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협상이 타결됐다. 예상된 결과였으니 별로 놀랄 것도 없었고 노무현의 사기성 담화를 듣고도 별 느낌이 생기지 않았다. 이제 노무현이 바라던 대연정이 성사되었으니 축하라도 보내야 하나? 아직 개헌 문제를 비롯해서 완전한 대연정 달성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고비가 많겠지만 전여옥의 입에서 대통령 칭찬이 나오고 조중동의 필봉이 노무현에 대한 찬사로 귀결되는 이 시점에서 그 가능성은 어느 때 보다 높은 것 같다. 손녀에 대한 증여세 탈루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 보도에 예전과 달리 순한 양처럼 대응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한다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한미 FTA에서 진정 걱정되는 것 탄핵 당시 노무현 지킴이를 자처했던 세력들이 탄핵을 외치고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못하겠다는 세력들은 연일 찬가를 외쳐대고 있으니 한국정치사 최대의 역설이 벌어진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고 보면 이 사회에서 덜 혜택받은 사람들의 열망에 힘입어 대통령이 된 노무현이 알고보니 수구세력들이 개혁진영에 보낸 트로이의 목마였다는 고종석의 통찰이 지금만큼 뼈아프게 다가온 적도 없다. 나는 예전부터 노정권이 신매판정권이 아닌가 의심해 왔지만 더이상 의심같은 것은 할 필요도 없다. 자기 입으로 스스로 외쳐대고 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하긴 언제 매판세력들이 자신의 행위가 일신의 영달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던가? 친일파들도 다 민족의 이익이나 생존을 외쳐대지 않았던가? 친일파 추종세력들인 뉴라이트가 과거 친일파들을 친일민족주의자라고 규정했을 때 노무현의 친미자주 발언과 묘하게 뇌리에 겹치더라. 하긴 친미자주가 가능하다면 친일민족주의가 불가능할 이유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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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은 정부가 FTA를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국민의 절박한 외침을 외면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박철홍 | 일부 ‘노빠’들의 행태도 꼴불견인 것 마찬가지다. 언젠가 강준만 교수가 노재봉과 백기완을 동시에 존경하면서 아무런 갈등도 느끼지 못하는 논객을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노무현지지와 안티조선을 동시에 주장하면서 아무런 갈등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을 보면 그 논객의 행태만을 탓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아마 안티조선운동의 모양새가 우스워져 버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안티조선운동에서 친노세력과의 결별을 진작부터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역사의 복수라고 보는 것이 속 편할 것이다. 한미FTA를 왜 반대해야 하는가는 여기서 더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 많은 훌륭한 분들이 이미 반대논리를 개진했기에 그 분들의 저서나 기고, 인터뷰를 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FTA 반대자로서 내가 정말로 우려하는 것은 국민다수의 여론이 찬성으로 기울고 그러한 경향이 확고히 자리잡아 버리는 것이다. 지금 법률적으로 한미FTA협상 타결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은 국회비준거부 밖에 없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으므로 국민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미 자신의 소신에 따라 찬성과 반대의사를 표명한 의원들도 있지만 아직 유보적인 의원들이 많은 것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결국 그들은 국민여론에 따라 기회주의적 행태를 할 가능성이 높다. FTA 찬성여론, 현실론과 이기심의 장벽 그러나 과연 국민다수가 한미 FTA에 반대할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찬성여론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앞으로 여론이 어떻질 지 모르기 때문에 속단하기 힘들며 또 어떤 사건이 터져 여론의 향배를 바꿀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최악의 시나리오가 있다면 그건 노무현이 반대자들의 의견에 따라 이 사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국민다수가 찬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국회의 비준여부는 단순한 요식행위에 불과하게 되고 노무현은 이 결과를 등에 업고 FTA 찬가를 부르면서 다른 나라와 적극적인 FTA협상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반대자들은 반대운동을 여전히 전개하더라도 그 동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국민투표에서 반대의견이 다수를 점하게 되면 한미FTA의 정치적 정당성은 상실될 것이며, 국회비준이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설사 그 후 국회비준을 받더라도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투표를 하든 안하든 지금 현재 여론이 유리하지 않으며 이를 뒤바꿀 묘책 같은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한미FTA협상의 반민주적이고 굴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고 그 협상의 결과에 대해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면서 성토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더 큰 비극일 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의 진실과 정의를 바라는가? 최강대국 미국의 눈치를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과 미국에 기대서라도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과 그런 것들과 나와는 무관하다는 방관적 무관심의 장벽을 뚫는데 진실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각자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씩 설득해 나가는 힘들지만 지난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 밖에 달리 방도가 있겠는가? 참으로 답답한 세상이다. * 필자는 인물과 사상 독자모임( www.insamo.org)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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