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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전패해도 정신 못차릴 것이다
[논단] 역사의식에 매몰된 노대통령, 허울뿐인 개혁에 지지자들 등 돌렸다
 
이태경   기사입력  2006/05/16 [19:03]
사면초가에 빠진 여당

지방선거가 불과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여당에게는 안 된 말이지만 별 이변이 없는 한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를 모면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흔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당'이라고 한다. 인물이나 정책은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호불호(好不好)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덜하다는 것이 선거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특히 지방선거와 같이 시민들의 관심도나 투표율이 낮은 선거에서는 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승패에 미치는 비중이 한껏 높아지게 마련이다.

이런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지금의 선거 국면을 바라보면 수심(愁心)가득한 여당의 표정이 쉽게 이해된다. 꽤 오래 전부터 벌어진 여당과 한나라당 사이의 지지율 격차가 도무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탓이 크겠지만 여당이 회심의 카드로 준비한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마저 이렇다할 기운을 쓰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에 출마한 여당 후보들의 형편도 별반 나아 보이지는 않는다.

여당 입장에서 참으로 답답한 것은 이런 교착상태를 타개할 뾰족한 묘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현금의 선거 구도가 새롭게 짜일 가능성도, 탄핵에 버금 갈 초강력 재료가 등장할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여당을 한층 곤혹스럽게 만드는 데는 여당과 한나라당 사이의 현격한 정당 지지도 차이가 한나라당의 선전(善戰)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일정정도 작용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지금까지 국민들의 뇌리 속에 각인된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문자로 형상화하자면 '억지와 생떼' 정도가 될 것이다.

건강한 비판과 대안제시가 무언지를 아예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한나라당은 추문(醜聞)의 수원지 역할에는 충실(?)하다. 언뜻 생각해 봐도 오징어 구타사건, 맥주병 폭행 사건, 치매발언, 여기자에 대한 성추행, 공천 헌금, 룸살롱 추태 등의 이미지가 한나라당 위에 고스란히 포개진다.

이 같은 한나라당의 변변치 않음에 더해 지방 단체장 비리가 유독 한나라당에서 두드러진다는 사실마저 가세하면 미동조차 않는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불가사의하게까지 여겨진다.

눈 밝은 시인의 표현을 빌려보자!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누가, 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가?

먼저 한나라당의 지지세력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은 경상도라는 확고한 지역적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고, 4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자칭, 타칭 한국사회의 주류(mainstream)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한나라당의 핵심지지층이라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한나라당의 지지세력을 살펴보면 결속력과 충성도가 높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조금씩 다르다.

역사적인 경험으로 보아 틀림없이 한나라당과 자신들을 정치적 운명공동체로 여길 '경상도'는 연이은 대선 패배로 대한민국의 1등 시민이라는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다. 빼앗긴(?)정권을 되찾아 와야 한다며 한나라당 지지에 열심인 '경상도'의 집단적 정서에는 유사 인종주의의 징후가 강하게 읽힌다.

4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가 다른 연령층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는 아무래도 이들의 정치적 보수성 혹은 이념적 경직성 때문으로 보인다. 이들은 참여정부를 친북-반미-반시장 정권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체제수호(?)를 위해 한나라당을 강하게 밀고 있다.

물론 이들의 배후에는 참여정부를 친북-반미-반시장 정권으로 낙인찍고 이를 확대재생산한 조·중·동 등의 보수언론이 똬리를 틀고 있다.

한국사회의 주류가 한나라당의 핵심지지세력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자신들의 정치적, 사회적 이해관계를 충실히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이들이야말로 지혜로운(?) 유권자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이들은 설익은 이데올로기에 포박되어 존재를 배반하는 정치행위를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는 않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한나라당의 지지자들은 나름대로 절박한 이유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는 중이다.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한 이들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총화단결하고 있다. 정권탈환에 대한 이들의 열망은 너무 커서 어지간한 한나라당의 잘못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지지층이 최고도로 결집하고 있는 데다 참여정부에 염증을 느낀 무당파(無黨派)의 상당수를 흡수한 결과가 현재 한나라당의 높은 지지율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구호뿐인 개혁에 지지세력이 등 돌려

반면 여당의 지지세력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그도 그럴 것이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래 대통령과 여당이 지지층에게 보여준 것이라곤 소리만 요란하고 내실은 신통치 않은 허울뿐인 개혁이었으니 말이다.

참여정부 초기의 이라크 파병부터 최근의 평택사태에 이르기까지 대통령과 여당은 줄곧 지지자들을 실망시켜왔다. 특히 경제적 양극화 해소와 대미 관계에서 참여정부의 실패는 두드러진다.

한국사회에 대한 총체적 개혁과는 거리가 먼 대통령과 여당의 행보에 지지자들은 지지를 철회하는 것으로 답했다. 분명 지금도 대통령과 여당에 우호적인 지지자들이 남아 있지만 이들이 대통령과 여당을 지지하는 데는 극도의 반한나라 정서와 가끔씩 토해내는 대통령의 민족주의적 발언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부정하긴 어려울 성 싶다.

더욱이 참여정부는 확고한 지역적 지지기반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영남은 YS에게, 호남은 DJ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지만 참여정부에게 버팀목이 되어 줄 지역기반은 이렇다하게 눈에 띄지 않는다.

상황을 한층 나쁘게 만든 것은 대통령과 여당의 태도였다. 이들의 지나친 도덕적 우월감과 자신감은 일쑤 독선으로 비춰지면서 중립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나라당의 지지자로 돌아섰다.

이와 같이 지지자는 날로 줄어들고 중립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마저 한나라당의 지지자로 돌아서는 마당에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상승하기를 기대하기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라 할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한국사회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총체적 개혁을 통해 지지자들을 더욱 집결시키고 무당파들을 자신들의 지지자로 만들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 반대로 행동했다. 결국 대통령과 여당 스스로 지금의 낮은 지지율을 자초한 셈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이번 선거를 통해 새로운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최근에 대통령이 하는 일련의 발언들을 곱씹어 보면 이런 예측은 확신으로 바뀐다.

이미 대통령은 현실보다는 역사에 너무 많이 기울어진 듯 하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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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5/16 [19:0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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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대 2006/05/17 [16:38] 수정 | 삭제
  • 40대의 보수성, 경직성?
    치명타는 부동산 거품이야. 40대 소위 386세대들이야.
    이땅에서 그나마 개혁세대야, 그런데 보수성, 경직성?
    부동산에 대해 양치기 짓거리만 하니 돌아서는거야.
    누가 그러더라. 부동산 잡는데 등신, (부동산 관련)국민기만은 귀신.
    기자도 부동산 관련 글 자주 쓰더만 이문제는 왜 쏙 빼놓나?
    분명 모르지는 않을텐데.
  • 어이가 없어서 2006/05/17 [13:32] 수정 | 삭제
  • 이봐, 역사는 곧 현실이요.
    역사를 바로 세움을 현실을 바로 헤쳐나가기 위함이요.
    노통의 이라크파병이나 평택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민노당이나 진보계통일 뿐이지. 소수의...
    현실을 위한다는건 뭔가, 도대체?
    현실을 위한다는 것은 결국 갱상도에 구애하거나 중상류층의 구미에 맞춘다는 말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