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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룸’, 할리우드 최고스타들의 타락한 이면
70년대 미국사회를 파헤친 추리소설, 영화와 함께 보는 원작의 재미더해
 
백시나   기사입력  2006/03/29 [13:53]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건, 추리소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건 추리소설 하면 셀록 홈즈를 연상할 것이다. 셀록 홈즈는 추리소설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2006년 한국의 독자들은 또 다른 홈즈 ‘루퍼트 홈즈’의 추리소설 『스위트룸‘Where The Truth Lies’』을 만나게 되었다. 이미 미국에서는 2003년 발표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2005년 ‘Where The Truth Lies’라는 동명의 타이틀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정작 미국인들은 이 영화를 거의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미국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채 제한상영관에서 상영되는 불운을 만났기 때문이다. 날로 강화되는 부시 정권의 기독교 보수화가 이 영화를 단죄(?)한 것이다. 바로 이 영화를 한국의 독자들은 볼 수 있는 혜택을 함께 누리게 되었다.
 
원작 소설을 뛰어넘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문자가 갖고 있는 상상력을 영상이 따라가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시간적으로도 제한이 있게 마련이고….
 
이 책의 원제목은 ‘Where The Truth Lies’이다. 언뜻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의미로 들리지만, 사건에 숨겨진 비밀을 풀어내어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추리소설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제목으로서는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하다.
 
그러나 루퍼트 홈즈는 ‘코믹 스릴러’의 대가답게 ‘어느 곳에서 진실은 거짓말을 하는가’라는 모순어법의 또 다른 의미로 제목을 이중화시켰다. 영어 단어 ‘lie’가 ‘자리하고 있다’와 ‘거짓말하다’라는 의미의 동음이의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진실’은 우리를 엿 먹인다. 그러나 우리 또한 ‘진실’을 엿 먹인다. 이 책 속의 ‘진실’은 단지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사이의 두뇌싸움의 매개체만은 않다. 어떤 경우에 ‘우리’가 진실을 숨기게 되는지, 진실을 거머쥔 자가 어떻게 권력자가 되는지, 무구한 진실이 왜 상처와 파멸로 이끄는지, 그 사회상과 인간상에 얽힌 복잡한 관계를 반전과 역전을 통해 보여준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습고 하찮은 것이어서 코믹하기까지 하다.
 
‘진실은 수많은 구체적 사실을 생성해낸다’는 소설 속의 진리를 손수 보여주기라도 하듯 루퍼트 홈즈는 아주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묘사하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70년대의 미국 사회, 특히 연예계에 실재했던 인물, 사물, 유행, 장소를 등장시키며 비유하기도 하고, 그 문화를 분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추리소설로서의 허구를 ‘사실’로 착각할 정도다.   
 
추리소설의 추적하는 자는 대부분 날카로운 판단력의 냉철한 인간으로 묘사되지만, 이 소설의 인물은 덩달아 욕망에 따라 움직이기도 하고, 먼저 감정에 동요되기도 하며, 생각 없이 말을 내뱉기도 한다. 그래서 코믹하다.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욕망이 이성에 의해 포장되지 않고 언어(말)를 통해 갑자기 밖으로 삐져나올 때, 속내와 겉내의 불일치로 흐름이 뒤집어질 때의 타이밍을 아주 잘 잡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진실을 밝히는 영리함과 용기와 쾌감을 아는 인간이다.
 
그래서 인물은 살아있고, 소설은 가볍지 않고 유쾌하며, 심각하지 않고 진지하다.-역자 후기 중에서

작가가 오랫동안 보로드웨이에서 극작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쌓아올린 대가답게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할리우드 최고 스타들의 타락한 이면을 파헤쳐 세계적 선풍을 일으키고 영화화까지 된 '스위트룸'     © 시와 사회, 2006
먼저, 이 소설의 핵심 사건인 모린의 살인사건은 1959년에 일어났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인 K. 오코너(영화에서는 카렌)가 이 살인 사건의 강력한 용의자들인 레니와 빈스를 만나면서 책을 쓰게 된 것은 1970년대(1970년 쯤으로 기억해도 좋을 것이다)이다. 그리고 이 책(1970년에 쓰여진 책)을 약간의 수정(거의 수정을 하지 않았거나)을 해서 출판하게 된 것은 2003년이다. 한국의 독자들은 2006년이라고 생각하면서 읽게 될 것이지만….
 
왜 30년 뒤에나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는가가 바로 작가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핵심일 수도 있다.

나는 오플레허티 부인 말고도 래니 또한 진실에 의해 해를 입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래니는 누군가가 죽기 전까지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자 했던 두 번째 이유가 됐다. 그는 책임을 회피하지도, 부끄럽게 여길 만한 일을 하지도 않았다. 그에겐 사람들을 웃기고 즐겁게 해줄 날들이 많이 남아 있었고, 배우이자 감독으로 참여했던 영화작업 후에는 한층 진지해졌다. 나는 이 이야기의 추악한 면으로 인해 몇 년 동안 진행된 그의 작품에 대해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거나 비난하는 걸 원치 않았다. 때로는 우리의 관심을 진실에서 딴 데로 돌리며 웃겨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삶에 큰 활력이 된다.-본문 중에서
 
진실이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는 않는다. 진실이 보다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작가는 30년을 기다린 끝에 출판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설정이 이 소설이 픽션을 픽션답지 않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수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1950년대 헐리우드를 주름잡던 어느 대 스타들의 문란한 사생활의 실상이 이 소설의 내용이라고 믿게 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은 여기 소개된 내용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59년 여름 이전의 내 인생에 대한 것은 나의 다른 책에 실려 있다. 그 가운데 일부분은 사실보다 더 흥미롭게 쓰여 인구에 회자되다 결국 사실로 굳어지고 말았다. 심지어는 나조차도 사실로 받아들일 정도였다. (본문 중에서)
 
작가가 본문 속에 던진 내용을 다시 음미해 보는 것도 재미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1950년대에서 1970년대 미국사회를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특히, 작가가 두 명의 살인 용의자인 1950년대 헐리우드 대 스타들인 빈스와 래니를 만나는 1970년대를….
 
1970년대는 독자들도 잘 알다시피 미국은 전시사회에 가까웠다. 베트남과의 전쟁을 치르던 시기이기도 했으며, 마릴린 몬로, 롤링스톤스, 비틀지 등이 활동하던 시기였다.
 
이 책 곳곳에는 이루가 이미 낯이 익은 아티스트들이 등장하며, 그보다 훨씬 오래된 <카사블랑카>와 우리가 텔레비전 명화의 극장을 통해 봤을 서부극들이 등장한다. 당시의 영화 세트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옛날 학교 다닐 때 독후감을 쓰라고 하면 줄거리만 잔뜩 써갔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쓴 줄거리식 독후감을 하도 오랫동안 그것도 수없이 많이 써 왔기에 독후감을 쓰려고 하면 자꾸 줄거리를 쓰고 싶은 버릇을 버리기가 참 어렵다. 아니 그 얘기를 해 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룰 수가 없다. 특히 소설이 너무 재미있으면, 어젯밤 본 흥미로운 드라마의 내용을 미처 보지 못한 친구에게 얘기해주고 싶듯이….
 
그렇다. 나는 지금 욕먹을 각오를 하고 아주 약간 그 내용을 얘기해 주려고 한다. 아주 짤막하게 말이다. 그러나 핵심은 알려주지 않고….
 
1970년 어느 날 26의 젊고 아름다운 오코너 양은 빈스에게 1959년 그거 투숙하기 되어 있던 스위트룸에서 발견된 ‘모린’이라는 여자의 시체의 관한 일을 중심으로 책을 쓰자고 제안한다. 빈스는 인터뷰만 하면 되고, 글은 오코너가 쓰며 빈스의 이름을 출판될 것이다. 그리고 출판사는 빈스에게 100만달러를 약속한다. 이 작업을 위해 오코너는 빈스의 옛날 파트너인 래니에게도 협조요청을 하지만, 래니는 변호사를 통해 이미 자신도 자신의 자서전을 집필하고 있으며, 오코너의 이번 시도가 부질없는 것이라며 포기할 것을 우회적으로 요청한다.
 
오코너와 빈스는 그렇게 하기로 계약을 한다. 단 빈스는 오커너의 질문에 노코멘트를 할 수 없는 조건으로. 또한 계약서에는 없지만 이 작업이 끝나면 섹스를 하기로 한다.(이것은 다른 추리소설에는 볼 수 없는 주인공의 돌출적인 행동이다. 어느 추리소설의 주인공이 이런 파렴치한 일을 저지른단 말인가) 
 
계약의 진행을 위하여 오커너는 자신이 살고 있는 LA에서 뉴욕으로 비행기를 타고 간다. 이때 오코너의 출판사는 오코너를 위하여 1등석을 예약해 주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래니를 만나게 된다. 이때 오코너는 자신이 편지를 보낸 오코너라는 사실을 숨기고 친구인 보니의 미를 댄다. 오코너의 첫 번째 거짓말이 시작되고, 이 거짓말로 인해 래니와의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든다. 이때 래니도 자신이 의사라는 둥, 비행기 조정사라는 둥 거짓말을 하지만 오코너와 달리 바로 거짓말이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둘의 거짓말을 비교하게 만든다.
 
비행기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뉴욕에서 데이트를 하며 오코너는 오코너가 아니 보니로서 래니의 애인이 된다. 이윽고 보니 아닌 보니는 래니와 하룻밤을 자게 되는데, 자고 일어나니 래니는 없었다. 쉽게 말해 래니에게 당한 것이다.
 
이후 어느 시상식에서 오코너는 상을 시상하는 사람으로 래니는 대신해서 수상하는 사람으로 만나게 된다. 오코너는 자신이 이름을 속이고 래니에게 접근한 파렴치한 기자(작가)로 래니는 오코너를 하룻밤의 여자로 만든 사람으로 만나게 된다.
 
빈스는 살인사건을 제외하고 일을 진행하기 위하여 수많은 노력을 하지만, 모두 허탕이 되고 만다. 살인 사건을 제외하고 자신의 동성애를 중심으로 쓸 것을 주장하지만, 오코너는 이를 거부한다. 결국 출판계약은 위기를 맞게 되는데 이 와중에 빈스는 자살을 한다.
 
빈스의 자살을 통해서 오코너는 1959년 살인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진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빈스와 래니의 오해. 래니는 빈스를 빈스를 래니를 그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 살인 사건 이후 오랜 파너인 두 사람은 결별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빈스는 죄책감 때문에 자살하지 않았다. 빈스가 자살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이 사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영화에서는 제대로 그려내고 있지 못하지만, 오코너가 빈스를 살인사건의 강력한 용의자로 추궁하는 장면과, 또 오코너가 래니를 추궁하는 장면, 오코너가 루벤이라는 메니저를 추궁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 장면을 짚어보는 것 또한 독자들이 영화와 함께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이 책을 읽지 않고 영화만 보고 루퍼트 홈즈의 문학성을 평가한다면 작가는 매우 억울할 것이다. 구성이 튼튼하지 못하다는 평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영화보다는 한 수 위의 수준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원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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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3/29 [13:5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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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2006/04/11 [21:15] 수정 | 삭제
  • 책을 샀더니 시사회 티켓을 주더군요. 영화와 원작이 무지 달라요. 소설원작을 영화화한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원작소설이 훨씬 재미있더군요. 코믹과 스릴이 잘못 어우러지면 유치하기 마련인데, 의 작가, 뛰어나더군요. 'B급 소재를 다룬, 문학적인 추리소설'이라는 표현이 딱 떠오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