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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제보자 책임지지 않는 사회
[주장] 정부는 양심선언이나 공익제보자들을 위한 안전망 구축해야
 
예외석   기사입력  2007/08/13 [07:56]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체험하며 터득하는 처세술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간혹 지혜와 영악함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앞에 나서지도 말고 , 뒤에 처지지도 말고 중간에만 있으라.”고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도 있다.
 
중·고등학교 윤리도덕 시간에 배워 온 삶의 철학은 성인이 되면서 퇴색되어 가고 책대로 살면 나만 손해 본다는 의식들이 자리매김하게 된다. 엉뚱하게 지배자의 논리도 책대로 살라고 강조한다. 질서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한다. 법을 잘 지키고 조직에서는 규정을 준수하라고 가르친다.
 
세상은 불행하게도 윤리도덕보다는 힘의 논리가 더 앞서간다. 윤리를 강조하면서도 입바른 소리를 하면 모난 돌이 정 맞듯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세상은 수많은 모난 돌이 정 맞으며 깨지고 채이면서 한발자국씩 진보해 나간다고 믿는다. 결국 그 돌들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기 때문이다.
 
어느 잡지에서 「바른청년 와타다의 선택」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는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일본계 아버지와 중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청년이었다. 퍼시픽대학에서 재정학을 전공했고, 2003년 우등으로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 후 미 육군 포병장교로 임관하여 1년 남짓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면서 촉망받는 장교로 최상의 인사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9.11테러 이후 참전하게 된 이라크 전쟁을 부당하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미국 헌법이 제시한 가치와 규범을 지키고, 국민의 평화와 안녕을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장교가 이런 전쟁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부당한 명령에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었다.
 
윤리도덕에 대한 가치도 사람들마다 자신의 신념이나 철학에 따라 다르게 해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근본은 하나이다. 결국 바르고 정직하게 살자는 것이다. 필자가 예를 들어가며 장황하게 썰을 풀은 이유는 요즘 TV에서 공익제보를 강조하는 광고가 자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윤리경영’업무를 보다가 그 실체를 알게 된 필자는 그 공익광고를 보면 왠지 씁쓸해진다.
 
공익제보자들의 스트레스 경험은 매우 다양하며 그 결과의 양상도 매우 다르다. 대부분의 제보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긍정적 결과보다는 거의 회복불능에 가까운 심각한 후유증이 많다. 해직된 전직 감사원 공무원, F-15K 문제점을 지적하다 불명예 전역한 공군대령, 그리고 법에도 없는 괘씸죄로 해고된 두산중공업 노동자의 사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공익제보는 사회의 칭찬과 격려보다 오히려 따가운 시선과 비난이 많다. 조직 내에서 이들에게 가해지는 보복조치들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집단따돌림이다. 이로 인해 제보자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위협을 받게 되고, 이혼이나 자살 등의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공익제보를 권장하려면 먼저 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이 확고하게 구축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건전하고 투명하게 되기보다는 오히려 후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맑게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관심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고통의 요인을 없애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제보자들에게는 반드시 주변의 경제적 지원과 심리적 안정, 그리고 가족의 평화가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제보자의 입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해고나 소송 등 의외의 요인들이 발생하게 되면 제보자들은 자책과 후회를 하게 된다. 이들은 결국 자신과 가족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투쟁할 수 있는 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조직사회에는 폭력성이 만연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언론에서 다룬 사례들의 이면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시간이 흐른 뒤에 살펴보면 이러한 조직사회의 폭력성은 제보자에게 심각한 위험발생요인이 될 수 있다. 공익제보를 활성화할 목적으로 개인의 인권적인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면, 더 큰 부작용을 낳기 쉽다.
 
제보자들을 좌절시키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주변사람들이다. 양심에 의해 선택한 행동이 권력과 질서에 도전하고 조직의 위계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가혹하게 공격당하고 만다. 그들을 보호해 주어야 할 안전망은 찾아 볼 수가 없고, 배신자라는 낙인과 함께 공동체에 대한 기대와 신뢰는 여지없이 무너져버린다.
 
보다 맑고 투명한 사회가 되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수고와 희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이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어 나갈 수 있게 힘을 발휘하려면 공익제보의 방법을 보다 안전한 방향으로 형성 해 나가야만 한다. 더 이상 제보자들의 희생이 없어야 할 것이고 사회문화가 그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해주는 것으로 승화시켜 나갈 때만이 공익제보의 꽃은 활짝 피어 날 것이다.
 
정부에서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기존에 공익을 위해 양심선언이나 제보를 한 의로운 이들에게 명예회복과 함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의사(義士)로서의 예우를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제도적 뒷받침도 없이 공익제보만 강조한다면 공염불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 글쓴이는 수필가. 한국항공우주산업 노동자입니다.
* 필자는 경남 진주시 거주하며 한국항공우주산업 노동자, 시인/수필가, 열린사회희망연대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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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8/13 [07:5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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