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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이 원내1당 되기 위한 지름길
토지보유세제를 조세제도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
 
이태경   기사입력  2004/05/07 [19:04]
국가는 어떻게 시장에 개입할 것인가

4.15총선은 한국사회 정치지형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사회의 정치와 선거의 장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였던 담론은 독재 대 반독재, 민주와 반민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색깔론으로 상징되는 냉전의식과 영남패권주의의 다른 말인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려왔다. 물론 금권선거와 관권선거도 빼놓을 수 없는 변수였다.
 
그런데 적어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들어서는 금권과 관권을 이용한 선거개입은 확실히 퇴장하였다고 보이고 색깔론도 이전의 위용은 찾을 길이 없다. 다만 영남패권주의-왜 영남패권주의를 지역주의라고 호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가 여전히 가공할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반봉건적인 요소가 맹위를 떨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민주노동당의 원내 3당 진입이 말해 주듯 이제 한국사회의 정치와 선거의 장에서도 사회 각 영역에 대한 정책과 대안을 놓고 각 정당들이 경쟁을 벌일 시기가 바야흐로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내부에서 당의 정체성과 지향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실용주의에서 개혁적 보수, 중도좌파 등등 각종 이념적 지향들이 난무하여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백가쟁명을 연상케 할 지경이다.

그런데 좌와 우로 폭넓게 포진한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좌표를 설정하고 있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소속 당선자들은 정작 자신들의 이념적 포지셔닝이 어떤 의미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일까?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이념적, 정책적 잣대는 다양할 것이지만 무엇보다 경제정책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아닐까 싶다. 경제정책은 국가가 시장(market)의 어떤 부면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흔히 알려진 대로 우파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불간섭을 강조하고, 좌파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한다.

좌파와 우파간에 이렇게 결정적인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시장에 대한 이해가 상반되게 때문이다. 즉 좌파는 시장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며 시장을 그대로 둘 경우 실업이 양산되고 빈부 간의 소득 불균형이 극심해질 뿐만 아니라 주기적 불황과 파국적인 공황을 맞을 것으로 본다. 반면 우파는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작동되기에 그대로 둘 때에 가장 조화롭고 효율적으로 작동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우파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비용은 많이 들지만 효과는 극히 미미한 것이고 따라서 국가는 '야경국가'의 역할에만 머물면 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부면과 방법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기본적으로 보수정당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당이 입버릇처럼 되내이는 것은 기업하기 좋은 사회 건설이며, 그 구체적인 방법론은 각종 규제완화와 외국자본 유치 활성화를 위한 조건 마련이다. 이는 정치, 사회 부문에 대한 입장 차이와는 달리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경제정책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개혁을 주장하면서 경제정책에서도 기존 보수정당과는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에게 한 가닥 기대를 걸 수 있을까? 최근에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 하는 것인데 이 논쟁은 경기가 좋을 때도 혹은 경기가 나쁠때도 항상 첨예한 논쟁거리였다.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성장론자들은 파이가 더 커져야 나눌 것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민주노동당으로 상징되는 진보진영은 이미 커진 파이를 공정하게 나누어야 파이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성장과 분배 사이에는 평화와 공존이 불가능한 것인가? 보수와 진보 혹은 좌파와 우파의 국가와 시장의 역할 및 기능에 대한 이해와 해법은 문제가 없는가?

우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실업, 빈부 격차, 주기적 불황 등을 잘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설사 인정한다해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실업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그들의 언어로 말하자면 노동자가 노동한 것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업문제가 해소되려면 임금을 내려야한다. 치솟는 아파트 가격을 잡으려면 공급을 늘려야 하므로 집을 더 지어야 한다. 한 채에 3억을 호가하는 아파트를 평범한 샐러리맨이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그들에게 준비되어 있지 않다.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지 못하고 내리는 우파의 진단과 처방은 그렇기 때문에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기득권 세력의 이데올로기로 이용되곤 한다. 스티글리츠(Stiglitz)의 표현을 빌리면 "발가벗은 임금님의 동화에서 임금님의 옷이 보이지 않는 것은 옷이 없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손'에서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손이 없기 때문이다."

좌파의 경제정책도 현실에서 봉착하고 있는 여러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는 이미 한계를 보이고 있다. 좌파는 광범위한 재분배를 통해 소득이 낮은 계층의 구매력을 높이면 수요가 높아져 투자가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재분배를 통한 투자증가가 발생하기 이전에, 구매력이전정책으로 인한 투자기피현상이 먼저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재분배를 통한 구매력이전정책과 투자증대 전략이 상충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원치 않는 실업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2차대전 이후 서구 복지국가의 경험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수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영국 블레어 총리의 '제3의 길' '생산적 복지'와 같은 주장은 바로 이런 재분배사회에서 탈출하겠다는 주장의 완곡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좌파가 사회에 적용하려는 경제정책은 이미 역사 속에서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결론 내려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부유세는 효율과 형평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가

민주노동당이 한국사회 각 부면에 대해서 그리고 있는 청사진은 개혁을 갈망하는 한국사회 구성원들이라면 대부분 동의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민주노동당의 총선공약을 보면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인 세제(稅制)와 관련해서도 전면적인 개혁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구상하고 있는 세제개혁 5개년 로드맵을 살펴보면, 소득세와 관련해서 각종 탈루소득을 파악하여 과세하고 소득세 감면폭을 줄이는 방안, 법인세와 관련해서 법인세율을 인상하고 법인세에 대한 각종 감면대상을 축소하는 방안, 부가가치세와 관련해서 탈루세액을 찾아내서 이를 징수하는 방안, 종합토지세 과표를 인상하고 부유세를 신설하는 방안 등이 망라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마련될 세수증가액은 대략 6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세제개혁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그것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민주노동당이 구상하고 있는 세제개혁안 중 각종 탈루세원을 파악하여 과세하겠다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반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부유세 신설과 법인세율 인상 및 법인세 감면 대상 축소가 아닐까 싶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유세는 재산의 정확한 가치평가의 어려움과 정당하게 부를 축적하려는 의지를 훼손할 가능성 등의 이유로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며, 법인세율 인상과 법인세 감면대상 축소도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저하시킬 가능성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물론 부유세는 도덕적인 차원에서는 설명이 가능하고 한국사회 구성원 대부분의 심정적 동의를 이끌어 낼 수도 있을 것이지만, 경제학적으로 부유세 신설이 타당한 것인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부유세의 효율성과 형평성이 의문시되기에 이미 서구에서도 부유세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법인세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정책은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인 모순'이라는 인식에 기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전히 국민국가의 존재는 유효하며 세계시장에서 개별기업들의 경쟁력 확보를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노동과 자본의 적대적 모순 혹은 노동력만이 잉여가치를 생산한다는 명제에 대한 치열하고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토지보유세가 정답이다

민주노동당의 세제개혁 5개년 로드맵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민주노동당도 부동산 자산에 대한 중과세를 천명하고 있으며 이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민주노동당이 그러한 정책을 보다 강화하고 토지소유자들이 토지 소유를 통해서 얻는 지대수익의 대부분을 점진적으로 징수할 필요성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최근의 기사가 그 필요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개발로 발생한 지가차익 중 정부에 환수된 비율은 10%에도 못미쳐 개발이익환수 조치가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토연구원 정희남 연구위원은 27일 ‘국토균형 발전을 위한 토지정책 과제’ 보고서에서 “1980년 135조원 하던 지가가 개발 등으로 2001년에는 1419조원으로 증가, 21년 동안 1284조원의 개발차익이 발생했다”고 밝히고 “하지만 환수액은 8.8%인 113조원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사유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97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대부분의 개발이익환수제도가 폐지 또는 완화된 것도 토지문제를 야기한 주요 원인”이라면서 “공영개발사업의 경우 개발이익의 77∼97%가 공공에 귀속되나 민간개발사업은 대부분의 개발이익이 건설업체와 주택분양자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남호철기자 [국민일보 4월 28일자]

정말 놀랍지 않은가! 불과 20년만에 전국의 지가(地價)는 개발 등의 원인으로 20배 상승했고 물경 1000조원이 넘는 개발이익이 일부 토지소유자들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 참고로 작년 국내 총생산(GDP)은 720조가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 뿐이 아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김태동은 최근 3년 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최소 500조원의 불로소득이 생겼고 그러한 불로소득의 대부분이 50만명 정도의 주택·땅 소유자에게 집중됐다고 말했다. 즉 상상할 수도 없는 천문학적인 국부가 우리나라의 사유지 중 금액기준으로 절반이상(공시지가기준)을 소유한 상위 5%의 호주머니로 끊임없이 흘러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실증적인 통계는 얼마든지 있다. 2001년 전국의 부가가치세 수입은 약 26조원이고, 지대총액은 약 50조원으로 추정된다. 즉 지대에 대한 징수만 제대로 하더라도 부가가치세를 완전히 면제하고도 남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거래세인 취득세와 등록세(세수)는 연간 13조원이고 보유세인 종합토지세와 재산세는 2조5000억원에 불과한 현실을 보더라도 토지보유세의 실질적인 도입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위에 열거한 통계가 실감나지 않는다면 당신 주위에 있는 부자들을 떠올려 보라! 아마 열에 아홉은 땅부자, 아파트 부자, 상가 부자들일 것이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대토지소유자들은 자본가의 지위를 겸하고 있기도 하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민주노동당이 취해야 할 경제정책은 명확하다. 토지소유자들이 단지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취하고 있는 막대한 부를 조세로 환수하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경제정책 중 핵심이 되어야 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바로 토지공유사상에 기반한 토지보유세의 전면적이고 실질적인 도입이다.

토지공유사상에 기반한 토지보유세 제도는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구한다. 이 세제는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먼저라고 하지 않는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 부자가 됐는지 상관없이 광범위한 재분배를 실시하려는 좌파의 사상과는 달리, 대표적인 불로소득인 토지가치를 공동체인 국가가 환수하자고 주장한다. 왜냐면 토지가치는 토지소유자의 노력의 산물이 아니고 공동체의 노력의 결과임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노력해서 번 임금소득이나 사업소득은 감세 내지 면세하자고 주장한다.

토지가치를 더 많이 환수하면 할수록 유휴토지나 저(低)사용되는 토지는 없어지기 때문에 투자가 활성화되어 일자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개인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그의 것이라고 인정하면 할수록 근로의욕도 더 커지기 때문에 자본생산성과 노동생산성은 증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증가되어 유발투자가 증가한다.

시중에 토지투기를 노리고 하이에나처럼 웅크리고 있는 부동(不動)자금 - 한국에서 이 규모는 300조가 넘는다고 한다 - 을 시장으로 끌어내어 생산적인 곳에 투자하게 만든다. 왜냐면 토지투기를 할 유인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토지공유사상에 기반한 토지보유세제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와 같은 막연한 이념적 절충이 아니라, 좌파와 우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좌파가 원하는 사회를 우파가 선호하는 자유시장경제체제를 통해서 이룩하게 해주는,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이념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 민주노동당이 원내 제1당이 되려고 하는가? 진정 민주노동당이 새로운 대안과 패러다임을 통해서 한국사회를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토지보유세제를 조세체계의 근간으로 삼기를 간절히 바란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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