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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생은 또 얼마나 홀로 잘났던가
[광화문에서] ‘솔직한 유물론자’ 김훈의 ‘말과 생’, 비극이면서 명랑한가?
 
이종태   기사입력  2007/04/25 [12:37]
김훈은 ‘솔직한 유물론자’(唯物論者)다. 철학 사상사에 등장하는 관념론의 안티테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의미의 유물론. ‘사회적 명분으로 겉치장하고 있는 너, 사실은 돈을 벌고 밥을 먹기 위해서 그러는 거 아니냐’는 발칙한 질문! 그의 수필집인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생각의 나무)를 잠시 기웃거려 보자.
 
“사내의 한 생애가 무엇인고 하니, 일언이폐지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 이게(밥이) 목구멍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그 비릿하고 매끄러운 촉감, 이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이것이 인륜의 기초이며 사유의 토대인 것이다.”(「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 중에서)
 
사회적 연대, 애국심, 계급적 분노, 공공성이 아니라 비릿한 밥의 촉감이야말로 삶이라는 것. 그리고 삶(밥)을 위한 행위는 원초적 정당성을 가진다는 것. 이처럼 자신의 유물론을 거침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 이것이야말로 김훈이 우리 사회에 귀중한 존재인 이유다. 왜냐고? 우리 사회는 유물론자로 바글거리고 있지만 이중 자신의 ‘사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침묵하는 유물론자’들은 그냥 자신의 사상(‘돈과 밥과 색이 최고다!’)을 묵묵히 ‘실천’할 뿐이다.
 
▲소설가 김훈의 신작 [남한산성] 표지     © 학고재, 2007.4
김훈은 ‘반사회적 개인주의자’이기도 하다. 최근 낸 소설 『남한산성』(학고재)의 머리말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그는 말과 글을 믿지 않는다. ‘말과 글’은 구체적 사실을 그대로 옮기지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을 ‘내뱉거나 쓰는’ 이의 편견을 담고 있으며, 화자(話者)의 이해나 권력 강화에 복무한다. 또한 ‘말과 글’은 본질적으로 추상적인 소통 수단이며 그렇기 때문에 “개별적 삶의 구체성을 배반하고 천대”한다. ‘말과 글’은 태생적으로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과 글’을 삶(밥)과 대립시키고, 사회를 ‘구체적 개인’과 대립시키며 후자(삶과 개인)의 손을 들어준다.
 
『남한산성』은 역사소설이 아니라 ‘말과 글’에 대한 수상록이다. 용골대의 청병에게 에워싸인 남한산성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글 읽는 자들은 …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친다. 임금은 “하나마나한 말을 하지 말라”고 신하들을 질타하고, 화친파 최명길은 척화파 거두인 김상헌을 공격한다. “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우나 그것은 말일 뿐입니다. 상헌은 말을 중히 여기고 생을 가벼이 여기는 자이옵니다.”
 
최명길은 청나라 칸(태종)에게 전할 자신의 항복문서를 “글이 아니라 길”이라고 표현한다. 김훈의 세계에서 말(글)과 생(현실)은 대립되고, 글(이성)과 길(실천)은 분리된다.
 
그러나 과연 ‘말’은 ‘생’이 아닐 것인가? 말과 글이 내뱉어지고 기록되는 순간, 그것은 사회적 현실이 되고, 또 우리 ‘생’ 속에 파고들어 변화시키지 않던가. 언어가 화자의 이해와 욕망, 권력투쟁으로 직조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생이란 또 얼마나 홀로 잘났단 말인가. 생을 위한 여러 욕망들, 그것들이야말로 부질없는 사회적 싸움과 질투, 증오로 ‘말’을 오염시키지 않았던가. 설사 불순함에 꿰인 ‘말과 글’이라 해도 그것들로 인류는 자신을 인식하고 바꿔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김훈이 다음의 문장에서 보여줬던, 생에 대한 너그러움을 적용하면, 우리는 ‘말과 글’의 비극성과 더불어 명랑할 수 있으리라.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먹이 속에는 낚싯바늘이 들어있다. 우리는 먹이를 무는 순간에 낚싯바늘을 동시에 물게 된다. … 낚싯바늘을 물면 어떻게 되는가. 입 천정이 꿰져서 끌려가게 된다. 이 끌려감의 비극성을 또한 알고, 그 비극과 더불어 명랑해야 하는 것이 사내의 길이다.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 중)

* 필자는 전 월간 <말> 편집장, 현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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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4/25 [12:3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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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07/04/25 [16:29] 수정 | 삭제
  • 여느 신문 서평보다 좋습니다. '비극적 명랑함'이란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