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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도 형님이 있었으면 좋겠다!"
[구미에서] '형님 예산' 내려오니 재테크?‥"무상급식 예산은 보류됐는데..."
 
김수민   기사입력  2011/02/05 [02:43]
복지공약 관련 예산, 외풍을 맞다
 
선거가 한창이던 무렵 공보 명함을 본 한 유권자가 물어왔다. "영유아 무상예방접종은 보건소에서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아, 그뿐 아니라 민간 병원에서 맞는 접종도 무상화하겠다는 겁니다." "꼭 해주세요. 국가필수예방접종으로 부족하니까 내역도 늘려주시고요."
 
나는 운좋은 시의원이었다. 의회에 들어서자마자 만12세 이하 아동의 국가필수예방접종 무상예방접종을 실시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뿐 아니다. 남유진 구미시장은 학교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소수파 시의원이, 더구나 구미 같은 곳에서 주요 복지공약을 달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예산심사를 준비하며 서류를 뒤적이던 내 표정은 굳어졌다. 영유아 무상예방접종 예산이 반으로 깎여 있었다. '당초 예산에 편성 안 될지 모른다'는 풍설보다는 다행일까. 그러나 시민단체 관계자와 시의회 의원 일부를 초청해 보건소측이 직접 설명했던 사안이었다. 인천의 동구, 남동구 구청장이 기자회견을 가져서 자랑삼아 시행을 알렸던 '선진적' 정책이기도 하다. 사실 예전엔 '진보적 정책'이라기보다는 '잘사는 도시'의 표상이었고.
 
기획행정위원회 예산심사에서 파악한 바, 무상예방접종은 예산의 절반만 우선 올라왔을 뿐  추가경정예산을 확보하여 온전하게 이뤄질 예정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적은 밖에서 찾아왔다. 연말 국회의 예산전쟁에서 한나라당이 예방접종예산을 통째로 날려버렸던 것이다. 한 동네 주민의 문의가 들어왔다. "예방접종은... 그럼 안되는 건가요?" 구미시가 당초예산과 추경예산을 합쳐 편성할 계획인 10억은  무상예방접종 예산의 70퍼센트에 해당한다. 나머지 30퍼센트는 예전부터 국가와 광역자치단체가 부담하고 있었다.  
 
국비 삭감에도 불구 구미시는 2011년 1월 1일부로 무상예방접종을 실시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예산삭감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내 추측으로는 "서민은 보건소에 가니까 민간병의원 접종예산은 필요없다"는 발상에서 비롯되었을 것 같다. 실제로 "보건소 예산은 살아있다"는 투로 뇌까린 국회의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쁜 서민들은 보건소까지 가기보다 집근처 병원을 원한다. 어쨌든 시의 의지로 위기는 넘겼지만, 나를 비롯한 진보 성향 의원들의 공약이 걸린 사안들 몇가지는 외풍을 톡톡히 맞게 된다. 
 
무상예방접종에 이어 '장난감 도서관'까지?
 
지난 예산심사에서 내가 눈썹을 꿈틀한 사업이 또 하나 있었다. '장난감 도서관'. 말 그대로 장난감을 빌려주는 시설이다. 금세 장난감에 질리는 아이들, 미니 미끄럼틀 같은 큰 장난감이 부담스러운 부모들에게 매우 필요하다.  이 역시 내 공약 사항이었는데, 나는 또 운이 좋았다. 내 지역구에 장난감 도서관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무상예방접종과 마찬가지로 내가 별스럽게 노력하지 않고 얻은 결과였다. 경상북도와 구미시가 쌍방으로 예산을 지원하고 한 시민단체가 운영을 위탁받은 것이다. 나는 지역구 차원의 고민을 벗어나 여유롭게 '장난감 이동도서관'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예산 서류에 장난감 도서관 관련 예산은 단 한푼도 올라오지 않았다. 사연인즉슨 경상북도의 내년도 지원 계획이 없다는 이유로 구미시도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것이었다. 장난감 도서관이 들어선 구평동은 영유아와 젊은 부모들이 많은 지역이었다. 시설 운영이 흔들리거나 좌절될 때 터져나오는 원성을 누가 감당할 텐가.
 
물론 지금은 큰 걱정하지 않는다. 경북도와 도의회는 2011년도 장난감 도서관 예산을 수립해 통과시켰으며, 구미시가 추가경정예산을 확보하면 전년도처럼 운영이 가능할 전망이다. 얼마 전에는 울산 북구의 민주노동당 윤종오 구청장이 장난감 도서관을 벤치마킹하러 찾아왔다. 그 시각 평생교육원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외래강사들을 면접하고 있었기에 맞이하지는 못했지만. 울산 북구야말로 주민참여예산제나 비정규직 지원센터 같은 배울거리가 많은 곳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한편 학교무상급식 예산은 시에 의해 세워졌고 시의회에서도 통과되었다. 구미의 YMCA, 참여연대, 농민회, 전교조 등 사회단체나 진보성향 시의원들은 1차적으로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했었다. 항간에서는 읍면 지역에서 우선 실시하자는 방안도 있었다. 시는 조속한 결정을 못 내리다가 면 지역은 초등학교, 중학교, 읍 지역과 동 지역은 초등학교 1~3학년을 대상으로 전면무상급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경북 교육지원청도 대응투자를 약속했다. 32억 더하기 32억. 우선 구미시는 32억 가운데 20억을 책정했고 시의회는 이를 통과시켰다.
 
그런데 의회 일각의 반격이 있었다. 학교급식을 예전에 유통축산과가 담당했었다는 이유로 무상급식조례는 산업건설위원회로 상정되었는데, 위원회의 두 시의원이 반대의사를 표명한 것이었다. 산업건설위 의원 가운데 확고하게 찬성 편에 선 사람은 민주노동당 김성현 의원과 민주당 김정미 의원. 다른 의원들은 입장이 불분명했다. 이런 애매한 상황에서 관례상 택하는 방법은 정회였다. 한참 카메라가 꺼졌다 켜지는 것을 나는 의원사무실에서 지켜보았다. 상임위원장은 "보류"를 선언했다. 상임위의 선택은 모순적이었다. 예산은 통과, 조례는 보류?
 
나는 기존의 조례 조항을 뒤져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재확인했다. 의무교육대상학교에 급식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저소득층에게만 지원해야 한다'거나, '전면무상급식은 불가능하다'는 단서는 없었다. 그리고 몇몇 지자체는 무상급식조례 없이도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었다. 통과된 예산으로 시행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경북도의회가 문제였다. 시의회 예산심사에 뒤이어 열린 도의회 예산심사에서 무상급식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 본회의나 예결특위가 아니라 교육위원회에서였다. 교육의원은 아니지만 교육위원회에 들어가 있던 한나라당 도의원이 무상급식 찬성을 공언하던 차여서 희망은 있었다. 허나 다른 교육위원들이 반대한 모양이었고, 지방의회의 특성과 관습상, 그리고 한나라당 점유율이 높고 무상급식에 큰 열의가 없었던 경북도의회의 사정상, 상임위의 삭감 결정을 예결특위나 본회의가 되돌리지는 못했다. 
 
무상급식 초유의 사건은 구미에서 벌어졌다
 
경상북도는 광역시와 달라서 면적이 매우 크다. 시민들의 직접 감시가 버겁다. 게다가 경북도의회 홈페이지에는 회의녹화영상이 올라와 있지 않았다. 누가 무상급식을 막아섰는지 지켜보지 못했다. 시의원이기 이전에 도민으로서 답답했다. 도쪽으로 추가경정예산을 요청하는 동시에, 일단 확보된 시비를 가지고 대상 학년을 줄여서라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손학규 대표와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구미시를 찾았을 때가 바로 그무렵이었다. 사정을 전해듣더니 이인영 최고위원이 물었다. "그래도 일단 시 독자적 차원에서라도 시행하는 거죠?" 나와 민주당 김정미 구미시의원, 전교조 경북지부장이 일제히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날 오후 늦게 일은 터지고 말았다. 지역언론은 '구미시가 무상급식예산을 보류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타전했다. 나를 비롯한 몇몇 시의원들은 독려도 하고 채근도 하면서 집행부에게 무상급식 시행계획을 묻고 의견을 제시해 왔었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의원 발의를 염두했을 때는 초안을 모든 의원들에게 보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나와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이 이슈를 독점하려 치고 나간다는 눈총을 보냈다. 그걸 견디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화가 나지도 허탈하지도 않았다. '아 야 여 오 요 우 유 으"일 따름이었다. '어이'가 없다는 뜻이다.
 
현재 무상급식을 두고 이목이 집중된 곳은 서울, 강원, 대전, 경남 등지지만, 구미만큼 이색적인 사건이 벌어진 곳도 없다. 첫째,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과 보수 성향이라는 교육감이 무상급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둘째, 예산까지 통과되었음에도 오히려 비-한나라당 소속 구미시의원 일부가 반대하여 조례는 공중에 떠버렸다. 셋째, 정당 소속도 없는 교육의원들이 다수인 도의회 교육위원회가  무상급식을 반대했다. 이런 사연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건 진보언론조차 지방정치를 경시하기 때문일까.
 
무상급식이 유보되면서 나는 회의중 제공되는 구내식당 중식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시행될 때까지 시 예산으로 '공짜밥'을 먹지는 않을 것이다. 시의원이 무슨 의무교육 이행자도 아니거니와 나는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차상위계층도 아니다. 학교에서 안 하는 무상급식을 공직자가 누리는 건 완전히 사리에 어긋난 행동이다.

연말인지 연시인지 대구의 부동산업체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동해안권이 엄청나게 개발되니까 재테크를 하라는 흰소리였다. 길게 대꾸하고 싶지 않아 "나이가 서른이고 돈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소액으로라도 투자하라면서 덧붙이는 말 "들으셨겠지만, '형님 예산'이라고 해서…." 계속 들어주다 버럭 소리를 지를 것 같아 뭉개버리고 끊었다. 그리고 의자에 털썩 앉으며 탄식을 흘리고 말았다.
 
"아, 나도 형님이 있었으면 좋겠다!" 
* 글쓴이는 경북 구미시 시의회 의원(무소속)입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 최연소(27세) 기초의원에 당선돼 현재 시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2002년 <대자보> 필진으로 참여한 이래 다년간 정치칼럼 등을 연재해 왔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대자보> 독자들과 만납니다.
기초의원으로서 풀뿌리 정치 현장에서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kimsoom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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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2/05 [02:4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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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산 2011/02/06 [12:47] 수정 | 삭제
  • 넘얄심히하시는모습이 구미에서 새로운운동의 시작 같아서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