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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과 인생,그 함수 관계의 변화
생명 창조시대의 자기경영 18
 
이동연   기사입력  2003/10/20 [11:53]

과연 인간은 진화의 정점에서있는가? 아니면 인간보다 훨씬 우수한 새로운 종이 나올 것인가? 이 물음에 누구도 정확한 대답을 줄 수는 없겠지만 다음 한가지는 분명하다.

유기체의 합성물로서의 진화는 인간이 그 최종 존재이다. 자연 진화로서의 최종 존재는인간이 틀림없으나 인공 진화로서의 새로운 종은 나올 수도 있다.
   
자연의 걸작품인 인간은 거대한 자연의 순리를 따라 사는 길이 행복의 첩경이었다. 그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는 자연의 볍칙을 초월하고도 행복할 수 있을까?  그 문제는 문명의 카오스적 변동을 좀더 지켜보면서 논의해야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분명한 것은 자연의 사계절이 희미해지 듯이 인생의 사계절의 구분도 약해진다는 점이다.

▲4계절의 변화     ©인터넷이미지

도회지로 나온 다음 35년만에 처음으로 늙으신 어머님을 모시고 어머니의 고향집을 가보았다. 어렵사리 길을 묻고 물어 찾아 가는 내 머리 속에는 어릴 적 어머니의 뒤에서 딴 짓하고 투정부리면 걷고 또 걸으며 가 보았던 외가집의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막상 가보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흙 담벼락은 벽돌담으로 변했고 황토 흙길은 세멘트로 조악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아 다 쓸어져 가는 외가의 초가집과  마당 한 구석의 앵두나무, 그 곁의 우물가에 자라고 있는 이름 모를 잡초 속에 나 뒹구는 두레박 등의 풍경만이 아스라이 내 두뇌의 기억 회로와 연결되었다.
  
어머니는 마루에 걸터 앉아 9 남매들이 살던 옛날의 이야기를 풀어 놓으셨다. 읍내 장터를 한번 가려면 소 달구지를 끌고서 큰 마음 먹고 가야 했기 때문에 평소에는 광주리에 과일, 생선, 생필품 등을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오는 상인들로 부터 쌀과 곡식을 주고 바꾸어 사 먹던 이야기를 해 주셨다.

봄이면 논과 밭을 갈고 일구고 씨를 뿌려 여름이면 잡초를 뽑아 주고 가을이면 허수아비를 세워주고 긴 대나무 장대로 날이면 날마다 논두렁에 나가 참새를 쫒았다. 가을에 추수가 다 끝나고 겨울이 되면 같은 또래의 처자들이 한 친구네 집에 모였다.

친구네 작은 사랑방의 따뜻한 아랫목에 서로의 무릎을 걸치고 둘러 앉아 시집 장가간 앞 뒷집 오라버니와 언니들의 소문을 주고받고, 농촌을 떠나 도회지로 가고싶은 자신들의 바램을 꿈꾸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 저런  옛 기억을 늘어 놓으시다가 마당을 바라 보시며 50년전 이곳에서 혼례를 치르던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 당시의 혼례는 신랑이 신부집에 와 예식을 치른 뒤, 다음날 신랑은 조랑말을 타고  앞서 가고 꽃 가마를 탄 신부는 그 뒤를 따라 시댁으로 들어 갔었다.

그러나  친정 집과 시집갈 시댁 사이의 거리가 워낙 멀고, 그 길마저도 비가 오면 진흙탕 길이 되어 새 색시인 어머니는 꽃 가마를 탈 수 없어 대신 트럭을 타고 가셨다. 

혼례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미자씨의 노래 '옛날의 이 길은  꽃 가마 타고 정든 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의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는 다 그렇게 살아 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맞추어 생활하며 살아 왔다. 우리는  우주의 질서 속에 작은 행성인 지구가 자전과 공전으로 화답하며  연출하는 사계절에 맞추어 지금도 살고 있다.
   
트루니에(Paul. Tournier)를 비롯한 자연주의 상담 심리학자들은 자연의 사계절을 인생의 사계절(The four season of life)에 투사한다.

자연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인생의 아동기, 청년기, 성인기, 노년기와 같다는 것이다. 자연의 사계절처럼 인생의 사 계절에도 그 고유한 특성과 역할이 있다.  씨앗 하나가 새의 배설물에 실려 땅에 떨어 진다. 땅에 묻힌 그 씨앗은 적당한 온도와 적절한 비를 맞으며 싹이 튼 다음에는 동물들의 발에 밟히지 않고 거센 비 바람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자라난다. 그처럼 아동기에는 주변의 보살핌이 더 필요하다. 
   
새싹의 단계인 유년시절을 지나 인생의 여름인 성년기로 가는 길목엔 사춘기가 자리 잡고 있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철학은 시작된다. 어릴 때는 세상 모두가 다 내 마음과 같은 줄로 알고 사람들을 대해 왔다.

그러나 자라면서 내 의지와 전혀 관계없는 일들을 경험하고, 나의 진심과는 다르게 반응하는 주변들을 보면서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인가, 선과 악은 무엇이며 언제나 선이 이기는가' 등의 형이상학적 고민을 품는다.

이 시기에는 고민하면서도 절대를 추구한다. 절대 사랑, 절대 증오, 절대 진실, 절대 악, 절대 승리 등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흑과 백으로 구분하려 한다.

사춘기에서 성인기의 초입인 청년기로 접어 들면 자신과 사회의 한계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기 시작한다. 하버막스의 말처럼 사회적 부조리 앞에서 청년들은 한 때 누구나 맑스주의자가 되어 보기도 하고, 솟구치는 성욕을 억제만 하려는 사회적 장치에 갈등하기도 한다.

더불어서 타인에 비교해 어느 면에서는 뒤쳐지는 자신의 모습을 알아 채고 나보다 앞선  타자를 일면 긍정하면서도 아직은 그 차이를 받아 들이고 싶지 않아  '힘의 의지(will to power)'로 무시하려고도 한다. 
 
인생의 여름인 성년기에 들어서서야 자신의 한계를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선악 병존의 애매성과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 절대적 가치보다는 통합적 가치를 모색한다. 

성년기에 서서 돌아보면 인생의 꽃 봉우리에서 작은 열매가 나와 서서히 자라기 시작할 때 괴롭혔던 여러 벌레와 곤충과 비바람이 도리어 고맙게 여겨지기도 한다.    

자연에서 과일은 벌레와 비바람과 곤충이 다 지나간 다음에 익어 가는 게 아니다. 과일은 그 모든 난제와 직면하고 대면하면서 비로소 충실하고 향기롭게 익어간다.

만일 매일 매일 화창한 날씨만 계속된다면 대지는 곧 사막이 되어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다.  비바람이 때로는 거세고 귀챦으나 그로 인해 땅이 습해지고 곤충도 숨고 식물이 자라 열매를 맺는 토양을 만들어 준다.

이처럼  자연의 사계절이 지닌 특징은 인생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자연에서 진화한 인간에게 많은 깨우침과 지혜를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자연의 사계절이 사라지고 있다.
자연의 사계절이 희미해지고 사라져서인가? 인생의 사계절도 점차 불투명해지고 사라지고 있다. 다음에 계속 이어 간다.

* 필자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인천 한누리 공동체를 이끌며 생명창조의 시대로 접어든 인류 사회의 정신적 좌표와 인류의 상생을 위한 미래신화를 연구하며 방송 강의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강화도 : 미래신화의 원형] 등의 저서를 집필하는 등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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