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민족공조는 속임수일 뿐이라는 전 육사교장께
민족공조를 외면하는 민병돈씨는 어느나라 장군인가?
 
여인철   기사입력  2003/02/25 [00:30]
민병돈 전 육사교장님 (편의상 교장님이라 부르는 것을 양해해 주십시오). 외람됩니다만, 그리고 늦었지만, 이렇게 교장님의 글에 대해 반론을 제기합니다.  

교장님의 글이 동아일보 1월 30일자에 실린 며칠 후 인터넷 서핑 중에 접하고 반론을 쓰려하였으나 해외로 나갈 일이 생겼고, 그래서 이 글은 북유럽의 한 나라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고 노트북을 가지고 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열악한 그 지방의 internet cafe (우리의 PC방) 사정으로 올리지 못하다가 귀국하여 이렇게 올리는 것입니다.  

교장님의 글이 실린 지 3주일 가량이나 지난 후에 올리는 글이니 만큼 시의성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될지도 모르나, '민족공조는 속임수일 뿐'이라는 교장님의 글은 시의성을 따질 겨를이 없을 만큼 엄청난(?) 글인데다, '민족공조'에 시의성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뒤늦게나마 반론글을 올립니다.  저는 이 글이 교장님의 글 옆에 나란히 역사의 기록으로 남게 되길 바랍니다.

교장님께서는 동아일보의 지난 1월 30일자 여론마당의 글 "'민족공조'는 속임수일 뿐이다"에서 소위 '민족공조'에 대해 비아냥으로 일관하십니다.  갈라진 민족국가에서 '민족공조'하자는 것이 무슨 그리 큰 흉이라고 그렇게 조롱을 하고 계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이렇게 몇자 적습니다.

"그들이 '민족'을 부르짖을 때는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라구요? 그렇다면 우리 갈라진 남북에게 '민족'이란 말은 영원히 써서는 안 될 말인가요.  '민족'을 말할 때 교장님은 왜 오로지 '속임수' 만을 떠올리는지요?

'민족공조'가 무엇입니까?  갈라진 남과 북이 '서로 돕자'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싸우지 말고 같이 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돕지 않고 합칠 수 있습니까?  (물론, 이 질문은 교장님께서 남과 북이 합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니면 속임수가 두려우니 아예 합치지 말자는 말씀이십니까.  도무지 무슨 의도로 그런 폭언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분열되지 않은 나라가 민족주의를 부르짖는다면 배타적, 우월적 민족주의로 흐름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한 민족이 둘로 갈라져있는 상황에서의 민족주의란 위의 민족주의와는 다를 것이며, 필경 민족통합을 위한 민족주의일 것입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요?

물론 '민족공조'를 하자면서 그걸 이용해서 무언가 다른 것을 얻어내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그것대로 철저히 검증을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남북이 한번도 민족공조를 제대로 해 본 적도 없는 상황에서 '속임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우리가 지난 2000년의 6. 15 선언 말고는 언제 민족공조를 한번이라도 해 본 적이 있나요?  그 6. 15선언도 미완의 민족공조일 뿐입니다.  답방도 이루어지지 못 했을 뿐 아니라 부시의 등장으로 그 의미가 크게 훼손되어 버렸습니다. 거기에 무슨 '속임수'가 있었던가요?

그리고 느닷없이 '단군릉' 얘기는 왜 나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평소에 가지고 계시던 조각지식을 이 김에 나열해 놓은 듯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오로지 한가지 목표-'민족공조는 속임수다'-를 향하여 논리적 무리를 무릅쓰고 돌진하고 계신 것으로 비쳐집니다.

"이러한 저들의 통일전선전략에 말려든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동조하는 것인지 우리 내부의 일각에서도 요즘 '민족우선' '민족공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직도 '통일전선전략'이란 반세기전 냉전시대의 케케묵은 이야기입니까?  그러면 '민족우선'이나 '민족공조'를 얘기하면 '통일전선전략'에 말려든 것입니까?  무슨 논리가 그런 논리가 있습니까.

그 바로 뒤에는 또 이런 말을 해 놓으셨습니다.  "우리 민족(남북)끼리 공조해 미국을 상대로 핵문제도 해결하고,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살려 외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통일하자고 한다.  가슴에 와 닿는, 듣기 좋은 말이다.  그렇게 하려면 물론 주한미군은 당연히 제 나라로 돌아가야 하고...참으로 속 들여다보이는 술책이다."

교장님, 도대체 무엇이 문제라는 건지요.  "민족끼리 공조해서 미국을 상대로 핵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문제입니까, "외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통일하자"는 것이 문제입니까?  아니면 "주한미군은 당연히 제 나라로 돌아가야 하고..."가 문제입니까?  

주한미군이 제 나라로 돌아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요?  무엇 때문에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되도록 우리나라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건지요? 이제 그만 갈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주한미군은 우리에게 정신박약 아편입니다.  스스로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음에도 일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아니 스스로 일어날 생각을 아예 못하게 만드는 아편입니다.  

우리나라는 반세기를 그렇게 살다가 의지박약 국가가 되어버렸고, 우리 국민의 상당수가 의지박약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나라를 그렇게 만든 주역들의 모습이 교장님에게서 어른거립니다.  평생을 남에게 의존해서 스스로 일어서려는 생각을 못하다가 결국은 앉은뱅이가 되도록 우리나라를 그렇게 만든 주역들의 모습이.

교장님, 우리나라, 외세가 없어도 북측을 그렇게 두려워해야 할만큼 허약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장님께서 저보다 더 잘 아실 것 아닙니까?  허약한 것은 몸이 아니라 정신입니다.  지금의 우리의 정신은 거의 박약 수준에 가깝습니다.  

지난 수십년을 독재정권은 그 불법적이고 정통성없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북측의 위협을 필요이상으로 부풀려 왔고 거기에 국민은 오랫동안 세뇌되어 있습니다.  그 공백을 주한미군이 메꾸고 있다고 인식이 일반화하게 되었고 그래서 주한미군이 나가면 마냥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정신박약 증세로부터 먼저 벗어나 스스로 지켜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준비를 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갖지 못 하고 남의 보호국을 자처하려 하는 그 부끄러운 모습의 뒤에는 바로 교장님같이 냉전시대의 사고를 아직도 업처럼 달고 다니는 분들이 계시고 그것을 부추기는 못된 언론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여태껏 그런 식으로 먹고 살아온 추한 언론이 아직도 힘을 쓰고 있는 부끄러운 세상입니다.  

끝으로 교장님께서는 "그런 자칭 민족주의자들이 1950년엔 소련과 중국을 등에 업고 남침했다니...지난해 6월 서해의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우리 구역에서 경비중이던 남측 해군 함정을 기습공격해 25명의 사상자를 낸 만행을 또 뭔가.  휴전선 일대에서 우리를 겨누고 있는 중화기들과 100만 병력은 또 뭔가.  저들은 이미 같은 민족이기를 포기한 것이다."라고 쓰셨습니다.

이제는 지겨운 올드 레퍼토리입니다.  휴전선 일대에서 우리를 겨누고 있는 중화기와 100만 병력에 대해서는,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우리도 똑같이 그들의 심장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으며, 북측이 반민족적이라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반민족적 아닙니까.  100만 병력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60만이라 덜 반민족적이란 얘기입니까?

사태를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보실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북측이 중화기들을 휴전선일대에 전진 배치한 것은 그들 나름의 생존전략입니다.  그들로서는 목숨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보전하기 위해 최대한 공격적인 배치를 해 놓은 것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만든 나라가 바로 미국 아닙니까.  우리나라는 힘이 없어 덩달아 미국을 따라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것이 바로 '외세공조'의 다른 이름, '한미공조' 아닌가요?  

물론 우리에게는 위협적이지요.  그러기에 우리도 위협하지 않을테니 그 쪽도 치워라, 서로 대화해서 풀자는 것 아닙니까?  그러기에 '민족공조' 하자는 것 아닙니까? 서로의 심장을 향해 겨눈 총부리를 치우고 같이 평화롭게 잘 살아보자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가로막는 것이 무엇입니까?  6.15 공동선언 하나만 놓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왜 그 최초의 민족적 쾌거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지.  

지금 미국과 북측이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대립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세공조'하자구요?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북측만 인명이 살상되고 황폐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금 동족간의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고 결국 남측도 황폐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왜 우리가 우리의 의사에 반하여 다시 서로를 죽이고 죽어야 하는 전쟁을 벌여야 합니까?  그것도 또 다시 우리 땅에서.

저는 북유럽의 노르웨이라는 나라에서 체류중 이 글을 썼습니다.  세계의 10개국 대표와 회의를 하기 위해 그곳에 갔습니다.  그 중에는 6개국이 유럽에 속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말도 다르고 민족도 다르고 이념도 조금씩 다릅니다.  

그리고 그 옛날 우리가 서로 싸우던 비슷한 무렵에 서로를 죽였던 원수지간의 나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유럽연합이란 것을 만들어서 10여개의 나라가 마치 한나라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 남북을 바라보자니 참으로 한심했습니다.  

도대체 남들은 민족과 언어가 달라도 지금은 모든 것을 잊고 저렇게 사이좋게 잘 살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같은 민족끼리 이렇게 아픈 상처를 덧내가며 살고 있단 말입니까.  무엇이 우리 사이를 그렇게 가로막고 있단 말입니까.  

말이 다릅니까 민족이 다릅니까?  오로지 다른 것은 이념뿐인데, 이념이란 이젠 살아가는 방식일 뿐입니다.  그것이 반세기가 지난 후에도 그렇게 서로 으르렁거려야 할 이유인가요?  교장님은 왜 그토록 '민족공조'를 비아냥거리시는 건지요?  그러면 '외세공조' 해서 벌어질 결과에 자신 있으신가요?

교장님, 왜 갈라진 우리 한반도에서  '민족공조'가 속임수일 뿐인지 속 시원히 대답을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동아일보에게 한마디

재작년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그리고 특히 대선기간 동안에 보여주었던 동아일보의 때로는 조선일보를 능가하는 야비하고도 퇴행적 논조와 보도태도를 보며 이제 우리는 '조중동'에서 '조동중'으로 그 순위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악의 축' 신문의 순서가 반드시 발행부수 순서대로 가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보면서 나의 그런 심증은 더욱 굳어져 간다. / 본지 주필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3/02/25 [00:3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