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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불의의 전쟁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미국의 대이라크 침략전쟁을 지원하는 한국군파병을 반대하며
 
임종석   기사입력  2003/03/28 [00:02]
존경하는 박관용 국회의장 그리고 선배동료의원 여러분! 
서울 성동구 출신 임종석의원입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노라 선서하며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시작한지 3년, 원칙을 지키되 품위와 균형을 잃지 않으려 끊임없이 노력했으나 지금 이 순간 비록 그것이 거칠더라도 당당히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평화를 바라는 전세계가 한목소리로 반대했던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이 마침내 시작되고 일방적 파괴와 살상이 자행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불행히도 이 야만스런 전쟁에 지지와 참전을 공식화하는 파병동의안 의결을 위해 국회를 소집하였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80%가 이라크전쟁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의 선택은 엄숙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여 국가가 결정하는 최종선택을 책임 있게 검토하고 의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결정하고 360억원이 소요되는 건설공병과 의무대 700여명의 이라크 파병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였습니다.

  저는 우선 북핵문제의 심각성과 한미관계의 특수성 그리고 남북관계의 미래를 고려하여 국익차원에서 내린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정부의 고민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안전이 미국과 직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달리 선택할 길이 없는 현실외교라는 평가 또한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자주외교를 강조해왔던 노무현대통령이 미국의 대이라크전쟁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밝히는 순간, 그 비감한 표정에서 더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고 약자의 처지가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만으로 끝내고 지나갈 수는 없습니다. 이라크 파병동의안을 국회가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국익과 민족의 장래에 보탬이 될 것인지를 심각하고도 냉정하게 검토해야만 합니다.  

  이라크전쟁에 파병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동맹국인 미국에 대한 정치외교적 문제인 동시에 인류의 염원인 평화와 공존을 위한 양심과 윤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저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합니다. “한미동맹”은 유엔헌장이나 국제법을 부정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무시해도 좋은 절대불변의 신앙이 아닙니다. 국회는 정부의 결정을 추인하는 단순 통과의례일 수 없으며, 이라크 파병에 대한 동의 여부는 평화와 전쟁, 공존과 대결, 인권과 반인권 사이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참고기사]이영철, 386국회의원, 개혁파 장관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대자보 98호

  본의원이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이유는,

첫째, 이번 전쟁은 유엔정신과 국제법을 무시한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으로서, 한국이 동맹국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테러방지와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명분으로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였습니다. 300여회에 걸친 유엔 무기사찰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량살상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알 카이다 등 테러조직과 관련된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예정된 수순대로 이라크에 학살과 파괴의 작전명령을 타전하고 있습니다. 유엔정신과 국제법을 무시하고 전쟁을 위한 전쟁, 파괴를 위한 파괴를 선택한 것입니다.

유엔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쟁과 폭력의 공포로부터 인류를 보호하고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설립된 최대 권위의 국제기구로서 세계평화와 안전을 유엔헌장 제1장 제1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엔의 권위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으로 무너져 버렸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거치거나 외부공격에 대한 자위권 발동의 경우가 아니면 무력행사를 할 수 없다는 유엔헌장 제7장을 무시한 불법행위로서 전 세계에 대한 야만적 폭거입니다.     

혹자는 동맹국으로서 한미간 의무를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국제법을 무시한 침략전쟁은 동맹국으로서의 의무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는 “동맹의무는 당사국 중 어느 일방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정이 외부로부터의 무력침공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인정될 때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번 전쟁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를 거부하고 생명과 문명을 파괴하는 야만적인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인구 2,400만중 1,200만명이 15세 미만의 어린이인 나라, 2001년도 보고에 의하면 매달 6,000명의 5세이하 어린이들이 식량난과 질병으로 숨졌고 91년 걸프전 이후 미국의 경제봉쇄로 죽은 사람 숫자만 170만인 나라, 이런 이라크 국민이 지금 또다시 740만명의 사상자와 난민, 이주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침략전쟁의 가공할 공포앞에서 떨고 있습니다.

  또한 전쟁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식수처리 시설의 파괴로서 약 1,250만명이 식수를 공급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치유불능의 심각한 위생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지금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은 정확히 말하면 전쟁이 아니라 수천년에 걸쳐 이룩된 생명과 환경, 역사와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파괴와 재앙입니다. 야만 그 자체입니다. 미국의 공격이 계속된다면 머지않아 이라크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참혹한 죽음의 땅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러한 일방적인 살육과 파괴를 두둔하고 나아가 파병을 결정한다면, 우리 모두는 심장이 뛰지 않는 기계인간과 다를 바 없습니다.    

셋째,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석유개발권을 목표로 한 전쟁이며, MD구축으로 팍스아메리카나를 실현하려는 고강도 전쟁전략의 일환입니다.

  미국 부시행정부의 대외정책은 군사전략을 통해 세계패권국으로서의 정치적 지배권을 유지하고 경제적 이익을 재창출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장기적 에너지 공급원의 확보와 미사일방어망(MD)의 구축을 목표로 하는 고강도 전쟁전략의 수행입니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의 확보는 미래세계의 패권을 위한 수단입니다. 미국이 전 세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 침략을 강행한데는 세계 제2위의 유전국인 이라크를 지배함으로써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석유개발권을 확보하는데 있습니다.

  또한 미사일방어망(MD)의 구축은 잠재적 위협요소로 규정되는 악의 축을 항상 필요로 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전쟁을 야기합니다. 이라크와 북한, 이란 등 소위 악의 축으로 지목된 국가는 단기적인 미국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반복적으로 대립과 전쟁의 카운트 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부시행정부는 그동안 외교를 전쟁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전쟁을 합리화하고 참전국 숫자를 늘리기 위한 이기적 수단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리고 유엔안보리가 미국의 이기적 전쟁에 반대하자 독자전쟁을 시작했고 미국에 정치경제적으로 의존된 국가들의 참전을 강요하며 명분 없는 살육과 파괴를 강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궁극적으로 북한핵문제 해결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에 역행하며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것입니다.

  미국의 대이라크전쟁에 대한 정부의 지지와 참전 결정이 북한핵 문제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민족의 사활이 걸린 과제이며 남과 북이 신뢰의 기반위에서 교류와 협력을 지속해 나갈 때 가능합니다. 그런데 미국이 여전히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제재를 지속하려 한다면, 미국의 이익과 한국의 이익은 근본적으로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비록 현재는 이라크와의 전쟁에 집중함으로써 북핵문제로 인한 북미간의 긴장과 갈등이 일시적으로 잠복되어 있지만, 미국의 대북정책의 기조가 변하지 않는 한 이라크  

  전쟁 이후의 한반도 정세는 역시 북미간의 긴장과 총체적인 불안정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도 않았고 테러조직과의 관련성도 드러나지 않은 이라크에 대해 미국이 취한 선제공격을 생각할 때, 핵무기개발을 의심받고 있고 미사일 발사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미국이 과연 스스로 대화와 평화적 방법을 선택할지 극히 회의적입니다.

  결국 한국이 이라크전쟁에 참전하고 지원하면 미국이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풀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지지와 파병의 논리에 발목이 잡혀 미국이 북핵문제에 대해 강경대응을 시도할 경우 속수무책인 방관자 신세가 되거나 한반도의 긴장격화를 제어할 아무런 수단도 없이 위기를 맞게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의 외교적 요구가 아닌 오직 미국 자신의 이익 즉, 세계 패권국가로서의 정치적 지배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국제관계에서 낭만적 기대나 주관적 희망에 근거하여 국가의 정치외교 전략을 짜는 것은 극히 위험합니다.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미국의 군사전략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전 세계와 손을 잡고 살육과 파괴의 전쟁을 근본적으로 종식시킬 때 보장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선택을 평화를 바라는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라크 파병동의안을 통과시킨다면 역사는 16대 국회를 평화와 양심을 뒤로하고 학살과 파괴를 선택한 야만적 전쟁의 공범으로 기록할 것입니다. 우리는 국회가 이라크파병 동의안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진실로 국익에 보탬이 될 것이며, 민족의 이익에 이바지할 것인가를 가슴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쟁동맹이 아니라 반전평화동맹입니다.

너무도 철저히 순식간에 이라크 전역을 폐허로 만들고 2,400만 이라크 국민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이 공포의 전쟁을 시급히 중단시키기 위해 유엔차원의 반전평화동맹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미국의 강요에 못 이겨 파병을 결정하면 미국과의 동맹은 유지될 수 있을지 몰라도 유럽과 중국, 러시아, 중동 이슬람국가 등 수많은 반전국가들과의 관계에서 한국의 이미지와 발언권은 크게 악화될 것이고 외교적 고립을 자초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전쟁이 끝난 후에 전후복구와 난민구호를 위해 유엔의 이름으로 지원단을 파견하려는 게 아닙니다. 불의의 전쟁임을 알면서도 침략을 감행한 미국의 강요에 못 이겨 파병을 결정함으로써 살육과 파괴의 공범이 되려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세계평화를 추구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지하는 대한민국 국회의 단호한 자존심을 보여줘야 합니다.

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은 5억달러의 전비를 우리에게 부담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걸프전을 주도한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보다 훨씬 많은 액수였습니다. 무력하게 순응하는 국가는 경제적 이익을 지킬 수도 없음을 증명하는 사례입니다. 지금의 이라크 전쟁은 91년 걸프전의 10배가 넘는 폭격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의회에 요청한 금액만도 800억달러가 넘는 천문학적 비용임을 고려할 때, 전쟁후의 전비부담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낳을게 분명합니다.

9ㆍ11테러를 직접 당한 뉴욕시 의회가 전쟁반대 결의안을 채택했고 전 세계 대부분의 종교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반전평화를 위해 나선 상황에서 한국이 살육과 파괴의 손을 들어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라크의 피로 한반도의 평화를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옳지도 않고 가능성도 없는 망상일 뿐입니다. 피는 또 다른 피를 부를 뿐입니다. 첨단무기를 앞세운 미국의 승리, 그것은 악에 대한 선의 승리가 아니라 폭력에 의한 인간의 패배일 뿐입니다.

  이라크 북부 공격을 위해 길을 열어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두 번이나 부결시킨 터키의회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평화와 양심이 이 땅에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한민국 국회이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존경하는 선배동료의원 여러분!
이라크 파병동의안에 반대해 주십시오! 기권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본문은 민주당 소속 임종석 국회의원이 기고한 글입니다.
임종석 의원 홈페이지 안내 http://www.imjs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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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3/28 [00:0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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