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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노무현의 매력과 참여정부의 과오
[정문순 칼럼] 盧 전 대통령 서거, 참여정부에 대한 객관적 평가 시작돼야
 
정문순   기사입력  2009/06/12 [13:00]
사람들은 무모한 일인 줄 알면서도 자기 욕망에 압도되어 분별력을 잃을 때가 있다. 서로 대척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같은 맥락에 모으려고 애쓰는 것은, 정치인 노무현의 됨됨이와 참여정부의 과오를 떼어내어 사고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도 적용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넋이 ‘자연의 한 조각’으로 돌아갔어도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여전히 마르지 않거나 그가 남긴 육성이나 일화, 유머 있는 사진 등을 보며 좋았던 모습만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은, 언행일치의 도덕적 인격체에게만 바칠 수 있는 예우이다. 사람들은 전직 대통령의 최후를 보고나서야 거의 도덕적으로 완성된 경지에 이르려고 노력한 정치인을 그에게서 발견했다. 투명함과는 구조적으로 거리가 먼 한국 정치에서 안과 밖이 다르지 않은 정치인을 확인하는 것은 정치를 더러운 것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거짓말 같은 그의 죽음만큼 믿기 힘든 충격이다. 문단을 대표하는 진보적 문인이 변절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무협지 수준의 무성의한 번역물을 ‘감옥’에서 생산해냈다고 출처를 포장하며 자랑하는 세상이다.  

그의 서거를 계기로 참여정부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이런 기류는 현 정부의 폭정과 비교되어 힘을 얻고 있지만, 인간 노무현의 매력이 참여정부의 공과를 가리지는 못할 것이다. 고인부터 참여정부의 과오를 발뺌하려고 하지 않았다. 청와대를 떠날 즈음에 그리고 봉화마을로 돌아오던 날에 고인은 자신이 잘했다고는 둘러대지 않았다. “정치 좀 잘못하면 어떠냐.”고 일갈하며 당당해하는 태도를 통해 숱하게 원망과 질타를 받았던 참여정부의 미흡함을 인정하는 태도는, 입만 열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한다는 거짓말로 자신의 욕심을 포장하는 데 익숙한 여느 정치인과는 달랐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 앞에 마련된 분향소.     ©CBS노컷뉴스

그런 고인도 끝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노력했지만 제대로 안됐다는 평가는 도덕성에는 결코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개혁이 실패했다는 평가는 선선히 받아들일 수 있을망정 자신과 참여정부의 표상으로 내세웠던 도덕성이 훼손되는 지경은 스스로 용납하기 힘들었던 고인의 삶에 감동을 느끼는 것과, 지지부진한 개혁으로 5년을 힘겹게 연명하다 수구세력에게 권력을 갖다 바친 것이나 다름없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떼어놓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 노무현은 자기 몸의 산화를 통해 한국 정치사에서 김구 선생 다음으로 희귀종인 거짓말하지 않는 정치인으로 거듭 났지만,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과오까지 책임져 줄 수는 없었다. ‘충신’을 자처하는 측근들은 그의 어깨를 올라타고 ‘정치꾼’이 되고 싶어했을 뿐 고인을 따라 배울 생각은 없었다.

참여정부는 정치 개혁에서 일상에서 피부로 느낄 만큼의 발전을 이루어낸 것은 분명하다. 선거철 유권자가 패가망신 당할 두려움 없이 돈을 넙죽 받기 힘든 세상이 된 건 결코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제 몸을 망칠 두려움 없이 돈 정치에 빠지는 유혹은 청산하지 못했다. 참여정부는 권력 분산을 위해 애썼지만 그렇게 나누어진 권력은 오로지 시장과 자본에 몰아주었다. 국정 지표를 정할 때는 사기업 삼성의 것을 고스란히 베꼈고 삼성 집안과 친하게 지내려고 애썼다. 언론 개혁 대상에서 <중앙일보>라고 예외가 아니었지만 그 신문사 회장 출신에게는 초강대국의 대사 자리가 주어졌다.

고인의 장례식에 눈과 귀가 쏠려 있는 사이 삼성 재벌은 10년을 끌어온 재판에서 잽싸게 무죄를 받았지만 그의 집권기에 대법원 판결이 났더라도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복지 예산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적 불평등은 왜 그리 커졌는가. 비정규직에는 왜 그리 야박하고 매몰차게 대해야 했는지. 비정규직의 파업과, 농토를 잃어야 하는 농민들의 저항을 반란군 대하듯 무자비하게 진압하여 전리품을 나라 안팎의 대자본에 갖다 바치려 한 것을 무엇으로 면책할 수 있을까.  

그의 서거를 상기할수록 이명박 정권에 권력을 넘겨줌으로써 그것이 가장 큰 실책이 된 참여정부가 안타깝고 속상하다. 어떤 점에서 그동안 참여정부의 공과는 냉정히 평가받지 못했다. 경제 불황 속에 맞은 대선에서 경제 정의보다 내 배 불리는 것이 모든 의제를 잡아먹는 바람에 일방적으로 매도된 측면이 있었고, 역사를 되돌리려는 이 정부의 집권 이후는 더욱 무참히 짓밟혀 마침내 고인의 목숨까지 빼앗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 전 대통령의 애석한 서거는 실권과 더불어 역사의 죄인처럼 망각된 노무현 정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 길을 고인은 열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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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6/12 [13:0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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