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교육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고교등급제와 68세대, 프랑스 교육의 변천
68혁명 이끈 주역은 중고등학생, 한국 중고등학생 사고와 행동 주목해야
 
비나리   기사입력  2004/10/19 [10:59]
고교등급제나 대학 본고사에 대한 얘기들을 보면서 어른들은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어떻게 세상이 바뀌어가고 조금이라도 나아지는지에 대한 메카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뭐가 정답일까? 그야말로 아이들에게 물어보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민주노동당 최영순 의원이 고교등급제에 대해 단호하고 격렬한 어조로 저지를 강조하고 있다.     ©대자보
가끔 가다 중고등학생들이 읽을 글이니까 쉽게 써야 한다는 얘기들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잡지나 기사 같은 거 기획하는 회의에 어떻게 같이 앉아 있다보면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
 
신문의 기고문을 낼 때 조금 큰 신문들에서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수준에 맞춰주세요..."
 
비슷한 얘기를 국감 준비할 때 종종 듣는다. 국회의원들에게 보좌진 없이 직접 답변해야 하는 경우 난이도를 초등학생한테 맞춰야 한다는 주문을 종종 듣게 된다. 사람들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던 간에 우리나라 문화 시장의 대부분은 쉬운 건 초등학생 어려운 건 중학생 수준에 맞추어 움직이고 있다.
 
오락 시장이 전형적으로 그렇다. 초등학생이 할 정도의 오락이면 꽤 어려운 오락이고, 중학생이라야 할 수 있는 오락은 엄청나게 어렵고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오락이다. 중학생들이 즐겁게 하는 전자오락을 성인들이 익히는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애어른'이 있다. 죠지 루카스가 애어른을 대충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영원히 늙지 않고 스타워즈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애어른이라고 생각한다.
 
때로 나는 죠지 루카스가 펼쳐놓은 스타워즈의 세계에서 완벽하게 나왔을까라고 반복해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들어간 스타워즈의 세계에서 다시 20대 때 프랑크 허버트의 듄의 세계로 살아가는 세계가 변했을 뿐 나는 아직도 전체적으로는 스타워즈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중간에 잠깐 들어간 에반게리온의 세계는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적응을 못했다. 내년이면 스타워즈 3편이 공개된다. 25년간을 끌어온 스타워즈의 세계에서 갑자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 스타워즈 5편의 시사회가 끝나고 빨리 다음 편을 찍어달라고 소리질렀던 초라한 모습의 노인이 한 명 있었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바로 그다. 나의 부인은 아직 아이작 아시모프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아이작 아시모프는 정작 스타워즈 시리즈가 다 끝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92년에 타계했다.
 
아이작 아시모프나 프랑크 허버트가 만들어놓은 세계는 죠지 루카스라는 아마추어리즘의 극단을 만났고, 화려하게 애어른의 세계를 만개했다. 20세기의 후반부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던 셈이다. 그 동안에 매트릭스의 세계가 열리기도 하고, 반지의 제왕의 세계가 열리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이 시기를 지배했던 것이 스타워즈라고 평가하면 너무 편협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대라고 특징지우는 습관은 그렇게 좋은 습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단편적이며 천편일률적인 '세대'라는 표현은 내 비위를 때때로 심각하게 건드린다. 그렇지만 나도 습관적으로 사용하던 세대는 68세대라는 표현을 그렇게 쓴다. 프랑스의 68세대는 그야말로 세대라는 말을 들어도 좋을 정도로 화끈했다.
 
프랑스의 68세대는 사실 중학교 때부터 준비되어 있던 세대라고 대체적으로 평가한다. 68년도에 학생운동을 만들어낸 세대라고 하지만, 실제로 68년의 세상을 바꾼 것은 프랑스에서는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중학생일 때 그들이 장 폴 싸르트르의 '존재와 무'라는 책을 탐닉하면서 읽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존재와 무’, 지금 들여다봐도 한 페이지를 온전히 나가기 어려울 만큼 어려운 책이지만, 드골의 제3공화국 속에서 프랑스의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존재와 무’를 읽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직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샤르뜨르를 읽지 않던 아이들은 까뮈를 읽었다. 조금 더 대중적이고 지나친 일반화를 가지고 있지만, 까뮈의 이방인의 테제와 샤르트르의 존재와 무의 테제는 같은 생각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르트르와 푸코, 한국에는 이런 참지식인이 언제 나올려나?     © 인터넷 이미지
 
어린왕자의 철학적 질문 역시 같은 유사한 맥락을 흐르고 있다.
 
"어른들은 숫자로 얘기하는 걸 좋아하지."
 
이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만들어낸 변화는 현대사에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다. 소르본느니 아사스니 혹은 낭떼르니, 꼭 지금의 서울의 복사판을 보듯이 부패한 구권력들이 만들어내는 대학의 불평등하면서도 비효율적인 교육체계를 한 번에 뒤집어 버렸다.
 
사건의 발단은 낭떼르라고 하는 파리 서쪽의 한 대학에서 시작되었다. F동이라고 불리는, 지금은 정치학과 법학을 주로 강의하는 그 건물에 플랑카드가 옥상에서부터 길게 내려오면서 이 거대한 사건이 시작되었다. 새로 생긴 대학이라 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학교에 올 길이 없었고, 시설도 형편없었다. 사실은 학교의 운영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시작된 낭떼르의 소요는 '수영장의 장관'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실내 수영장에서 농성중인 학생들 앞에 용감히 나섰던 교육부 장관은 이내 학생들에게 붙잡혀 수영장에 던져졌다.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68학생 운동은 한편으로는 노동조합과 연결이 되었지만, 정작 사건을 아름답게 만든 것은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이었다.
 
파행적으로 운영되던 대학의 문제에 당사자인 중고등학생들이 길거리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사태는 더 이상 공권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갔고, 정부는 서둘러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전국의 모든 대학을 국가가 사서 국립화한 것은 이 때 벌어진 일이며, 대학 사이의 서열을 없애기 위해서 학교 이름도 총장들을 불러 제비뽑기로 번호를 하나씩 부여해서 대학도 평준화시켜버렸다.
 
세계에서 제일 먼저 생긴 대학인 소르본 대학은 4대학이 되었고, 가장 나중에 생긴 대학인 생드니 개방대학은 8대학이 되었고, 문제의 낭떼르는 10대학이 되었다. 대학들이 번호 옆에 원래의 이름을 병기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보다 아주 나중의 일이다.
 
이런 거대한 변화가 준비된 것은 중학생들이 샤르뜨르를 읽기 시작할 때의 일이지만, 정작 그 때에는 아이들이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는 이유와 그 징조를 읽어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도식적으로만 해석하자면, 이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대학의 문제를 해결했고,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서 프랑스의 문화와 매체가 변화하였고, 이 아이들이 푸코의 책을 읽으면서 푸코의 지지자가 되었고, 강단해서 추방당하다시피한 데리다를 파리에서 강단에 설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만든 시스템에서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과외가 도움이 되지 않는 철학과 수학 그리고 물리학을 혼자서 풀어보도록 하였고, 많은 독서와 토론을 하도록 만들어놓았다.
 
이 때의 소녀들은 마담 퀴리를 우상으로 여겼으며, 여자라서 수학을 못한다는 생각 따위는 해본 적이 없다.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적절한 변화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변화는 책이 될지 오락이 될지 아니면 영화가 될지, 그도 아니면 그들만의 또 다른 무엇이 될지, 하여간 그들끼리 다음 세상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준비하며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제도를 바꾸는 바로 그들이 나타날 때 비로서 변화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징조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도 모른다. 그들이 스스로 고교등급제니 학교간의 실질적 격차니 얘기하는 그래서 그들을 입시지옥과 원초적 불평등과 사회적 낙인 속으로 밀어 넣은 사람들을 스스로 자리에서 끌어내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는 그 조용한 변화의 징조는 밖에서는 알 수가 없지만, 정작은 그들도 알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러한 변화가 올 것 같다.
 
그래서 난 늘 중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유심하게 보는 습관이 있다. / 논설위원 

* 필자는 경제학박사로 초록정치연대(www.greens.or.kr)  정책실장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4/10/19 [10:59]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guy 2004/10/21 [14:28] 수정 | 삭제
  • 68혁명 당시에 중고등학생들이 그렇게 투쟁의 전선에 있다는 건
    잘 몰랐는데, 기자님 덕분에 알게 되었네요.

    근데, 프랑스에는 참지식인이 있는데 한국에는 없다고 한다는 건
    너무 한국을 비하하는 게 아닐까요?
    한국에도 행동에 나선 지식인들이 있지요.
    송건호, 리영희, 김진균 등......
    이 분들에 대한 평가도 있었으면 합니다.
  • Dark... 2004/10/19 [13:44] 수정 | 삭제
  • 정말... 엎었으면 하네요.
    잘 외우는 순위와 쪽집게로 짚어서 외우는 실력이 학력이라니...
    천재는 둔재가 되고, 돈많은 집 둔재는 팔자에도 없는 수재가 되는 세상...
    자기에게 맞는 길 보다는 정해진 길을 가게 하는 남한사회...
    볼수록 화납니다.

    +_+ Dark Avenger...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