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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 삿대질도 방송국 카메라 사라지면 화기애애?
언론 말로만 '정책국감' 실제로는 정쟁 더 부추겨, 언론인이 분발해야
 
심유옥   기사입력  2004/10/14 [00:10]
국회는 이달 초부터 17대 국회 첫 국정감사로 한창입니다. 국정감사는 '국회가 행정부에서 실행한 국정에 대하여 하는 감사'로 일년에 한 차례씩 진행합니다.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걷어 엉뚱한 데 쓰지는 않았는지, 정부정책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국감은 '의정활동의 꽃'이라 불릴 만큼 국회의원들에게는 중요한 업무이기 때문에 지난 두달간 국회 의원회관의 불은 꺼질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국감이 시작하고 나니 17대 국회 국감도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습니다. 정책감사는 안하고 쟁쟁만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여론을 주도하는 곳은 물론 '언론'입니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직접 볼 기회가 없는 국민들은 언론이 보도하는 것을 보며 국회가 잘 하고 있는지 못 하고 있는지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면, 17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그렇게 엉망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비밀누설'이니 '관제데모'니 하면서 여야가 싸우기도 하지만, 이런 것은 당 지도부끼리의 뜬구름 잡는 정쟁일 뿐, 실제 상임위 별로 자세히 살펴보면 나름대로 정책감사에 열심인 상임위가 대부분입니다.
 
대표적인 곳이 '보건복지위'입니다. 복지위의 특성상 정쟁을 할만한 사안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이번 국회 복지위원들의 열성은 인정해 줘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여야가 모두 말입니다. 언론의 주목도 못 받는 상임위이지만 밤이 늦도록 질의하기도 하고, 보도자료나 정책자료도 상당히 공을 들여서 만든 것이 느껴집니다.
 
문제는 언론입니다. 정쟁이 예상되는 상임위는 방송, 신문, 인터넷 매체들의 기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지난 6일 행자위의 서울시 감사가 한 예입니다. 여야간 '관제데모' 논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여당 의원들이 이명박 시장을 향해 "국감때 두고보자"며 단단히 벼르고 있었기 때문에 100% 정쟁이 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당연히 기자들은 몰려들었고, 방송국은 행자위 국감을 생중계하기도 했습니다.
 
연일 정책감사를 해야한다고 목소리 높이던 기자들이 정책감사를 열심히 하는 상임위에는 코빼기도 안 비치고 연합뉴스 베끼기만 하면서, 정치권을 향해서는 '정쟁하지 말라'고 큰 소리칩니다.

이건 진보매체.보수매체가 따로 없습니다. 언론개혁에 목소리 높이는 '오마이뉴스' 마저도 행자위 국감장에 취재, 사진, 동영상 등 총 5명의 기자를 배치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취재인력의 반이상입니다. 이런 오마이뉴스가 내 놓은 기사의 리드는 아래와 같습니다.
 
"17대 국회 국정감사의 최대 설전장으로 관심을 모은 서울시 국감에서 의원들은 교통, 환경, 주택 등 서울시민들의 삶과 직결된 현안에 대해서는 허를 찌르는 질의를 내놓지 못했다."
 
'삶과 직결된 현안에 대해서 허를 찌르는 질의를 내놓지 못한 것'을 비판하는 것은 좋은데, 언론들이 자꾸 이런 것만 보도하니 의원들도 그 쪽으로 따라가는 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보도가 없으면 정쟁도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어떤 때는 의원들이 상임위에서 한창 싸우다가도 방송국 카메라가 사라지면 "자자 빨리합시다" 하면서 대강 회의를 마무리 짓기도 합니다.
 
국정감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려면 국회의원 뿐만 아니라 언론인들도 분발해야 합니다. 언론이 정쟁만 따라다니면 정책국감은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참, 과도한 언론의 칭찬도 주의해야 합니다.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칭찬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파이낸셜뉴스는 8일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을 '국감스타'로 선정하고 "고경화 의원이 충실한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국감에 임하면서 모범을 보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평가가 정치권의 일반적인 평가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고 의원이 어느 의원 못지 않게 열심히 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엉뚱한 '삽질(?)'을 가끔해서 눈총을 받기도 합니다.
 
지난 8일 고 의원은 `감기환자 항생제 처방률이 99%라니'라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의약분업의 목적 중에 하나가 '항생제 남용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약분업의 필요성에 상당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그러나 고 의원의 보도자료 제목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의 보도자료만 읽어 보더라도 실제 처방률은 40%~60% 되는 것으로 쓰여있습니다. 섹시한 제목을 뽑으려다 보니 '오바'하게 된 것입니다.
 
또 12일에는 질병관리본부 국감에서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 동성애자 밀집지에 콘돔을 배포하자"는 과감한 주장을 했습니다. 질병관리본부가 콘돔배포에 있어 무작위로 나눠주지 말고 '타겟팅'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일환이었습니다. 이 발언은 어느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지만, 만약 동성애자들이 고 의원의 발언을 들었다면 꽤 분노를 느꼈을 것입니다. 마치 동성애자를 에이즈의 주범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니까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언론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언론개혁에는 조선일보의 왜곡을 바로잡는 것도 있지만, 한국 언론계 전체에 만연돼 있는 심각한 문제들도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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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0/14 [00:1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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