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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거 이헌재 장관이 한일을 기억한다
신자유주의 전도사, 금융위기에는 저승사자로 화려한 변신
 
조준상   기사입력  2004/02/12 [09:59]

사람이 그렇게 없나. '이헌재'라는 낯익은 이름을 들으며 내게 든 첫 느낌이다. 새 경제부총리로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장관이 지난 2월10일 임명됐다. 대통령이 총애했다던 김진표 부총리는 부름을 받고 총선에 징발됐기 때문이다.

이 전 장관은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의 여파가 한창이던 1998년 4월부터 2000년 1월까지 2년간 초대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금융 구조조정을 이끌며 '미스터 소방수'라는 별명을 얻었던 인물이다. 그만큼 평가도 후하다. '발등의 불'을 잠재운 공로는 점점 인색하게 되는 사후평가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 안 좋은 몇 가지 '기억'을 갖고 있다. '사람이 그렇게 없나'라는 생각이 든 것도 이런 영향이 클 것이다. 가장 최근의 기억은 '굴욕'으로 끝난 지난해 5월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이 전 장관이 보인 행태 때문이다. 2003년 4월24일 우리은행 주최로 열린 한 모임의 창립행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새 정부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김진표 부총리와 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 등 온건주의자를 기용했지만 시장은 정부의 노선에 안도와 신뢰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 그러나 정부가 외국인 투자유치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거나 발전시설 민영화를 확실하게 추진하는 등 시장에 '신호(사인)'를 준다면 다음달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무렵에는 시장이 안정될 수 있다 …"

그때는 네트워크(망) 산업에 대한 민영화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회의론이 커지면서 새 정부에서 조심스런 방향 선회를 모색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 전 장관의 발언은 그런 새 정부에 대해 미국 방문 전에 네트워크 산업에 대한 민영화 노선을 흔들림 없이 밀어 부치고, 외자유치를 위한 프로젝트를 발표해 미국의 환심을 사라고 말한 것이다. '시장의 안정'이란 수사를 빌렸지만, 방향 전환을 모색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시장에 순응하고 그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두 번째 '황당한' 기억은 지난 2000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이 전 장관은 한국경제에 "물가안정과 경제성장이 함께 가는 (미국식) 신경제적 요소가 감지된다"고 말했다. 성장기여도는 높지만 물가는 자극하지 않는 정보기술 발전을 추켜세우면서 임금만 생산성 범위 안에서 잡혀주면 한국경제가 미국처럼 신경제로 간다는 게 그의 논지였다. '경기순환 부정론'으로까지 이어졌던 미국의 신경제가 거대한 주식 거품 속에 피어난 '빛 좋은 개살구'였던 것처럼, 이런 착각과 환상의 토대는 한국에도 풍부했다. 그때 주식시장은 잘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세 번째는 '분노'와 '아픔'의 기억이다. 98년 7월~99년 3월까지 벌어진 장은증권 사태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장은증권 노동조합이 고객예탁금으로 직원들의 명예퇴직금을 지급했다는 사실 날조를 통해 제1차 금융구조정의 분위기를 잡았다. 날조된 사실을 보도한 언론에 대해 장은증권 노조는 모든 정정보도를 받아냈다.

하지만 금감위의 탄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장은증권 노조가 회사 회생을 위해 홍콩계 유수한 금융기관(당시 자산 350억달러)이 장은증권을 인수하는 협상을 거의 성사시켰음에도 금감위는 장은증권에 업무정지 명령을 내리고 청산절차를 밟았다. 외자 유치가 지상과제이던 그때 노조가 나서 외자를 끌어 들였는데도 퇴짜를 논 것이다. 장은증권 노조가 끌어들이는 외자는 '불량품'이라는 꼬리표라도 달려있는 게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금융 구조조정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장은증권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장은증권 사태는 관료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고객예탁금으로 직원들의 명예퇴직금을 지급했다는 주장이 사실 날조로 밝혀진다. 이렇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자, 금감위는 향후 있을지도 모를 '불안의 씨앗'은 아예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나는 이게 장은증권 사태의 본질이라고 파악한다.

당시 이 전 장관과 금감위가 자행한 '살인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장은증권 노조위원장은 지금 민주노총에서 일하고 있다. 재경부장관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있는 동안, 이 전 장관은 장은증권 노조위원장에게 개인적으로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장은증권 사태는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 경우가 아니다. 지금도 당시 장은증권 노조위원장은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말도 안 되는 혐의로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수억원의 손배가압류를 당하고 있는 상태다.

공교롭게도 이 전 장관이 금융감독위원장으로 있던 때인 99년에는 카드 현금서비스 한도 철폐 등 현재 한국경제를 짓누르는 '원죄'가 저질러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사람이 그렇게 없나'라는 느낌과 함께, '결자해지'라는 단어가 꼬리를 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자신이 지은 매듭을 푸는 데는 '이헌재 펀드'보다는 경제부총리가 더 적절한 위치일 것이다.

* 필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입니다.
* 본문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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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2/12 [09:5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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