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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에서 이명박까지, 그 개발독재의 유령들
서울에 남아있는 박정희의 유적들 그리고 그 이후
 
비나리   기사입력  2004/05/14 [22:36]

▲박정희의 유적들 그리고 그 이후    

도시에 관한 이야기는 자잘한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편 숨어있는 생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울과 같이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인구 천만을 넘어선지 수 년이 된 서울의 역사 역시 사람들의 회한에나 나을 법한 숱한 얘기들을 담고 있을테지만, 도시는 아무런 얘기도 해주지 않고 매일 같이 해가 뜨고 또 다른 해가 내려간다.
나는 북아현동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서울의 모습에 대한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다.
관악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이 학교는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목동과 양평동 사이에 오목교라는 다리 옆에 안양천을 끼고 있는 학교였고, 학교 바로 옆에는 알루미늄을 만드는 공장들과 주물 공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곳이 영등포 공업단지 중 양평공업단지라는 곳이다. 체육 시간에 체육을 하지 못한 것은 학교와 담벼락을 같이 쓰고 있는 알루미늄 공장에서 나온 신나 냄새 가득찬 공장연기 때문이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친구들은 학교를 그만두거나 퇴학을 당했다. 그 때마다 영등포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순대 한 그릇 놓고 소주를 마시면서 환송식을 치루어주고는 하였다.
영등포는 양평동과 나중에 구로 아리랑으로 더욱 유명해진 구로동 그런 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주로 술을 한 잔 마시거나 아니면 뒷골목에서 싸움질을 해댔다.
서울에 공장들이 들어온 건 해방을 맞자마자 바로 시작된 일이지만, 실질적으로 대규모 공업단지가 조성된 것은 박정희 시절의 일이다.
매일 같이 지나가던 길목에는 지금은 서울과 인천 지역의 도시가스 공급업체의 역할을 하는 삼천리에서 운영하는 연탄공장이 있었고, 커다란 두꺼비 얼굴을 그려놓은 진로 소주 공장이 있었다. 진로소장 옆을 지나갈 때에는 시큼한 주정 삭히는 냄새가 났고, 연탄 공장을 지나갈 때에는 석탄가루가 조금씩 날리고 있었다.
영등포에서 양평동을 잇는 뒷골목들에는 이런 공장들에 부품을 제공하거나 잔 고장들을 고쳐주는 설비를 파는 공업사들이 즐비어져 있었다.
그 시절 국회는 여의도에 있었고, 여의도를 중심으로 고급 주택단지가 있었고, 북한산 허리를 밀고 들어간 평창동은 일찌감치 재벌들의 주택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재벌의 본사는 전통적인 서울인 4대문 안에 자리하고 있었고, 중후장대형 생산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들은 이 근처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있었다.
영등포역은 구로동과 양평동에 형성된 공단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을 인천항으로 내보내거나 혹은 물자들을 실어오는 역할을 하였고, 이 생산을 담당한 사람들은 구로동에서 약간 멀리는 철산리까지 다닥다닥 붙은 집들에서 하루밤 잠을 자면서 고단한 하루를 쉬고 있었다.
이 노동자들은 영등포 역전에서 소주 한 잔을 하거나 아니면 약간 멀리 광화문까지 나가서 패싸움을 벌이고는 했다.
생산에서 휴식 그리고 유희까지 구로동을 중심으로 반경 10킬로 내애서 대부분 해결되었다.
그리고 이들과 절대 섞이지 않도록 멀리 강남 쪽에 부도심을 마련한 박정희의 서울 분할구도는 어쩌면 개발시대의 수도를 이끌어간 군사독재자 박정희로서는 현명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서울을 광역 체계로 개편한 후 강남은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고, 4대문안은 정부 청사를 중심으로 행정의 중심지로, 여의도는 정계의 중심지로, 그리고 영등포는 공업 중심지로 개편되었다.
저 멀리 성남과 강서구의 신정동 같은 곳은 이렇게 도시를 밀어붙이고 개편하는 와중에 생겨난 철거민들을 집단적으로 이주시키는, 일종의 유배지역 같은 곳이 되었다. 일거리를 위해서 철거민들은 더 먼 곳으로부터 그래도 약간의 허드렛일이라도 할 수 있는 도심까지 움직여야 했고, 이들의 애환을 실어 시내버스가 달렸던 것이 박정희 개발시대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런 박정희의 서울 계획은 그린 벨트로 서울의 경계를 확정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제 서울의 베드타운은 경기도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이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마지막 남아있는 그린 벨트는 박정희의 개발 독재를 직접적으로 계승한 이명박으로 이어져 내려가게 된다.
강남의 고급 주택단지로서의 부도심을 처리한 박정희의 서울정책은 이명박에 이어져 강남북 균형발전이라는 묘한 개발독재로 다시 연장되고, 박정희의 시민동원정치는 이명박의 하이서울로 기묘하고 우스꽝스럽게 연장된다.
박정희의 경인공업지대 구상을 이어받은 이명박의 수도권 정책은 동북아 금융중심국가라는 개념으로 이어져 결국은 도시 재개발 이익을 가진 자들끼리 약간 나누어먹으면서 세계사에 볼 수 없는 기형적이며 괴물같은 공간으로 바꾸어버리는 뉴타운 계획으로 연장된다.
차이가 있다면 박정희의 왜곡된 민족주의가 이명박의 전도된 세계화주의 그리고 영어공용화 계획 같은 것으로 뒤바뀐 정도라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무엇인가 구상하거나 서울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고민하는 절차는 실질적으로는 한 번도 없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괴물로 성장한 서울은 마치 군사독재 시절의 이익을 TK 집단이 빨아들이면서 경상도 공화국을 만들어내고, 결국은 그 안에서 모두 불행해진 지역감정 게임을 만들어낸 것처럼, 이명박의 서울은 강남공화국과 그들의 연장 속에서 결국은 서울과 대한민국이 다 불행해질 개발의 게임으로 변화하게 된다.
매일 같이 쏟아내는 서울시 재개발계획 속에는 기형적으로 괴물이 된 병든 도시 그리고 타락한 도시 서울의 군사독재와 개발독재의 숨겨진 얼굴들이 숨어있다.
그 과정에서 서울시민은 언제나 통치의 대상이었고, 계도의 대상일 뿐이다.
아직도 사람들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청계천 복원계획의 사기성과 재개발 사업들이 가지고 있는 용적률의 폭력성과 무계획성, 이런 것들에 대한 대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지금부터라도 필요하다. 절실히 필요하다.
박정희의 영혼이 이명박을 통해서 육체로 현신한 개발독재의 실체이자 산물인 서울, 그 속에는 아직도 그 시절의 우울하고 음습함이 그대로 남아있다.
비나리 (녹색정치준비모임 편집위원, www.green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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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5/14 [22:3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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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fa 2004/07/07 [01:30] 수정 | 삭제
  • 혹시 책을 내신 것 있으면 알려 주세요. 그리고 하시는 일들이 꼭 좋은 성과를 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