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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대미무역 수지' 은폐·조작 의혹 커
[월간『말』단독보도] 정부 고위층, 공개 막기위해 KIEP에 '외압' 가한 듯
 
고동우   기사입력  2006/04/11 [17:44]
* 본 기사는 한미 FTA 실상알리기 차원에서 월간 <말>(www.mal.co.kr)이 제공한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말> 5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한미 FTA 체결시 대미 서비스 수지 적자폭이 확대될 것으로 추정되나 국내 서비스산업의 GDP, 고용 및 교역량이 증가해 종합적으로는 우리경제에 긍정적인 경제적 효과가 예상됩니다.”(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2월 21일 언론재단 주최 한미 FTA 포럼)
 
“우리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한미 FTA 체결시 경제적 효과와 관련한 여러가지 계산을 해봤습니다. 한미 FTA를 하면 경쟁을 하게 되고, 또 경쟁을 하게 되면 생산성이 높아집니다. 이렇게 생산성이 올라가면 우리나라 전체의 경제규모는 한 7%쯤이 늘어난 상태가 되는 걸로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한덕수 재정경제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3월 7일 각 부처 과장급 이상 공무원 650명 대상 강연) 
 

▲ KIEP 보고서가 발표된 지난 3월 3일 토론회의 한 장면. 이날 KIEP측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미 무역수지, 대세계 무역수지 전망 수치를 공개하지않았다  © 월간 <말> 제공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시 경제적 효과가 크다”는 핵심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원장 이경태, 이하 KIEP) 보고서가 고위층의 ‘압력’에 의해 일부 은폐·조작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월간 『말』은 국책연구기관인 KIEP가 지난 3월 3일 내놓은 「한미 FTA의 의의와 기대효과」 보고서 가운데 대미 무역수지, 대세계 무역수지 등 일부 수치가 ‘은폐’된 뒤 며칠 사이에 ‘뒤바뀐’ 사실을 확인했고, 이 과정에서 고위층의 ‘개입’이 있었다는 한 정부 관계자의 증언도 확보했다.
 
대미 무역수지 전망 수치 왜 ‘은폐’됐나
 
KIEP는 애초 3월 3일자 보고서를 홈페이지(www.kiep.go.kr) 등 외부에 공개할 때 한미 FTA 체결시 대미 무역수지, 대세계 무역수지 전망 수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공개를 하지 않았다. 실질 GDP, 후생수준, 생산, 고용 등의 증가 기대 수치만이 공개되어 있었다.
 
이는 지난 2월 3일 ‘한미 FTA 협상 개시 선언’ 직전 발표된 같은 제목의 KIEP 1차 보고서가 대미 무역수지 전망을 포함한 모든 수치를 공개한 것과 대조되는 것이어서 많은 의문을 자아내고 있었다. 한 경제학자는 이와 관련 “FTA란 직역하면 자유무역협정 아닌가. 그러니 협정의 결과는 무역수지로 직접 나타날 수 밖에 없다. 협상을 위해선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 꼭 참조해야 할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공개하지 않다니 말이 안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3월 3일자 보고서는 지난 2월 1차 보고서에 소위 ‘한미 FTA 추진시 생산성 증대효과’를 추가, 분석해 약 한달 만에 다시 발표한 보고서였다. 이로써 KIEP는 실질 GDP(1.99%→7.75%), 후생수준(1.73%→6.99%), 고용(0.63%→3.30%) 등 다른 수치의 경우 2월 보고서보다 3~5배 더 증가 규모가 큰 수치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 수치들은 발표 직후부터 최근까지 한덕수 경제부총리 등 한미 FTA 추진의 핵심 당국자들과 정부측이 한미 FTA 체결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데 적극 활용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것도 2월 보고서의 ‘미약한 기대효과’ 수치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정부 고위층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 추진에 관여하고 있는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2월 보고서의 기대 수치가 미흡해 3월 보고서가 나온 것이지만, 이 분석 결과에 대해서도 고위층 내에서 일부 불만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를테면, 애초 공개되지 않았던 대미 무역수지의 경우 ‘51억 달러 흑자 감소→72억7000만 달러 흑자 감소’로 2월 보고서보다 오히려 더 악화되는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 모처에서는 3월 보고서를 공개할 것인지 말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대책회의’까지 열렸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미 무역수지, 대세계(미국 포함) 무역수지 등 일부 수치를 ‘삭제’한 채 보고서를 공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IEP가 3월 3일 토론회 후 홈페이지 등에 공개한 보고서의 일부. 대미 무역수지, 대세계 무역수지 전망 수치가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KIEP측의 거짓말 퍼레이드, 그리고 새로운 수치의 등장
 
KIEP측은 그러나 『말』과의 인터뷰에서 이 모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위에서 언급된 2월과 3월 두개의 보고서 모두를 만든 당사자인 이홍식 KIEP FTA 팀장은 지난 4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고위층의 외압 같은 건 없다. 그리고 3월 3일자 보고서 역시 2월 보고서처럼 대미 무역수지, 대세계 무역수지 전망 수치를 공개했다”고 주장했다. 대미 무역수지, 대세계 무역수지 전망 수치를 애초 공개하지 않았던 사실조차도 전면 부인한 셈이다.

이에 기자가 “그럼 수치가 얼마가 나왔느냐”고 묻자 이 팀장은 “기억이 잘 안난다”면서 한가지 문서를 공개했다. 하지만 이는 3월 3일 당일날 발표한 보고서는 아니었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3월 20일경, 이제까지 발표된 경제적 효과 전망 부분만을 따로 모아서 정리한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이후 KIEP 홈페이지에도 공개)이란 해설서 형식의 ‘새로운’ 보고서였다.
 
이홍식 팀장이 제시한 이 보고서에는 한미 FTA 체결시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47억 달러 감소하고, 대세계 무역수지 흑자는 6억 달러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 수치는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지난 3월 31일(보고서 외부 공개 전) 방영된 KBS 토론회에서 언급한 수치와 일치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한 부총리는 “대미 무역수지의 경우 47억 달러 정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홍식 팀장이 기자에게 건넨 ‘새로운’ 보고서가 어느 시점부터 재경부 등을 중심으로 ‘내부적으로 공유’됐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재경부측도 한 부총리의 ‘47억 달러’ 언급에 대해 “아직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KIEP측이 내부적으로 연구한 수치"라고 말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이홍식 팀장은 이 수치가 지난 3월 3일 보고서 발표 당일 공개된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이에 기자는 이 팀장에게 “혹시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72억7000만 달러 감소되는 것으로 나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팀장은 “그렇지 않다”며 “47억 달러를 거꾸로 읽어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기자는 이어 다른 곳에서 입수한, 3월 3일 발표 직전(하루전인 2일로 추정)에 갑작스럽게 빠져버린 대미 무역수지 등의 수치가 모두 들어 있는 보고서 ‘원본’을 이 팀장에게 제시했다. 이 보고서에는 이 팀장이 기자에게 제시한 보고서 내용과 달리,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72억7000만 달러 감소하고 대세계 무역수지 흑자가 2억7000만 달러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
 
이홍식 팀장은 그제서야 “3월 3일 당일에는 대미 무역수지, 대세계 무역수지 수치를 아예 발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에 대한 그의 해명은 이랬다. “당시 계산상 오류가 있었다. 환율 등 일부 수치가 잘못돼서 다시 계산해야 했다. 그래서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다. 수치를 숨기려 했거나, 정부 고위층으로부터의 외압이 있었던 건 전혀 아니다.” 그래서 추후 ‘다시 계산’한 수치가 바로 3월 20일경 새롭게 정리된 보고서에 나온 대미 무역수지 흑자 47억 달러 감소, 대세계 무역수지 흑자 6억 달러 증가라는 것이었다.

▲KIEP가 3월 3일 보고서 발표 직전 '삭제'한 부분(위)과 이홍식 KIEP FTA 팀장이 지난 4월 4일 『말』에 제시한 보고서의 일부(아래). 대미 무역수지, 대세계 무역수지 전망 수치가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통상교섭본부, 본의 아니게 ‘진실’을 말하다?
 
하지만 이홍식 팀장의 해명이 맞으려면 한가지 전제가 있었다. “환율 등 일부 수치가 잘못돼서 다시 계산”했다면 대미 무역수지, 대세계 무역수지뿐만 아니라 실질 GDP, 후생수준 등 다른 전망 수치도 모두 바뀌어야 했다. 경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KIEP측이 한미 FTA 체결시 경제적 효과 전망을 위해 사용한 분석방법인 일반균형연산모형(CGE 모형, Computational General Equilibrium)은 그 특성상 어떤 변수를 집어넣느냐에 따라 결과 수치 역시 모두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팀장이 기자에게 제시한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란 새로운 보고서의 다른 수치들은 3월 3일 보고서가 애초 공개한 수치와 모두 정확히 일치했다. 한미 FTA 체결시 실질 GDP 7.75% 증가, 후생수준 6.99% 증가, 고용 3.30% 증가 등 소수점 둘째자리까지 한치도 틀리지 않았다. 대미 무역수지, 대세계 무역수지 전망 수치가 부정적으로 나오자 이 수치만을 발표하지 않고 ‘은폐’한 뒤, 중간에 ‘손질’ 내지는 ‘조작’을 가해 새로운 수치를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또한 지난 4월 6일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본부장 김현종)가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제출한 「한미 FTA 추진현황 및 향후 계획」 보고서에 3월 3일자 보고서 ‘원본’에 담겨 있던, 그리고 이홍식 팀장이 ‘잘못된 수치'라고 주장했던 대미 무역수지(72억7000만 달러 흑자 감소), 대세계 무역수지(2억7000만 달러 흑자 증가) 전망 수치가 그대로 나와 있다는 사실도 더욱더 의혹을 증폭시키는 부분이다. 이에 권 의원실측에서는 “수치를 인용한 보고서 원본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통상교섭본부측은 현재까지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통상교섭본부측이 본의 아니게 ‘진실’을 말하게 됐거나, 아니면 ‘실수’를 했거나 둘 중 하나라는 얘기다.
 
한덕수와 김현종, 거의 같은 시각 ‘서로 다른 얘기’
 
3월 3일자 KIEP 보고서의 은폐·조작 의혹과 관련, 한미 FTA 추진의 핵심 당국자들인 한덕수 부총리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거의 같은 시점에 서로 다른 말을 하고 다녔다는 사실도 의혹을 증폭시키는 부분 중 하나다.
 
한 부총리는 보고서가 발표된 3월 3일 당일부터 이 보고서에 담긴 수치를 적극 인용하며 한미 FTA 체결시 경제적 효과 부분을 설명해왔다. 3월 3일과 7일 잇따라 열린 정부 부처 공무원 대상 강연에서 그는 이 보고서에 나온 내용인 실질 GDP 7.75% 증가, 고용 3.30% 증가 부분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미 무역수지 전망 부분은 “흑자가 감소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만 했을 뿐, 구체적 수치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 부총리가 공개 석상에서 이 수치(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47억 달러 흑자 감소’)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시점은 앞서 밝혔듯 지난 3월 31일 방영된 KBS 토론회에서였다.
 
반면 김현종 본부장의 경우, 3월 3일자 보고서에 나온 수치를 공개 석상에서 언급한 사실이 전혀 없다. 한 부총리 강연과 거의 같은 시점에 열린 지난 3월 8일 상공회의소 초청 간담회에서도 김 본부장은 지난 2004년 12월 KIEP가 발표한 또다른 보고서인 「한미 FTA의 무역 및 투자 창출효과와 교역구조에 대한 연구」와 2월 발표된 1차 보고서에 나온 수치만을 인용했다.
 
이에 대해 통상교섭본부측 한 관계자는 지난 3월 3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모든 수치를 인용할 필요는 없지 않냐. 편리성, 필요성에 따라 인용하고 싶은 대로 인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기자가 “3월 3일자 보고서에 무슨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닌가"라고 묻자 이 관계자는 “우리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KIEP 보고서를 검증하겠느냐. 그쪽에서 발표를 하면 우리는 그냥 인용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어 “거의 같은 시점에 한덕수 부총리는 구체적으로 인용을 했는데 이상한 일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관계자는 약간 당황한 듯 “음모론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이야기가 안된다”고 받으면서 “보고서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연구 결과의 ‘적실성’을 검토할 시간이 없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검증할 능력이 없다”고 해놓고선, “적실성을 검토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앞뒤 안맞는 해명을 한 셈이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도 한 부총리와 김 본부장이 거의 같은 시기에 서로 다른 수치를 언급한 것과 관련, “두 분이 각자 살아온 과정이나 스타일 등이 달라서 그랬을 것”이라며 3월 3일자 보고서 자체에 특별한 문제가 있었거나 서로 ‘이견’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한미 FTA는 농업과 서비스 시장의 몰락, 경제 종속성 심화, 양극화 심화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현재 전 사회적인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측 한미 FTA 추진의 핵심 근거가 되고 있는 한 국책연구원의 보고서가 은폐·조작 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 경제학자는 이와 관련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미 FTA 추진을 합리화하기 위한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수치 은폐·조작 의혹이라는 결과까지 낳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그렇게 문제가 있는 수치를 근거로 협상에 나서는 행위는 대단히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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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4/11 [17:4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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