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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추방중단, 노동비자쟁취 투쟁은 계속된다
출입국, 대회참가하려는 이주노동자들 연행 시도해ba.info/css.htm
 
참세상뉴스   기사입력  2002/12/20 [19:38]
세계이주노동자의 날인 18일 서울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이주노동자와 연대단위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단속추방 중단 및 노동비자 부여 촉구 위한 이주노동자 결의대회'가 진행되었다. 'International Migrants Day'라는 분홍색 선전물을 목에 건 이주노동자들은 이날도 어김없이 이주노동자의 집회 참석을 막고, 불법체류자를 연행하려는 출입국관리소 직원들과의 격렬한 몸싸움을 겪으며 집회를 사수했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 이주노동자들이 대오를 지어 집회에 참석하려 하자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은 '신분확인을 해야 한다'며 대오를 막고 여권확인을 요구해 참석자들과 한차례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후에도 계속 집회 대오를 주시하던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은 집회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이주노동자의 연행을 시도해 참가자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은 '씨발년아, 꺼져버려' 등 폭언을 퍼부으며 취재기자의 사진촬영을 방해하고, 기자를 폭행하기도 했다. 출입국관리소 측은 이날 대회 전 보호일시해제로 보호소에서 풀려난 꼬빌, 비두씨가 집회에 참석할 경우 가만두지 않겠다고 평등노조 이주지부측을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대회에서 비두씨는 "19일이 대통령선거라지만, 어떤 후보도 이주노동자의 아픔과는 상관이 없다"며 "오늘은 출입국 앞에서 집회하지만, 다음에는 더 힘을 모아 출입국 안에서 노동비자 받을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한 이주노동자는 "한국은 우리땅이 아니지만 우리도 인간이다"며 "예전에는 한국을 좋게 생각했지만 직접 와서 일해보니, 한국은 사람사는 나라가 아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날 대회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헌 기계를 새 기계로 바꾸는 것처럼 우리를 내쫓고 연수생을 더 많이 받으려고 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정책은 우리와 우리 가족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며 "2003년에도, 2004년에도 단속추방을 박살내고 노동비자를 쟁취하자는 우리의 투쟁은 계속되어질 것이고, 내가 쫓겨나도 나의 동지들이 남아서 계속할 것"이라고 결의했다.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제9차 이주노동자 결의대회 결의문]

4월 7일, 1천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모였다. 우리는 정글 속의 호랑이처럼 "단속추방 중단하라! 노동비자 쟁취하자"를 힘차게 외쳤다. 그날 그 거리에서는 공장에서 숨죽이고 일하던 '나'는 없었다. '당당한 노동자'만이 있었다. 국적에 상관없이 하나가 되는 '우리'가 있었다.

우리의 단결된 모습에 깜짝 놀란 한국정부가 갑자기 경찰, 출입구관리소, 국정원을 내세워 우리의 집회를 막으려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집회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발 물러났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그날 4월 21일에 10개 나라의 대표가 모여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정부의 더러운 행동을 폭로하면서 더 강하게 싸울 것을 결의하였다. 이주노동자 대표단 다섯 명은 "집회 결사의 자유쟁취, 단속추방 분쇄, 노동비자 쟁취"를 위한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명동성당에서 77일간 농성투쟁을 하였다. 공장에까지 찾아와 협박하는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도 있었고 집중단속도 있었지만 우리는 모였다. 5월 19일, 6월 16일, 8월 11일, 8월 25일, 9월 8일, 10월 27일, 11월 10일, 우리의 투쟁은 멈추지 않았고 집회의 자유를 우리의 힘으로 쟁취하였다.

우리를 '불법체류자'로 만들어 놓고 마음대로 이용하려고 했던 한국정부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계속 '단속'과 '추방'만을 밀어부칠 때, 우리는 "이대로 쫓겨날 수 없다"는 강한 마음으로 공단에서 친구들과 토론회를 만들고 유인물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연대동지들과 함께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오는 것을 감시하고 적들을 만나면 싸우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적들이 겁을 주기 위하여 '꼬빌'과 '비두' 동지를 잡아갔지만 화성보호소에서는 단식투쟁을 조직하고 밖에서는 계속적인 집회와 시위로 투쟁을 만들어내었고 구출하였다. 투쟁을 하면서 눈물도 기쁨도 함께 있었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렇게 이주지부 모든 조합원과 친구들은 투쟁을 통해 한걸음 한걸음씩 '노동자'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우리가 단결하고 투쟁할 때 한국정부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몸과 마음을 다해 우리와 함께 투쟁하려고 한 연대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우리는 투쟁을 통해 '동지'를 만들어 왔고 동지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왔다. 이제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연대'로 커나아가고 있다. 한국노동운동에서 이주노동자투쟁은 '동정'이 아니라 '과제'로 발전해 왔다. 우리는 열심히 투쟁했고 여기까지 왔다. 이주노동자가 단결하면 무서울 것이 없고, 한국노동자와 연대하면 서로가 더 큰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을 투쟁을 통해 알게 되었다.

2002년은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들어온 지 15년 되는 세월동안 가장 중요한 한 해였다. 역사는 이주노동자가 투쟁의 주인공으로 실제로 나서는 첫 해였다고 평가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쉬어가지 않을 것이다. 투쟁 속에서 우리가 부족한 것, 우리가 약한 것을 알고 고쳐나가면서 스스로 강해질 것이다. 우리가 단결하고 투쟁할 때 사장들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 공장에서 혼자서는 힘이 없기 때문에 포기해왔던 것들을 우리가 스스로 요구하고 쟁취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강화하여야 한다.

또한 한국정부가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추방정책을 반드시 박살내고 노동비자 쟁취할 것이다. 헌 기계를 새 기계로 바꾸는 것처럼 우리를 내쫓고 연수생을 더 많이 받으려고 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정책은 우리와 우리 가족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이 투쟁을 하지 않으면 더 값싼 노동자를 마음대로 부려먹으려는 적들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다. 사장들이 마음대로 월급을 깍고 마음대로 공장에서 짜를 수 있는 자유가 많아지면 한국노동자도 같이 망할 수 밖에 없다.

2003년에도, 2004년에도 단속추방을 박살내고 노동비자를 쟁취하자는 우리의 투쟁은 계속되어질 것이다. 그때까지 안되면 2005년에도 2006년에도 할 것이다. 내가 쫓겨나도 나의 동지들이 남아서 계속할 것이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노동자는 더 이상 노예가 되길 거부하며 진정한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오늘은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이지만 많은 친구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많은 친구들이 공장에 매여 이 특별한 투쟁의 날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노동자의날', '여성노동자의 날'을 실제로 투쟁하는 날로 쟁취하기 위해서 많은 싸움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앞으로 투쟁을 통해 우리의 날을 쟁취할 것이다.

하루의 일손을 멈추고 이렇게 모인 우리는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에, 2002년의 투쟁을 되돌아보며 더 강하고 큰 2003년의 투쟁을 우리는 이 자리에서 결의한다.

* 본 기사는 진보네트워크 참세상뉴스 http://cast.jinbo.net 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 본 기사는 김미라(raise@jinbo.net) 기자가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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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2/20 [19: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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