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쌀개방 협상에 반대, 농민의 격렬한 항의와 더불어 경찰의 광잉진압, 절망한 농민의 음독자살 등 농업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가톨릭 농민회 사제단과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으로 구성된 '우리 농업·농민을 걱정하는 천주교 사제단'(아래 사제단)은 17일 오후 2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비상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날 시국선언에는 서울과 인천, 안동, 광주 등 10개 교구에서 신부 20여 명과 수녀·신도 등 50여 명이 참가했다.
 
이날 사제단은 시국선언을 하면서 쌀개방 협상 국회비준 처리를 중단하고, 지난 15일 농민대회에서 구속된 농민들을 모두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 천주교 사제단이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식량주권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 대자보

또한 사제단은 경찰이 농민들의 시위를 과잉 진압했다고 비난하고 쌀협상 비준에 앞서 정부에 농업회생을 위한 근본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시국선언을 준비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시국선언문에서 "우리는 오늘 외면할 수 없는 농업, 농촌, 농민의 현실을 보며 사제적 양심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밝히고, "적절한 대책없이 비준동의안이 처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고 쌀비준안처리를 반대입장을 밝혔다.

또 "WTO/DDA농업협상은 무역자유화라는 미명아래 예외없는 관세화 원칙을 앞세워 세계 각국의 다양하고 고유한 농업을 해체시키고 있다. 단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초국적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해 식량을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세계 각국의 농업을 해체시키고 있는 WTO의 문제점을 심각히 제기해왔다″고 주장했다.
 

▲ 수녀와 신자들도 시국선언에 참가했다.               © 대자보

이어 사제단은 "우리 정부는 이런 위기 상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11월 15일 ′故 정용품 동지 추모, 쌀 협상 국회비준 저지 전국농민대회′에 모인 농민들과, 구급차 앞에서 치료하던 여성들까지 군화발로 밟고 방패로 찍고 곤봉으로 얼굴을 때리는 등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정부는 지금까지의 농업포기정책도 모자라 이제는 농민까지도 포기하는 폭거를 저질렀다″고 말하며, ″경북 성주에서는 오추옥 여성농민이 ′국회 비준 반대, 쌀 개방 반대′를 외치며 음독하여 숨을 거두었다. 거듭되는 자살과 음독은 농민들의 절망과 분노의 표현이다″라고 밝혔다.

사제단은 ▲ 대책없는 쌀협상 국회비준을 반대하고, 정부-국회-농민 3자협의를 통한 대책마련 후에 처리 ▲ 정부와 국회는 쌀 협상 국회비준에 앞서 농업회생을 위한 근본적 대책을 수립 ▲ WTO는 각국의 다양하고 고유한 형태의 농업이 공존할 수 있도록 식량에 대한 상품화를 즉각 중단 ▲ 11월 15일 농민대회 구속농민을 즉각 석방하고, 과잉 폭력 진압에 대한 책임자들을 반드시 처벌을 요구했다.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본부장 유영일 신부도 "식량에 대한 권리는 하느님이 주신 것으로 사람의 기본인권이자 나라의 주권이다"라고 주장했다. 
 
사제단은 시국선언을 마친 뒤 농업 회생을 위한 야외 시국미사를 열고 "쌀개방 국회비준안이 처리되는 오는 23일까지 시국미사를 하고 명동성당 앞 비닐 농성장에서 신부들이 농민들과 함께 농성을 벌일 것이다"라고 말하며, "또 22일 2시에는 전신도가 명동성당에 모여 시국미사를 연다"고 밝혔다.
 
사제단이 시국야외미사는 87년 6월 항쟁 때 시국야외미사 뒤로 처음이다. 이같이 사안이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아펙에 여념이 없고, 아펙 이후 쌀 개방을 더욱 서두를 것으로 보여 정부와 농민, 그리고 전주교 사제단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