리 등을 의미한다-의 권위적 분배라고 볼 때, 국민의 정부는 해방 이후 최초로 '권력 주체의 변동'이라는 중대하고도 본질적인 변화를 한국사회에 가져왔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그간 한국사회를 지배하였던 영남패권주의에 심각한 균열이 초래되었고, 한국사회 각 부면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수구부패세력들도 일정정도 타격을 입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정부 출범 초기부터 줄기차게 추진되었던 햇볕정책으로 말미암아 냉전적 사고와 대북적대의식도 일정부분 해체되어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정치적 상상력이 자유로워지게 된 것이 사실이다. 물론 국민의 정부는 그 태생적 한계-자민련과의 공조와 왜곡된 정당구조 등-로 말미암아 권력주체의 변동에서 머물고 말았지만, 국민의 정부가 한국사회에 기여한 바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역사에 가정(假定)은 큰 의미가 없지만, 국민의 정부가 없었더라면 참여정부가 등장할 수 있었을지는 단언하기 어려울 듯 싶다.

한국사회에서 비주류 출신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

한국사회 주류에게 국민의 정부 집권 5년간은 인고(忍苦)와 치욕의 시간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자기합리화와 위안의 근거가 있었다. 즉 김대중의 집권은, 환란(煥亂)으로 인한 IMF구제금융이라는 초대형 악재가 있었고 자민련과의 공조가 있었으며 배신자 (?)이인제의 이적행위가 어우러졌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더욱이 국민의 정부 5년간 계속된'조·중·동' 의 저주에 가까운 이데올로기 공세와 집권세력 내의 부패행위 등이 맞물리면서 민심은 심각하게 이반된 상황이었다.

재수(再修)에 나선 이회창을 필두로 하여 한국사회의 주류는 잃어버린 행정권력을 탈환하고자 총력을 경주하였고, 대선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승리는 손아귀에 들어온 듯 싶었다. 그런데 마술에 가까운 일이 있어났다. 당내 지지기반도 전혀 없고 정치경력이나 국무위원 경력도 일천(日淺)한 노무현 후보가 후보단일화의 여세를 몰아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게다가 그는 출신도 비천(?)할 뿐만 아니라-노무현 대통령은 빈농의 아들이다-가방끈도 무지 짧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의 패배가 한국사회 주류에게 미친 충격과 패배감은 대단했다. 심지어 장래 치러질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에 대한 절망감까지 배어나오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한국사회 주류들이 2002년 대선패배에서 경험한 감정은 비단 충격과 절망감만이 아니라 그러한 감정들을 훨씬 웃도는 분량의 분노와 경멸이었다. 그들은 상고(商高)졸업이 정식학력의 전부인 빈농 출신의 노무현 대통령을 인정할 수 없었으며 존중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대선 패배 직후 불거져 나온 투,개표 조작설과 재검표 소동은 이런 한국사회 주류들의 정서를 배경으로 할 때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불과 보름만에 터져나온 '탄핵'발언은 최근의 탄핵소추안 발의와 의결로 현실화될때까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였고, 대통령에 대한 비하와 모욕은 일상사가 되었다.

물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이번 탄핵소추안의 발의와 의결에 이르게 된 직접적인 정치적 동기는 대선자금 수사로 총선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과 호남자민련으로 전락할 위기에 몰린 민주당 그리고 내각제를 통한 권력분점을 꿈꾼 자민련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때문이겠지만, 그들의 심리적 기저(基底)에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적의(敵意)와 경멸감이 내밀하게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지.

집에서 부리던 머슴에게 자리를 빼앗긴 상전의 심정이 아마도 대통령 노무현을 바라보는 한국사회 주류들의 마음가짐일 것이며, 이는 그간 한나라당과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보여준 언행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외무부와 국방부 소속 관료들의 행동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기로는 한국사회의 관료들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지경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하여

대통령 노무현은 그간 집권했던 어떤 대통령과도 달랐다. 그는 자신이 집권하는데 있어서 국민에게만 빚이 있다고 생각하였고 사실이 그랬다. 취임 이후 대통령 노무현은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과감히 분권화하기 시작하였고 국가기관들을 헌법과 법률에 의해서 작동되도록 하였으며 지속적인 탈권위화를 추진하였다. 또한 정당구조와 그 운영원리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려고 시도하였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려는 의지를 결연히 보이고 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비판받아야 할 부면도 많다. 그는 사회적 갈등들-예컨대 부안 방폐장문제, NEIS문제 등-을 합리적으로 풀어가는데 성공적이지 못했고,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경제개혁의 청사진을 보여주지 못했다. 또한 노사문제와 남북관계 그리고 대미외교에도 상당수 지지자들이 기대한만큼의 개혁성을 보여주지 못한 결과 참담한 수준의 지지율 하락을 경험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 개혁에 대한 확고한 비젼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만큼 경제와 외교, 남북관계 그리고 교육문제에 대한 비젼과 의지가 없는 점은 참으로 아쉽다고 할 것이다.

대통령 노무현이 기획하고 구상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법률과 제도가 한국사회의 운영원리가 되는 것이다. 민주공화정을 주권재민과 법치주의의 구현이라고 할 때 노무현 대통령이 지향하는 구상이 갖는 함의는 대단히 크다.

인치(人治)를 바탕으로 온갖 특권이 횡행하였던 지난 시대를 민주공화정의 외피를 쓴 봉건제 사회라고 한다면,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그 질서를 유지하려고 안간힘 쓰는 것이 보수야당-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노무현은 그런 구시대와의 결별을 선언하였고, 이번 의회쿠데타의 본질은 대한민국이 진정한 의미의 민주공화정으로 태어나는 것을 저지하려는 수구봉건세력(?)의 발호(跋扈)인 것이다.

취임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안팎으로 큰 곤란을 겪었고 이제 위기의 정점에 다다른 형국이다. 현시점에서 낙관은 금물이지만 머지 않아 노무현 대통령은 직무에 복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때 대통령 노무현에게 요구되는 것은 한국사회 각 부면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철저한 개혁이다.

사실 작금의 사태가 야기된 것도 개혁의 부진에 따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 큰 원인이다. 사회 각 부면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지속적인 개혁-특히 분배구조의 개선 등-이 이루어질 때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는 특권과 반칙이 사라지고 법치와 주권재민이 작동하는 사회가 비로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업적을 남긴 노무현 대통령을 진정으로 자랑스러워 할 것이고, 역사가 그에게 부여한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사족 : 노무현 대통령이 뭇사람들로부터 많은 비판과 질타의 대상이 되는 대부분의 원인이 그의 언행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의 몸가짐이 지나치게 가볍고 말을 함부로 쏟아낸다고 아우성친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대통령의 말은 한없이 엄숙하고 그의 얼굴은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무표정이어야만 하는걸까? 권위주의에서 벗어난 한국사회도 이제 평범한 시민의 언어를 구사하고 감정의 변화를 솔직히 드러낸 얼굴을 한 대통령을 가질 때가 된 것이 아닐까? 오히려 대통령 노무현은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이 지시와 복종의 대상에서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의 팔다리로 행동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음을 반증하는 상징은 아닐까?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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