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순의 문학과 여성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故 장자연이 죽음으로 폭로한 어둠과 빛
[정문순 칼럼] 성폭력 피해자의 얼굴을 지워버린 사회, 비극은 반복된다
 
정문순   기사입력  2009/04/09 [10:30]
고 장자연 씨의 사진을 보면 처연한 생각이 든다. 세상의 추악함과 타락을 모를 것 같은 고상하고 아름다운 얼굴이다. 차라리 평범한 용모였으면 불행은 비껴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여성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존중할 생각이 없는 자들, 이 아리따운 여성이 자신의 젊음과 미모를 스스로 모멸스러워하도록 만든 자, 그 모멸스러움을 죽음을 택하는 것 말고는 이겨내지 못하게 만든 자, 누구일까.  

고 장자연 씨의 죽음이 폭로한 여자 연예인 성상납 의혹 사건과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 사건에서 여성의 몸은 돈 대신 거래되는 뇌물에 불과하다. 매매혼 성격의 국제결혼, 그리고 모든 형태의 성매매까지 폭을 넓히면 여성의 몸을 제물로 삼아 남자들끼리 이익을 나눠 가진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익이 사이좋게 나누어지는 게 아니라 어느 한쪽에만 치우칠 경우는 속칭 ‘꽃뱀족’ 사건이 될 것이다. 어느 경우든 여성의 몸은 인격체가 아닌 사물에 지나지 않게 된다. 

# 2007년 8월 3일, 한나라당 청주 합동연설회  

-정우택 충북도지사: “긴긴 밤 잘 보내셨습니까? 예전 관찰사였다면 관기(官妓)라도 하나 넣어드렸을 텐데”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어제 온 게 정 지사가 보낸 게 아니었냐.” 

‘하나’, ‘넣어드리다’, ‘어제 온 게’ 등은 개나 돼지라면 몰라도 사람에게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이 사내들의 대화에서 여성은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성 상납의 대상으로서 여성은 이미 인격이 없는 사물화된 존재에 불과함을 대통령 후보와 도지사는 잘 알고 있다. 일말의 찔리는 바가 있었을까. 봉건 시대 ‘관기’에 관심이 많은 자자체 단체장은 ‘관(官)’에서 합법적으로 성상납이 이루어지던 시대를 거론함으로써 자신의 여성 인권 유린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가 케케묵은 봉건시대를 언급하는 데 비해 대통령 후보는 권력을 더 많이 가진 자답게 지금도 성상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듯 ‘어제’의 일처럼 받아쳐서 말한다.  
 
▲     ©CBS노컷뉴스

남을 짓밟고 유린하는 자들은 부끄러움 없이 당당한데, 짓밟히고 유린당하는 그녀들은 존재감이 없다. 인격이 없는 한 그녀들은 기억되지 않는다. 그녀들을 철저히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권력 남성들 스스로 일말의 죄책감이 생길 여지를 없애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세상은 남자들의 성적 노리개로 취급당한 존재가 만인의 선망을 받을 만한 고상하고 아름다운 몸을 가진 여성임을 알지 못했다. 

세상은 성매매 여성이 불쌍하거나 타락한 존재일 뿐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애써 외면했고, 범죄 말단 행동대원일 뿐인 ‘꽃뱀’ 여성의 다른 면은 보지 못했고, 이주민으로 온 여성들에게 동정을 보이거나 비난만 가함으로써 저개발국 여성의 몸이 이 땅에서 당하는 착취를 외면했다. 세상은 성폭력 피해자라도 피해 과정에서 본인의 자발성이 개입된 것으로 인식되는 이들의 약점은 부각시켰고, 남자 권력자들의 횡포는 외면했다.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존재의 죽음을 강요당한 고 장자연에게 삶은 어쩌면 빛과 어둠이 거꾸로 뒤집힌 희극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능멸당한 자신의 몸을 죽여서라도 아리따운 몸을 회복하고 싶었던 자신의 처절함마저 외면당하는 건 그녀 스스로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위선과 가식의 외양으로 추한 본질을 가렸던 권력 남성들의 맨 얼굴이 드러날 수 있는 기회다. 여성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자들이 공석에서 성폭력을 옹호하거나 저지르는 건 그들의 정신 세계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정치인, 조선일보 방씨 일가, 방송사 피디 등 권위와 고상한 얼굴로 위장한 자들의 정신 분열을 조금이라도 막아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 후보와 도지사의 질 낮은 수작에서 보듯 권력자들이 공석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성매매나 성 상납을 정당화하는 것은 공기처럼 흔하다. 한국 사회의 감수성은 여기에 철저히 둔감하다. 목숨을 스스로 끊는 비극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가 지워진 후에야, 자신의 몸이 능멸당한 사실을 폭로한 비극은 여기에서 배태되었다. 그녀의 죽음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회는, 죽어서도 한 여성을 모욕하는 셈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9/04/09 [10:3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사랑운동공동체 2009/04/09 [21:57] 수정 | 삭제
  • 현저하게 욕보이는 쉬지않는 음심으로 가득하고 연락을 일삼으며 탐심으로 연단된 저주의 자식들아 가장 거룩한 곳에 앉아있는 가증스런 멸망의 자식들, 불법의 세력들아 화인 맞은 양심으로 차라리 태어나지 않으면 좋을 뻔하였구나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통곡하며 돌이키라 그렇지 않으면 너와 네 자녀들을 죽이며 침상에 던져서 욕을 받게 하리라 심는되로 거두리라 회개하라 첫사랑을 회복하여 본능의 짐승의자리에서 이성의 자리로 돌이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