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이승훈 편집위원이 8일자로 올린 <북한 공식 대표사이트, 조선일보에 한방 먹여>라는 기사를 읽었다.
이승훈 위원은 이 기사에서 “북한의 대외문화연락위원회가 만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식 홈페이지”라며 주소가
www.korea-dpr.com인 사이트를 소개했다. 이어 이 사이트에 링크된 조선통신사와 조선중앙통신사의 기사를 보면 “조선일보가 ‘북한이 룡천참사 지원국을 발표하면서 남한을 소개하지 않았다’고 보도한 기사가 악의적 오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승훈, 북한 공식 대표사이트, 조선일보에 한방먹여 , 대자보 (2004.07.08)북한이 룡천참사 지원국에서 남한을 뺀 이유?
우선 후자(조선일보 오보)에 대해 한 가지만 첨부하기로 한다. 조선닷컴은 지난 5월 30일자 <북, 용천지원국서 한국만 빼고 소개>라는 기사에서 “조선중앙통신은 30일 열차폭발 참사를 당했던 평북 용천지역에 구호물자를 보내준 전세계 25개 국가를 모두 소개하면서 한국은 빼놓았다”고 보도했다.
조선통신(일본 동경에 있는 총련 통신사) 사이트(
www.kcna.co.jp)를 보면, ‘5월29일발 조선중앙통신’을 인용해 <여러 나라와 국제기구들, 해외동포들 룡천역폭발사고 구제물자>라는 보도를 내보냈다(5월31일자). 이 기사는 용천역 참사와 관련해, 4월말에 북한을 지원한 나라들로 3개국, 5월에 지원한 나라들로 25개국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으며, ‘한국’이나 ‘남조선’을 직접 지칭한 표현은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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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orea-dpr.com 사이트 첫화면 ©대자보 |
이승훈 위원의 말대로 북한 언론은 4월말부터 줄곧 남한측의 지원 소식을 보도했다. 즉, 이 기사에서 남한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북한 언론이 그 사실을 보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여하튼 이 기사에서는 남한이 빠져 있다. 조선닷컴도 이 보도에 의거해 위와 같은 기사를 쓴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이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국정브리핑 홈페이지(
www.news.go.kr)에 국정넷포터 장창준님이 6월1일자로 올린 <조선일보, 실수인가 의도적 왜곡인가>라는 기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장창준님은 이 글에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는 그 제목에서처럼 “국제사회와 해외동포의 구호 상황을 보도한 것”인데 “이북에서는 남북 관계를 국제 관계가 아닌 민족 내부의 특수한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남측의 지원은 ‘국제사회의 구호 상황’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고 풀이했다. “(이 기사에서) 남측의 지원 현황이 빠진 것은 이북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하다는 것이다.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정확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야 모르지만, 만약 이 풀이가 맞다면, 참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www.korea-dpr.com은 ‘북한 국가 공식 홈페이지’로 보기 어려워
이제 이 글의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결론을 미리 말하면
www.korea-dpr.com은 내가 알기로는 북한의 ‘공식 국가 홈페이지’가 아니다. 그럼 무슨 사이트인가? 스페인에 있는 ‘조선친선협회’가 만든 일종의 ‘북한 정보 사이트’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이트에 ‘공식’이라는 말은 몰라도 ‘북한의 국가 공식 홈페이지’라는 말을 붙이기 어려운 것은, 가령 ‘한-스페인 친선협회’가 한국 정부의 지원을 얻어 사이트를 만들었다고 해서 ‘대한민국 국가 공식 홈페이지’라고 지칭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필자는 한 일간지(동아일보 2003년 1월16일자)가 미국의 한 웹진 기사를 인용, 보도한 <북한 국가 홈페이지 설계-영어 엉망 망신> 기사에 대해 비판 글을 쓴 적이 있다. (미디어오늘 인터넷판, 2004년 1월13일자,
<남북 인터넷 뚫리면 이런 기사 못 쓴다>)
이러한 관심이 있었던 바, 8일 대자보에 ‘북한 공식 대표사이트…’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기에 “새로운 사이트가 생긴 건가?”하고 클릭해 보았다. 그런데 예의
www.korea-dpr.com 사이트를 지칭한 것이었다. “그 사이에 성격이 바뀐 것인가?” 싶어 해당 사이트 이곳저곳을 열람해 보았는데, 예전과 비교해 사이트 디자인은 다소 바뀌었지만(김일성 전 주석 추모 페이지 등), 성격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 사이트는 얼핏 보면, 홈페이지 주소나 사이트 구성 등을 볼 때 북한의 국가 공식 홈페이지로 생각할 수 있다. 초기 화면부터 ‘OFFICIAL PAGE' ‘THE DEMOCRATIC PEOPLE'S PUBLIC OF KOREA’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스페인 ‘조선친선협회’에서 만든 ‘북한 정보 사이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 사이트를 북한의 국가 공식 홈페이지가 아니라고 보는 결정적인 이유로는 이 사이트가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는 문구를 들 수 있다.
이 사이트의 소개 페이지(
www.korea-dpr.com/about.htm)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This page was created by the Korean Friendship Association with the support and official recognition from the government authorithies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www.korea-dpr.com was founded the 10th. of December of the year 2000 in front of the glorious 28th. Anniversary of the Korean Socialist Constitution.” “이 홈페이지는 (스페인의) 조선친선협회가 북한 당국의 지원과 공인 하에 개설했으며, 이는 북한의 헌법절 28주년을 맞아 2000년 12월10일 이뤄진 것이다” 정도의 뜻이겠다. 또한 ‘관련 사이트’를 소개하고 있는 페이지(
www.korea-dpr.com/menu.htm)를 보면, 각국 언어로 된 각국의 ‘조선친선협회’를 링크해놓았다(‘한국어’는 ‘구국전선’으로 링크).
이 사이트에 대해서는 개설 직후에 이미 연합뉴스가 2001년 1월3일자로 보도한 바 있다. 연합뉴스는 <북한 관련 웹사이트 새로 등장>이라는 제목 아래 “스페인의 친북단체인 ‘조선친선협회(Korean Friendship Association)’는 지난해 12월27일 북한 ‘사회주의 헌법절’ 28주년을 맞아 인터넷 웹사이트(
www.korea-dpr.com)를 개설했으며 북한 당국의 지원 아래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전했다”고 보도했다. 정확히 위 사이트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여러가지 의문들 이렇게 놓고 보면, 그럴 듯 해보이던 이 사이트에 대해 ‘상식적인’ 의문이 꼬리를 물게 된다. 한 국가의 공식 홈페이지라면 일차적으로 자기 나라의 말로 홈페이지를 구성하지 않을까? 또 북한의 국가 공식 홈페이지가 ‘한국어’라는 배너로 링크할만한 사이트가 ‘구국전선’ 밖에 없을까(북한에서 직접 운영하는 사이트는 여러 개가 알려져 있다)? 북한의 국가 공식 홈페이지가 왜 ‘조선어’라는 표현 대신 ‘한국어’라는 말을 썼을까?
또한 위 동아일보 기사가 인용한 미국의 웹진 슬레이트닷컴(
http://slate.msn.com)에 따르면, 이 웹사이트의 도메인을 등록하고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사는 ‘알레한드로 카오 데 베노스’라는 20대 청년이라고 한다. 서버는 미국 텍사스 주에 있는 인터넷 서비스 업체의 것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글쎄, 북한의 인터넷 사정이 어렵다고는 해도 ‘국가 공식 홈페이지’를 외국인에게 맡기고, 적대국의 서버를 이용해 운영할까?
이 내용을 다룬 슬레이트 닷컴 기사의 제목은 <지도자동지 닷컴/김정일 팬보이 홈페이지>(DearLeader.com/Kim Jong-il's fanboy home page)로 돼 있다. 기사가 비록 북한을 조롱하고 비웃는 내용이지만, ‘북한 국가 공식 홈페이지’를 이렇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이 이승훈 위원이 언급한 사이트를 ‘북한의 공식 국가 홈페이지’로 생각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필자 역시 북한 홈페이지 관계기관이나 관계자에게 확인을 거치고 하는 말은 아니다. 북한이 또 이 사이트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원’을 했고 어느 정도의 ‘공식성’을 부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러 모로 볼 때 적어도 ‘북한의 공식 국가 홈페이지’는 아니라고 보는 게 설득력이 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남북교류협력법이 개정되면 이승훈 위원도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 즉 인터넷 남북 접촉에 있어 통일부 장관 승인을 예외로 하는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개정안은 참으로 간단하다. 현행 제9조 제3항인 “남한의 주민이 북한의 주민 등과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접촉하고자 할 때에는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에 대해 “다만, 교류협력을 위한 인터넷 접촉의 경우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단 한 문장, 26자를 추가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26자가 실제 법률 문구가 됐을 때 몰고올 파장과 변화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남측의 네티즌이 북한 사이트 주소를 입력하기만 하면 북한과 접촉할 수 있고, 북한 주민과 ‘채팅’도 ‘합법적으로’ 하는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이는 이미 올해 초 ‘주패사이트 신드롬’에서 예고된 바 있다. 금강산 관광 개막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국내 언론이 북한 관련 기사를 ‘함부로 써댈’ 여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동안 국내 언론에게 사실상 북한은 취재원도 예상 독자도 아니었다. 뭐라고 써도 ‘안전한’, 이를테면 ‘외계인’과 같은 존재였다. 어차피 확인이 안 되는 거니까. 그러나 인터넷 상호 교류가 뚫리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올해 초 주패사이트 게시판에서는 남측 네티즌이 ‘남측 방송에서 탈북자 관련 무슨무슨 뉴스가 나왔는데, 북측에서는 어떻게 보나요’라고 묻자 북측 관리자가 ‘사실과 다르다’고 답하는, 초보적인 ‘사실 확인 문답’이 이미 이뤄진 바 있다. 인터넷 문호가 개방되고 교류가 활성화되면, 오늘과 같은 글도 다르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는 첫 단계로,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이 올 정기국회를 통과할 수 있기를 바란다.
* 필자는 미디어전문비평지 <미디어오늘
http://mediatoday.co.kr> 인터넷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