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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를 통해 대한민국 다시 들여다 보다
[책동네] <촘스키, 사상의 향연> 민주주의 왜곡, 언어와 여론조작 분석
 
황진태
얼마 전 출간된 노엄 촘스키의 <촘스키, 사상의 향연>(시대의 창, 2007)은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촘스키의 각종 강연문과 인터뷰, 논문들을 민주주의와 교육을 중심으로 편집되어 있다. 그간 국내에서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미디어의 여론조작과 관련된 촘스키의 번역서들이 상당수 소개된 바 있지만 이번 출간은 그동안 독자들이 접하기 어려웠던 촘스키의 교육관에 영향을 미쳤던 학자들과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 그리고 영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하는 학생, 연구자들에게는 건조한 언어학 학술서적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언어학에 대한 촘스키의 생각 등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민주주의 개념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 
 
▲촘스키의 사상을 언어학, 심리학, 사회학, 교육학, 철학의 다양한 분야에 걸친 그의 인터뷰 10편, 강연 5편, 에세이 10편 등으로 묶어 소개하고 있는 『촘스키, 사상의 향연』     © 시대의창, 2007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대한민국 헌법 제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적시되어있는 것을 누구나 알 정도로 오늘날에 와서 이러한 질문은 식상하게 들린다. 촘스키의 사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는 미국의 제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1816년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음을 촘스키는 주목한다.
 
“이 나라(미국)는 금융기관과 돈 가진 기업들에 바탕을 둔 귀족제가 정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516쪽)
 
맑스의 <자본론>이 출간되기 반세기 전의 이 주장은 마치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를 예견하는 듯하다. 이어서 제퍼슨은 두 부류로 사람을 나누면서 이러한 우려에 대한 해결책을 예측한다.
 
“한 카테고리는 민중을 불신하고 두려워하여 민중들의 손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아서 고위계급의 사람들에게 건네주려는 사람들이다. 다른 한 카테고리는 민중과 자기자신을 동일시하고, 민중을 신뢰하며, 비록 민중이 가장 현명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공공이익을 맡길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안전한 보관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517쪽)
 
제퍼슨은 두 번째 카테고리의 사람들이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제퍼슨이란 인물은 고전적 민주주의자로서 진보진영보다는 시장주의, 보수진영에서 인용하거나 예찬하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앞서 인용한 제퍼슨의 주장을 읽으면 상당히 급진적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 걸까? 촘스키는 이어서 오늘날의 시장경제학자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아담 스미스를 소개한다.
 
“그(아담 스미스)는 너무 앞선 시대에 살아서 현대 산업자본주의의 독재적 구조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당시에 이미 합자회사(현대의 주식회사의 전신)에 크게 반대했습니다. 그는 회사가 인격화되어 영구 지위를 획득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권리를 갖고 있되 죽지는 않는 “불멸의 인간”이 되는 것을 크게 경계했습니다.”(518쪽)(필자주-법인의 문제점은 가령 자유무역협정이라는 NAFTA로 인하여 멕시코에 진출한 제너럴모터스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지만, 뉴욕에 사는 피와 살을 가진 멕시코인에게 그런 권리가 없다는 점에서 문제적인 것이다. 67쪽 참조) 
 
이렇게 오늘날의 시장경제주의, 신자유주의자들의 근원이 되는 토마스 제퍼슨, 아담 스미스의 고전적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는 현대 미국에서 그토록 자랑하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촘스키는 현재가 왜곡된 민주주의 개념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임을 주장한다. 이는 한국사회와 연관하여 사유하는 데도 무리가 없다. 굳이 김동춘 교수가 한국사회가 ‘기업사회’로 향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또한 삼성문제 등을 통해서 제퍼슨이 우려한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촘스키가 중도로 분류되는 토머스 제퍼슨, 아담 스미스를 언급한 의도는 최소한 본래 중도의 이념적 위치에서만이라도 제대로 활동한다면 현재의 난국을 상당 부분을 타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인용이 설득력을 얻는 것이지만 미국뿐만 아니라 미국을 닮은 한국 또한 중도는 그저 표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통계적 중간 지점으로 밖에는 기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행이리라. 
 
민주주의의 왜곡의 원인과 해결책, 교육과 대학
 
촘스키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왜곡이 교육에서 기인하고, 또한 교육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촘스키는 소련의 경우에는 오히려 전체주의 교육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에 문제의 진단을 수월하게 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이름 아래 부드럽게 통제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곤혹스러움을 강조한다.
 
민주사회 체제는 “사람들이 하는 것을 통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것도 통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국가는 폭력을 사용하여 국민들의 복종을 확보할 수 있는 힘이 없고, 사상은 행동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질서의 유지를 위해서 그 원천(사상)에 직접 위협을 가해야 합니다.”(441쪽)
 
“노골적이고 저속한 세뇌교육보다 더 중요하게 경계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학교에서 발견되는 전체주의라는 일반적 양상과 문제 해결에서 전문가에 대한 경외감을 앞세우는 기술관료적인 사고방식 등입니다.”(369쪽)
 
인터뷰를 했었던 1971년 당시는 미국의 베트남 참전에 대한 여론과 지식인 사회의 침묵에 대한 비판에서 제기된 발언이지만, 이는 한국사회에서는 황우석 사태 등에서 관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술관료적 사고방식을 깨기 위한 문제의식과 토론의 활성화의 본격적인 장은 대학이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들은 삼성관 등을 세우고,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데에 안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촘스키는 대학의 기업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대학의 기업화는 “대학이 담당해야 할 해방자의 역할과 기존(부패한) 질서의 파괴자로서의 역할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롭고 건전한 사회에서 대학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대학의 온전한 정체성을 지키고 고유한 책임을 지키는 것은 그 자체가 명예스럽고 어려운 과업입니다.”(425쪽)
 
여기서 촘스키의 이름을 굳이 거명하지 않더라도 독자들은 한국의 대학이 어떤 상황인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몇 가지만 상기하면 동국대에서는 학자의 학문적 의견에 대해서 학문의 자유를 보장해주기는커녕 교수직에서 쫓아내기에 바빴다. 교내에 삼성관을 짓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이른바 한국의 명문 대학인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행태에 대해서 박노자 교수는 한 계간지에서 ‘새끼 재벌’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교수들도 충분히 교육을 받아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바로 지혜의 시작입니다. 이데올로기적 논의의 범위를 넓히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일부 교수들이 보기에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되는 비판적 입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처럼 외부기관의 압력에 반응해야만, 이데올로기의 구속복(拘束服)에 빠져드는 것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615쪽)
 
촘스키는 이러한 대학의 기업화에 대한 예방책으로 교수들의 각성을 기대했다. 그러나 명문사학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대학에서 학생들이 삼성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그 대학교수들이 학생들에 대해서 죄송하다면서 집단 사퇴서를 쓰는 게 오늘날 한국 명문대학들의 초상이다. 이는 도리어 대학 스스로 자발적으로 ‘이데올로기의 구속복’을 입고자 하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행위가 물로 컵을 채우는 일과 같지 않고 오히려 꽃이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해주는 일에 좀 더 가깝다는 것은 전통적인 통찰입니다.”(161쪽)
 
앞서 소개했지만 촘스키는 자신의 교육관이 진보적인 교육자인 존 듀이, 버트란트 러셀의 영향이 지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오늘날 신자유주의 기조가 유일한 전제로 인식하고 있는 대학사회에서 꽃이 스스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기 보다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피 튀기는 경쟁의식만을 컵에 채우려는 이른바 ‘88만원 세대’가 아닌가하는 암울한 교육현실만이 보인다.
 
1969년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상황에서 대학의 침묵과 통제에 순응하는 모습에 대한 저항의 측면에서 촘스키의 발언은 여전히 한국의 대학 당국자들과 교수들이 곰곰이 읽어보아야 할 주옥같은 구절이다.
 
“대학은 민주적 이상을 왜곡시키는 일에 들러리가 되어서는 안 되고, 사회적 헛소리의 영속화에 기여해서는 안 됩니다. 자유로운 사회 내에서 대학의 일차적 기능은, 강력한 사회적 제도들로부터 독립하여 행동하는 것이고, 그런 제도들이 강제적으로 부과하는 이데올로기를 과감히 벗어던지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금방 실현될 이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투쟁해야 합니다.”(592쪽)
 
남은 이야기들: 언어학과 여론조작
 
본서의 책제목이 <촘스키, 사상의 향연>이라고 적시하듯이 서평에서 소개한 민주주의와 대학에 대한 논의뿐만 아니라 촘스키의 생성문법에 대한 논의에서 나아가 언어학 일반, 언어에 대한 그의 폭넓은 생각들은 언어학을 전공하지 않은 필자도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었다. 이젠 한국에서도 익숙한 미디어의 여론조작에 대한 촘스키의 예리한 분석은 여전히 흥미롭다.
 
더불어 촘스키 본인은 자신의 언어학과 여론조작에 대한 분석이 연결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필자는 본서에 언급된 생성문법의 논의는 여론조작,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과도 연결되는 부분을 발견했었다. 이는 편집자인 오테로가 촘스키의 글들을 정리하면서 의도한 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언어학을 공부하는 독자들과 여론조작 분석과 미국 제국주의 비판을 통해서 촘스키를 알게 된 독자들이 상호 연결될 수 있는 고리를 의도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독자들 중에 방대한 분량에 기죽어서 책을 펼칠 엄두가 안 난다는 생각은 떨쳐도 좋을 듯싶다. 다양한 주제들과 한국사회와 포개어 생각할 수 있는 부분들이 적지 않은 점에서 그리고 대부분 구어체이기 때문에 책장을 넘기는 것은 편했다.
 
끝으로 이번 촘스키 서적을 번역 출간한 도서출판 시대의 창에서는 그간 몇 권의 촘스키 번역서 시리즈를 출간하 바 있다. 필자가 알기로는 이례적으로 이전의 책들이 사회과학서적으로는 보기 드물게도 만부를 넘는 판매량을 기록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800여 페이지가 넘는 이번 서적의 출간은 메이저 출판업체가 아닌 작은 출판사가 감행하기에는 여전히 상당한 모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책 내용의 품질이 떨어지지 않음을 출판업자들도 자신하는 반증일 테다. 앞으로도 한국사회의 유익한 돋보기가 될 수 있는 서적들이 국내에 소개될 수 있도록 독자들의 일독과 성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사입력: 2007/12/20 [00:16]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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