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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아트릭 수술법이 비만치료의 최선책인가?
20대 여성 비만치료 중 목숨잃어, '베리아트릭'은 위절제 수술
 
예병일   기사입력  2004/04/22 [09:39]

지난 4월 18일,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황당뉴스라는 제목아래에 붙어 있는 기사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같은 날짜 한국일보를 인용한 기사로 제목은 <‘비만치료’ 위절제 수술후 사망>이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서울 강남의 한 외과병원에서 ‘베리아트릭’ 수술을 받은 진모(25ㆍ여)씨가 20일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해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했다고 18일 밝혔다. 베리아트릭 수술은 위나 소장의 일부를 절제, 음식흡수를 줄여 살을 빼는 신종 비만치료법이다.

161㎝의 키에 몸무게 94㎏의 고도비만으로 고민하던 진씨는 2월9일 비만치료를 위해 이 병원을 찾아가 위 절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이틀 만에 퇴원했지만 이후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복통과 어지럼증, 호흡곤란 등을 겪어야 했다. 통증을 견디지 못한 진씨는 같은 달 28일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결국 하루 만에 숨졌다.

경찰 관계자는 “의료사고를 주장하는 유가족과 이를 강력 부인하는 병원측의 진술이 엇갈려 부검을 의뢰했다”며 “부검결과가 나와 봐야 정확한 사인이 규명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비만 치료를 위해 멀쩡한 인체기관을 잘라낸다니 얼른 생각하기에는 미친 짓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얼마나 비만 때문에 고통을 받았으면 그런 치료법까지 동원했겠느냐고 이해를 할 수도 있고, 어쩌면 그렇게 희한한 치료법이 개발되었느냐고 의학 발전에 경의를 표하는 분들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한국에서는 불과 1-2년 전부터 몇몇 기관에서 이를 시행하고 있지만 미국과 비교하면 아직 보편화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동안 여러 경로로 문제의 베리아트릭 수술법에 대한 정보를 접하신 분들이 계시겠지만 이번 사건으로 이 수술법은 훨씬 널리 알려지게 된 듯합니다. 4월 18일에 한국일보에 보도된 이후 여러 매스컴에서 이 내용을 다루었으며, 이보다 앞서서 비만치료에 수술법이 이용될 수 있다는 내용이 소개된 적도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작년 8월 29일자 뉴욕타임즈 기사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하겠습니다.

비만 치료를 위해 위를 부분적으로 잘라내는 위절제술이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2002년에 미국에서 위절제 수술을 받은 비만 환자는 8만명으로 2000년보다 약 40% 증가했고, 2003년에는 12만명 정도가 이 수술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NBC 기상 리포터인 앨로커, 배우 샤론 오스본, 민주당 하원의원 제럴드 나들러 등이 이 수술을 받은 후 감량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이 방법은 위를 부분적으로 잘라내어 비만환자의 음식 섭취량을 줄여 체중을 줄이는 방법으로 너무 많이 먹으면 구토가 일어나게 된다. 위절제 수술이 미국에서 연간 30억 달러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고, 한차례 수술 비용은 약 2만 5천 달러이다.

뉴욕타임즈의 내용은 이보다 훨씬 자세하고 구체적이지만 이상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 비용은 물론 사회적 비용이 너무 비싸게 먹힌다구요? 미국에서 1년간 비만과 관련된 질병에 대하여 지출하는 비용이 1,200억 달러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전혀 비싸지 않다는 사실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1992년에는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새로운 비만치료법으로 신중히 검토되기도 한 방법이 바로 수술법입니다.

그런데 과연 비만 해결을 위해 위를 절제한다는 베리아트릭 수술법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베리아트릭 수술법의 시초

미국 베리아트릭 수술학회(American Society for Bariatric Surgery, www.asbs.org)는 1983년에 창립되었습니다. 꼭 누구 이름처럼 보이는 베리아트릭(Bariatric)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로 체중이라는 뜻의 바로스(baros)와 치료라는 뜻의 이아트릭(iatrike)을 혼합하여 이루어진 합성어입니다.

한국보다 훨씬 일찍,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비만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미국의 상황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합니다. 약간 과장하여 이야기하자면 비만이 아닌 사람을 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그리 유명한 영화는 아니지만 <내겐 너무 사랑스런 그녀>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아주 비만이 심한 사람을 가리켜 “dinosaur(공룡) brother” 또는 “dinosaur sister”라고 하는데 아무데서나 수시로 만나고 부딪힐 수 있을 정도입니다.

비만은 단순히 보기에만 안 좋은 질병 또는 질병전 상태가 아니라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고인슐린혈증 등의 발생빈도를 증가시키며, 암 발생 가능성 및 사망 가능성 증가, 정신적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비만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다각도로 연구하였고, 그 중 한가지 방법이 수술로 인체의 장기를 절제하는 방법입니다.

수술로 장기를 제거하는 것은 어떤 방법으로 비만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소화는 인체로 들어온 영양소가 소화효소에 의하여 분해되는 과정이고, 흡수는 이렇게 분해된 영양소가 위장관으로부터 인체내로 들어오게 되는 과정입니다. (대한해부학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최신식 한글표기는 필자가 문외한인 관계로 과거에 사용하던 한자식 한글표기를 따르는 점에 대하여 독자분들의 이해를 구합니다)

수술법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은 흡수 과정을 통제하자는 데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인체 위장관에서 흡수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부분은 소장이므로 소장을 제거해 버리면 입으로 들어온 음식이 모두 흡수되지는 않을 테니 영양분 섭취를 줄여서 체중과다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수술법이 시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장 먼저 실시한 방법은 소장의 중앙에 위치한 공장(jejunum)을 대장에 이어주는 방법으로 jejuno-colic bypass surgery였습니다. 1963년에 Payne 등이 실시한 것으로 소장의 윗분분만 남기고 중앙과 아랫부분을 잘라낸 다음 대장으로 바로 이어줌으로써 영양분이 흡수될 기회를 줄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시술받은 환자에서 설사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문제가 되었습니다. 후에 소장과 대장의 절제 부위와 이어주는 부위를 조금씩 변형시켜 가면서 여러 가지 수술법이 고안되기 시작하였으나 역시 설사와 영양분 결핍이 문제점으로 대두하였습니다. 또 췌장과 담도를 이어주는 수술이 1996년부터 시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영양분 흡수도 못하는 위는 왜 잘라내나?

체중을 줄이기 위한 위절제술이 처음 시도된 것은 1967년의 일입니다. 아이오와 대학교의 에드워드 맨슨은 위궤양으로 위 일부를 잘라낸 환자에서 체중감소가 일어나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위는 식도를 내려간 음식물이 가장 많이 소화되는 기관이기는 하지만 음식물을 흡수하는 곳은 아닙니다. 그런데 위를 잘라낸 경우 어떻게 하여 체중이 줄어드는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고, 단지 아마도 위를 절제하면 소화가 잘 되지 않으므로 흡수가 줄어들 것이라고만 추측하였습니다.

그런데 위궤양뿐 아니라 위암과 같이 반드시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위장 질환이 꽤 있으므로 이와 같이 위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면밀검토해 본 결과 많은 경우에 체중이 감소되고 체격이 줄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위를 잘 잘라낸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오늘날 가장 많이 이용되는 위장우회술이 탄생하였지만 집도의사에 따라 그리고 기관에 따라 수술방법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위를 잘라내려면 복부를 절개해야 합니다. 살좀 빼자고 배에 칼자국을 내고 싶은 분들은 없을 테니 초기에는 당연히 병적으로 비만이 심하여 비만에 의한 합병증이 심각한 건강이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위절제술이 시도되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내시경을 통해 수술하는 방법이 현저히 발전하면서 인체에 자국을 남기지 않고 수술하는 방법이 개발되자 심각한 비만 치료뿐 아니라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싶은 욕망으로 위를 잘라내는 이들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몸매를 다듬고 싶은 욕망을 나무랄 수는 없겠지만 이것은 미국에서도 권장되지 않는 방법으로 위절제술에 의한 비만 해결은 비만으로 인하여 심각한 건강이상이 염려되는 경우에만 시도하라고 의사들이 권하고 있습니다. 

소화과정에서 위가 하는 일은 주로 단백질 분해입니다. 탄수화물과 지방은 위에서 거의 분해되지 않으며, 위에서 분비하는 펩신, 트립신, 키모트립신, 카르복시펩티다제는 모두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입니다. 비만과 관련있는 탄수화물과 지방은 소화시키지도 못하는 위를 잘라냈을 때-그리하여 몸에 꼭 필요한 단백질은 소화조차 제대로 시키지 못하게 만들었을 때-체중이 감소되는 원리는 초기에는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위를 절제한 환자에서 체중이 감소되는 것을 보고는 ‘아마도 흡수가 잘 안 되겠지’, ‘식욕이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야’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실제로 위암환자가 많은 한국에서도 위암으로 위를 수술받은 분들이 식욕을 느끼지 못하여 체중이 감소되는 분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위를 잘라냈을 때 체중이 줄어드는 기전을 굳이 이야기하자면 위를 잘라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소화기 장애이므로 장의 연동운동이 억제 등으로 인하여 소화 및 흡수에 이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할 수 있을 뿐이며, 위절제가 이상 흡수를 일으키는 정확한 기전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렐린(ghrelin)이라는 새로운 호르몬 발견

최근에 그렐린이라는 새로운 호르몬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호르몬이 식사와 관련하여 혈중 농도가 올라가거나 내려간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는데 2002년 5월 23일자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이 잡지는 인용지수로 볼 때 한국에 널리 알려진 Nature, Science, Cell보다 더 높운 세계적인 유명학술지입니다)에 실린 “The stomach speaks--ghrelin and weight regulation”라는 논문에는 혈중 그렐린의 농도는 체중이 감소되면 농도가 증가되어 체중을 증가시키고, 위절제술을 실시하면 농도가 감소된 상태로 유지되어 체중을 감소시킨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즉 그렐린의 농도 변화가 식욕에 영향을 주어 음식 섭취가 줄어들게 하므로 체중을 줄일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영양분 과다로 몸살을 앓는 판에 식욕을 조절할 수 있는 물질을 찾아냈다니 제약회사는 물론 수많은 의학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과 2년 정도 되는 기간 동안 500편이 넘는 논문이 쏟아져 나올 정도입니다.

수술시 지방 소화와 흡수를 담당하는 소장의 일부를 함께 절제해 주면 더 효과를 볼 수도 있습니다. 하기야 위와 장을 모두 잘라내 버리면 효과는 극대화하여 나타날 것입니다.

문제는 합병증입니다. 환자들은 아무 합병증이 없는 치료법을 원하시겠지만 그런 치료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감기약만 먹어도 졸음이 오는 판인데 위를 잘라냈는데 합병증이 생기기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가장 큰 문제는 위를 절제한 후 봉합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음식물이 새 나오거나 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세균이 감염되어 썩어들어가는 일이 생길 수 있으므로 심각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연구결과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수백명당 한명씩 이런 경우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치료를 받는 경우에는 반드시 의료진과 충분한 토의를 하여 정보를 습득하신 다음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위 절제는 소화와 흡수의 생리과정에 변화를 주고, 그렐린 농도 감소를 유발하여 체중을 줄일 수 있게 하지만 비만을 치료하기 위해 멀쩡한 위를 잘라낸다는 것은 또다른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으므로 비만이 심각한 경우에만 고려해볼 만한 방법입니다. 미국에서도 환자 선정에 만반의 주의를 구하고자 하고 있으며, 미국인들과 달리 피하 지방은 적고 복부 지방이 많은 한국인 체형에서 미국의 방법을 그대로 따라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어야 합니다.

비만을 해결하고 싶지만 수술을 원하시지 않으시는 분들은 앞으로 그렐린의 기능을 조절할 수 있는 물질이 찾아지기를 기다려 보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의학도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가까운 장래에 그렐린 조절 물질을 발견해 낸다면 체중조절이 쉽게 가능해지는 시기가 올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필자는 생명과학 연구자로 <역사, 문화, 사회 속의 의학과 과학 이야기> 카페(http://cafe.naver.com/socialmedicine.cafe)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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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4/22 [09:3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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