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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졸업식 카니발, 매 드는 어른들
[정문순 칼럼] 애꿎은 아이들 손볼 시간에 학교 관료문화부터 손 대라
 
정문순   기사입력  2010/02/21 [21:48]
아이의 졸업식에 갔다. 비가 내려 행사는 강당에서 열렸는데, 좁은 강당에 사람들을 모아 놓으니 입구가 혼잡하여 발을 들여놓을 공간이 없었다.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에 묻혀 연단에 선 사람의 말은 제대로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마다 손에 꽃다발 더미를 든 학부모들은 그런 데는 무관심했다. 

방금 연단에서 뭐라고 말을 하고 내려간 분이 학교장이라는 것은, 지금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가 교장 선생님이 정년 퇴임을 맞았다고 말하는 것에서 알았다. 사람이 하는 말에 관심이 많은 나는 손님을 불러놓고 학교에서 과연 어떤 말을 준비했는지 궁금하여 그 말을 귀에 붙잡으려고 애를 썼다. 다행히 익숙한 상투어가 몇 마디 귀에 들어왔다. 사회자는 연신 교장 선생님이 지난 40년간 교직에 투철한 신념으로 봉직하셨으며, 자신의 퇴임식도 사양하실 정도로 청렴하신 분이라고 시간을 길게 할애하며 칭송했다. 투철한 교직자라는 말은 열 번도 넘게 반복했다. 
 
“퇴임식을 고사했다면서, 지금이 퇴임식을 겸하는 자리니?” 똑같이 지겨운 생각을 하고 있을 아이에게 문자를 보내며, 졸업식이 참 재미있게 돼 간다는 생각을 했다. 축사를 하러 온 연단에 오른 인사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양복 빼 입고 단상에 오른 무슨 무슨 단체의 회장들은 아무도 귀담아 들어주지 않고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말을 열심히 했지만, 그래도 요즘 학생들은 발랄했다. 축사가 끝날 때마다 휘파람을 불러주는 학생들이 있어서 어른들이 벌여놓는 코미디를 이해하는 마음을 보여주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행사에 동원돼야 했던 내 어릴 때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축사가 짧게 끝날 때는 환호성이 좀 더 커졌다. 
 
결론을 말하면, 학교 졸업식은 예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었다. 혹시나 싶어 뭔가 감동을 기대하고 간 내가 순진했다. 학교 당국은 행사를 재미 없는 말의 공해로 가득 채웠다. 졸업식은 안 할 수가 없으니 얼렁뚱땅 늘상 해오던 대로 판박이로 치렀고, 학생들과 학부모는 내용 없는 행사의 들러리였다. 해마다 학교는 2월이면 가장 바쁘다. 학생들을 위해 바쁜 것도 아니다. 졸업식 이틀 뒤에는 종무식이 있다 하여, 아이 담임교사에게 의논할 일이 있던 나는 바쁜 교사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모든 일정이 학교 당국 편한 대로였다. 

졸업식을 의미 있게 치를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학생들을 행사 주체로 참여시킬 수도 있을 텐데, 지역 유지에게 마이크를 넘기기에 바쁜 학교의 관성은 새로움을 허용할 마음이 없다. 이렇게 창의성도, 학생에 대한 애정도 없이 일정 때우기 바쁜 관료로 넘쳐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수년 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이들에게는 졸업이야말로 감옥 같은 곳에서 해방을 만끽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일 것이다.

해마다 졸업식 즈음에는 어른들의 허용치를 넘어선 아이들의 졸업식 일탈 행위가 여론의 도마에 오른다. 더 이상 입을 일 없는 교복을 찢거나 미운 교사 뒤통수에 밀가루를 뿌리는 얌전한 방식은 요즘 아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커졌다. 옷에 밀가루 묻히는 것만 경험한 기성세대는 그 정도를 넘어버린 아이들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남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일탈 행위에 억지로 동원된 경우가 아니라면 아이들이 벌이는 그들만의 카니발은 그냥 놔두는 아량이 필요하다.
 
어차피 졸업생들에게 주어진 해방은 그날 하루뿐인데 아이들을 무작정 범죄자로 몰아 핏대 올리고 잡아넣겠다고 엄포 놓는 어른들이 딱할 정도이다. 그런 태도는 아이들을 기성세대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하여 더욱 심한 행동으로 이끌게 될지 모른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기성세대에 저항한 측면이 크다.

원래 카니발의 기원은 지배 세력이 피지배 집단의 자유로움과 일탈을 허용한 데서 나왔다. 이날만큼은 권력자가 조롱과 모욕을 당하는 것도 용인되었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자신들이 밟고 있는 집단의 숨통을 터주지 않으면 지배권력은 불안해서 살 수가 없었다. 지금의 기성세대는 아이들의 반란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만만해서 아량과 관용을 보일 줄 모르는 것인가. 

엄혹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시대에도 양반을 조롱한 서민예술이 꽃을 피울 수 있었는데 지금의 기성세대는 양반만큼의 아량도 없어 보인다. 아이들을 감옥에 몇 년씩 썩힌 어른들이 뭐라고 훈계하고 처벌할 자격이 있는가. 애꿎은 어린 학생들을 손볼 시간에, 학생을 행정 들러리로 전락시키고 사욕을 채우는 학교 관료 문화부터 물갈이하는 게 낫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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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2/21 [21: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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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10/02/23 [16:36] 수정 | 삭제
  • 생각 좀 하며 글을 씁시다.

    공공에 공표하는 글을 쓰며 공해를 유발하는 글을 쓰면 사회에 해악이 됩니다.

    님이 생각하는 방식은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과 너무나 똑 같은 답답한 생각이네요.

    졸업을 맞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은 좋아요.

    이명박 대통령도 그런 생각은 할 줄 아네요.

    본글 필자의 이성은 딱 거기서 멈춰 섰네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님은 이번에 학생들이 졸업빵을 한답시고

    선배가 위력으로 후배들을 불러와서 강제로 발가벗기고 피라미드를 쌓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것이 하나의 축제 같아 보입니까? 카니발 같나요?

    한때의 낭만적 일탈 같나요?

    본글 쓴 님은 반사회적인 범죄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점을 생각해야 되요.

    그곳에 가기 싫었던 학생들이 인격을 무시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는 반사회적이고 반문명적인 야만행위입니다. 그래서 범죄행위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야만적인 범죄행위는 조장되거나 권장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범죄 행위에 대한 관용은 범죄행위를 조장하는 반사회적 기능을 합니다.

    범죄는 단순히 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본글쓴 님과 같이 생각하면, 교도소나 구치소에서 소위 신고식이나 돌림빵 등도 모두 허용되어야 하지요. 군대에서의 야만적 얼차려나 가정내 폭력도 관용되어야 하지요.

    모두 나름대로는 님과 같은 핑계를 만들 수 있거든요.

    님이 졸업식 하루의 해방구 논리처럼 구치소나 형무소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의 특수한 그들만의 행위로 장식될 수 있고, 군대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그런 환경속에서 선후배 고참 사이의 기합이나 매질은 사랑의 매질로 이해될 수도 있죠.

    또 가정폭력은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가족이 혹시 잘못될까 싶어 위력을 가진 최고 가장이 사랑하는 가족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매를 들 수 있지 않습니까?

    야만적 행위와 범죄 행위에도 변명을 하려면 얼마든지 논리를 만들 수는 있지만 반사회적 행위는 조장해서도 또 권장되어서도 안 되지요.

    논리로 말하면 스와핑 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뭘 잘못했냐고 반문하지요.

    글을 쓸 때 먼저 좀 종합적으로 생각을 해보고 쓰세요.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 공해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