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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3선 개헌과 노무현의 2007년 연임 개헌
[주장]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정략적 외면말고 국민의 이익 생각하라
 
예외석   기사입력  2007/03/31 [08:01]
우리 집안에는 한국 정치사의 격변기마다 한복판에 있던 어른이 한 분 계신다. 예춘호(芮春浩)씨가 바로 그분인데 집안에서는 할아버지가 되신다. 이젠 야인으로 돌아가 행운유수(行雲流水)를 좌우명으로 낚시와 서예로 소일하며 평화스럽고 담담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다.

글을 쓰고 붓을 닦다보면 다른 생각이 날 틈이 없다고 한다. 남의 욕을 할 시간도 없어지고 욕심이 없어지니 굴욕적으로 남에게 매달릴 이유도 없다고 하신다.
 
세간에 '마지막 재야'로 통하는 예춘호씨의 노후는 따스한 겸손, 표나지 않는 의리, 내연하는 지조, 느긋한 여유를 즐기는 삶이었다. 집권당 사무총장, 3선 개헌 반대투쟁의 선봉, 반독재 투쟁의 중심, 그리고 3김(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모두와 가까이 지낸 정치 역정 등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지만 이제는 조용하게 주변을 살펴가며 노후를 보내고 있다.
 
가장 힘들었던 일이 3선개헌 반대투쟁 때였다고 한다. 누구보다 그분을 믿고 아끼던 박대통령을 반대하면서 심적으로는 많이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찬성했겠지만, 결코 자신의 신념과 소신을 굽히지 않았었다. 공화당 원내총무까지 지냈던 화려한 경력이었지만 결국 반당분자로 몰려 당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박정희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10월유신을 단행하였으나, 그로 인하여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칙들이 부정되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했다.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선거에 민주공화당 후보로 다시 출마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또 당선됨으로써 1972년 이후 유신체제와 함께 장기집권을 했던 것이다.
 
1973년 유신헌법개정 100만인 서명운동, 1975년 민주회복국민회의 결성, 1976년 민주구국선언, 1979년 부마항쟁(釜馬抗爭) 등 유신독재체제에 항거하는 민주세력의 투쟁이 계속되었다. 결국 부하의 총탄에 맞아 박정희가 사망함으로써 10월유신체제는 그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 후 예춘호씨는 1980년 5월17일 밤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조작된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주모자라 하여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요원들에 의해 불법 연행되었다. 가혹한 고문과 조사 끝에 1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풀려났었다. 군부독재정권과 등을 돌린 대가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을 잊고 대자연과 더불어 허허롭게 노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어른의 말을 빌면 "때가 아닐 때는 자연을 벗삼아 가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 입신을 위해 각지를 돌아다닐 때 은둔한 노자 계열의 사람들이 '공자 너도 집에 돌아가 농사를 짓는 것이 어떠냐'고 비아냥거렸다. 정치를 하건 사업을 하건 적기에 담담하게 물러나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집권당 사무총장 할 때 아침마다 출근하다시피 우리 집으로 뻔질나게 오던 사람이 사무총장에서 물러나니까 코빼기도 비치지 않더라." 권력의 속성이란 그런 것이었다.    
 
세월이 20년이나 흐른 지금 다시 참여정부에서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낡은 정치를 청산하겠다'고 공약을 했었고 이제 그 공약을 실천하려는 것이다. '낡은 정치 청산'은 노 대통령의 역사적 책무이자 대국민 약속이었다. '6·10민주항쟁'으로 얻은 값진 성과물인 지금의 헌법은 1987년에 개정된 것이다. 20년이나 지난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어느 누구도 이젠 장기집권이나 독재정치를 꿈꿀 수 없게 되었다. 국민들의 정치의식과 시민의식이 많이 발전했고, 정치·사회 시스템이 성숙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개헌 정국에서 정치집단들이 자신이 속한 정당의 이해득실을 따져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나름대로 계산을 따지느라 분주할 것이다. 어느 정당 어느 성향의 정치인들에게 유리하고 불리할지 모르겠지만, 국민들에게는 무조건 이익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개헌과 관련해 함구령을 내려놓고 있는 현실이다. 정치적 계산에 의한 개헌론이기 때문에 무조건 반대라는 것이다.
 
입만 열면 경제가 파탄났다며 민생문제를 걱정하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남북문제를 비롯한 통일이며 개헌 등과 같이 민생과 직결된 문제들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분석을 해보고 걱정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당리당략에 빠져 국민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들 국회의원들이 개헌발의를 어떻게 하고 어떤 방법과 절차를 거쳐 의결 또는 부결하는 지를 관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또다시 의장석을 점거하고 농성이나 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가 된다.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여론조작을 하는 것 같다. 차기 정부에서 하든 말든 그것은 전적으로 차기 정부 몫이므로 노무현 대통령이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지 한번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 시대부터 계획되었던 수도이전 문제를 참여정부에서 추진하는 것이 못마땅하여 난리를 친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는 정당들이 개헌의 내용과 일정을 순순히 합의할 것이지는 의문이 간다.   
 
먹고살기에 바쁜 국민들 입장에서 개헌 정국이란 아닌 밤중에 홍두깨같이 정말 관심조차 없을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는 국회에서 의결 절차를 앞당겨 주면 여론의 추이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레임덕 시기를 늦추면서 여권에 불리한 대선 판도를 흔들어 보려고 개헌을 들고 나온 것일까.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이다.

이미 많은 국민들이 그동안 홍보된 내용만으로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의식들이 이제 여론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충분히 성숙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패는 이미 던져 졌기에 적극 추진하여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 해본다. 
* 필자는 경남 진주시 거주하며 한국항공우주산업 노동자, 시인/수필가, 열린사회희망연대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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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3/31 [08:0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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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ㅎㅎ 2007/03/31 [21:40] 수정 | 삭제
  • 거짓말하며 FTA 밀어부치는데 생각도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