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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아들은 없지만 고향마을에 위문잔치 열려
안산시 어버이날 한마당 잔치... 사할린에 남은 자녀들과 생이별 아픔도
 
김영조   기사입력  2009/05/09 [16:33]

 
▲ 행사에서 주최자와 내빈이 함께 어르신들에게 어머님은혜를 부른다.     © 김영조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풍파 사나운 바다를 건너
한 많은 남화태(남사할린섬) 징용 왔네  

철막 장벽은 높아만 가고
정겨운 고향길 막연하다” 

위 노래는 러시아 사할린 동포 1세들이 즐겨 부르는 “사할린 아리랑”의 한 대목이다. 사할린은 원래 러시아가 죄수들을 보내 정착하도록 했던 땅이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는 이 섬을 “슬픔의 틈새”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사할린은 슬픔과 고통의 땅이다.  

이 사할린에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1939년부터 많은 조선 사람을 징용으로 끌어갔다. 탄광이나 군수공장에서 혹사당하던 이들은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해방을 맞았어도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후손들을 포함 4만여 명이 무국적자로 한을 삭이며 살았다. 
 
 
▲ 안산시 고향마을에서 열린 어버이날 한마당 나눔잔치에 참가한 사할린 동포 어르신들     ©김영조
 
 
▲ 행사에 참석한 내빈들(오른쪽부터 박주원 안산시장, 김동규 안산시의원, 안산시 고향마을 영주귀국자 노인회 고창남 회장, 하나 건너 민족문제연구소 이윤옥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 김영조
이에 한국 정부는 1992년부터 영주귀국 사업을 벌이고, 그 가운데 경기도 안산시 고향마을에 동포 900여 명이 정착해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 동포는 평균 나이 76살인데 자녀를 사할린에 놓고 온 생이별을 한 사람들이어서 명절이나 어버이날만 되면 눈물로 지샌다고 한다. 1세만 귀국하도록 한 정책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에도 이들은 카네이션조차 달아주는 사람도 없을 형편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고향마을에는 5월 8일 아침 10시부터 안산 고향마을 복지관 2층 대강당에서 제2회 어버이날 맞이 사할린 동포들을 위한 위안공연이 열렸다. 이 행사는 민족문제연구소안산시흥지부(지부장 황규철)와 희망새방과후학교(대표 김응기)가 주최하고 노래길동무들(회장 양열석), 상록수 풍물패가 주관했으며, 안산시가 후원했다. 

대강당을 가득 메운 어르신들의 박수 속에 행사는 시작되었다. 그런데 눈길을 끈 것은 애국가 제창을 시작하자 노래가 맞지 않고 불협화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중에 보니 동포 어르신들은 예전 사할린에서 부르던 대로 “올드랭사인”에 맞춘 옛 애국가를 부른 것이었다.
 

▲ 인사말을 하는 황규철지부장, 김응기 대표, 양열석 회장     © 김영조
 
 
▲ 답사를 하는 안산시 고향마을 영주귀국자 노인회 고창남 회장(왼쪽), 축사를 하는 김동규 시의원     ©김영조
먼저 민족문제연구소 안산시흥지부 황규철 지부장, 희망새방과후학교 김응기 대표, 노래길동무들 양열석 회장의 인사말이 있었고, 김동규 안산시의원의 따뜻한 축사가 있었다. 인사말이 끝난 다음 주최자 모두와 출연가수 그리고 내빈들이 무대에 올라 어머님은혜를 부르자 동포 어르신들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했다.
 

이후 조용팔 사회자의 진행으로 노래잔치가 시작되었다. 이날 조용팔 사회자는 여러 가지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어르신들이 모처럼 크게 웃으며 즐거운 마음을 갖도록 해주었다. 출연자들은 주로 노래길동무들 회원들이 무료 봉사하는 것이었지만 배남식, 최성규, 김경진 동포 어르신의 노래는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또 상록수 풍물패 단원들의 흥겨운 민요가 곁들여졌다.
 

▲ 축사를 하는 안산시 박주원 시장     © 김영조
 
바쁜 일정으로 행사 중에 도착한 안산시 박주원 시장은 무대에 올라 인사를 했다. 행사 뒤 잠깐의 대담에서 박 시장은 “어르신들은 고향이 사할린이고, 자식들을 고향에 두고 와 힘들고 어려운 분들이다. 그래서 안산시는 어르신들이 외로움을 달래고 편히 사실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할 생각이다.”라고 말한다.
 

이어서 이 지역 김동규 안산시의원은 “여기 어르신들은 기초생활수급자로 받는 30여만 원의 돈도 사할린 자녀에게 보낸다. 그래서 정작 몸이 아프면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하지만, 더욱 어르신들이 힘드신 것은 자식들과의 생이별이다. 그래서 어르신들의 남은 삶이 행복하려면 자녀를 하루빨리 귀국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인륜을 끊어놓는 것일 뿐이다. 위안공연도 꼭 해야 할 일이지만 이분들이 하루빨리 자식들과 상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시의원 신분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정책적인 뒷받침을 하는 데 온 정성을 쏟겠다.”라고 강조한다.  


▲ 노래를 하는 노래길동무들 박호 고문(왼쪽), 노래길동무들 신창화 예술단장(가운데), 진행을 맡은 여장남자 조용팔     ©김영조
 

▲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문처은, 김병성, 송지만, 국숙자, 이창희, 김동환)     © 김영조


▲ 민요를 노래하는 상록수 풍물패 단원들     © 김영조
 

▲ 작곡가 김덕 씨의 환상적인 색소폰 연주     © 김영조


또 주관한 노래길동무들 양열석 회장은 행사 뒤 대담에서 “어버이날 뜻깊은 행사를 주관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특히 안산시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많은 관계자 그리고 봉사자들의 협조로 성황리에 행사를 마친 것에 나는 큰 감동을 했다. 앞으로 고향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공연도 하고 보살펴드릴 작정이다.”라고 다짐했다.
 

이날 내빈으로 참석한 서울 관악청소년회관 진원식 관장은 “사실 사할린 동포 어르신들이 정착해서 사시는 마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참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처음 와봤다. 어버이날은 누구나 자식들과 당연히 함께 하여야 하는데 이 어르신들은 지금 그것이 안된다니 안타깝다. 앞으로 나라가 나서서 이 어르신들이 생이별 상태로 삶을 마치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 행사 도중 흥겨워 하는 어르신들     © 김영조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노래길동무들 박호 고문이 이 행사를 제안하고 노래길동무들 송진복 사무총장이 각 주최, 주관단체에 다리를 놓아 성사되었다 한다.

주최 측은 노래봉사 중간에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대접하기도 했다. 어르신들은 진행자의 짓궂은 농담이나 맛깔스러운 노래에 춤을 추기도 하고 활짝 웃으며 손뼉을 열심히 치기도 했다. 이날은 참석자들 모두 보람을 흠뻑 느낀 아름다운 날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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