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한미FTA=을사늑약’‥홍준표가 원조
[시평] 바보야, 노무현은 '한미FTA 고쳐라' 했다
 
김영국   기사입력  2011/10/19 [17:45]
 
패는 홍준표, 맞는 정동영  

홍준표 대표를 나름 평가하는 편이다. 헌법 119조 2항(경제민주화)에 대한 소신, 돈키호테 같지만 친서민적 언표, 자기 편을 향한 거침없는 비판, 벼락대신 캐릭터…. 진보좌파 입장에서도 그를 마냥 미워하기 어렵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런 홍 대표가 어제 "이번 재보선이 끝나면 한미FTA 비준을 10월 안에 '한 칼'에 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면서 지금 한미FTA를 반대하고 있는 손학규, 정동영, 김진표, 천정배, 유시민 등 야당 지도자들의 과거 한미FTA 찬성 발언들을 죽 열거했다. 과거에는 찬성해 놓고 이제 와서 반대한다며 '옳지 않다'고 일침을 가했다. 

홍 대표는 특히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의 '한미FTA=新을사늑약,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완용' 발언을 문제 삼았다. 이는 비단 홍 대표뿐만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물론 보수언론의 최근 '정동영 비판'은 가히 히스테리에 가깝다. 한 재벌 보수신문은 "정동영은 한국 현대사의 실패"라고 규정했다. 집권당 대통령 후보를 지낸 사람으로서 '대통령급 품격'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동자·학생 운동권과 함부로 같이 뒹굴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진영 입장에서 정 최고위원의 한미FTA 구원등판이 달가울 리는 없다.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전직 대통령 후보, 한진중공업 사태에서 보인 뚝심, 시민사회와 당의 요청으로 상임위까지 옮겨 한미FTA 저지 선봉장으로 나선 그가 이래저래 신경이 거슬릴 법도 하다. 

그러나 한때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이 진보로 변신하고 밑바닥으로 내려가 몸소 실천하고 있다고 해서 "인격이 함몰됐다"는 비난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정 최고위원은 진보를 선언하기에 앞서 어정쩡했던 과거 행보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성문까지 썼다. 그가 유일했다. 거물 정치인이 그 정도로 자존심을 꺾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한미FTA=을사늑약' 이유? 홍준표에게 물어봐 

그리고 보수세력이 말하고 싶지 않은, 꼭꼭 감추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다. 

그들이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고 있는 '한미FTA=新을사늑약, 김종훈=이완용' 발언에 정당성을 부여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다. 홍 대표의 과거 발언을 들춰내 비난거리로 삼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다만 평가의 잣대가 공정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다. 

홍 대표는 2007년 5월 28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인터뷰에서 한미FTA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발언 전문을 그대로 들어보자. 


- 대미자주노선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한미 FTA는 어떻게 보나? 

지난 몇 년간 주한미군과 관련된 협상을 보면, 방위비 협정의 경우 주한미군이 줄어드는데 방위비는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용산 미군기지 이전 비용 협정도 우리가 일방적으로 불리했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미군기지 반환에 대한 환경치유 협정에 따라 환경치유가 제대로 됐나. 이런 협상을 지켜보면서 미국은 이미 한국을 혈맹이나 우방국으로서가 아니라 미국 국익우선주의라는 걸 확인했다. 6.25 때 참전한 건 고마운 얘기지만 아직까지도 거기에 매달려있어선 안 된다. 우리도 미국에 요구할 건 요구해줘야 한다. 

한미 FTA의 경우 일부 협상에서 문제가 크다. 국가소송제의 경우 대부분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뒤집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놨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사법주권 전체를 미국에 바친 것이다. 이런 협상은 해선 안 된다. 한국의 헌법체계와 사법주권체계 자체를 부정하는 협상은 큰 문제다. 

노무현 정부가 자기 임기 중에 한미 FTA를 하기 위해 너무 조급하게 서둘렀다. 스위스는 미국과 FTA 협상을 3년 동안 하고도 자국의 농업 보호를 위해 마지막에 파기했다. 스위스는 지금 유일하게 EU에 들어가 있지 않은 나라다. EU연합에 들어가면 자국 농업이 보호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위스는 세계 일류 선진국이다. 한미 FTA뿐 아니라 FTA는 세계적인 추세이므로 따라가야 하지만, 자기 임기 중에 실적을 남겨야겠다는 조급한 생각 때문에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협상이었다는 점이 없지 않았다. 


홍 대표가 자신있게 말한 "한미FTA는 한국의 사법주권 전체를 미국에 바친 것이고, 한국의 헌법체계와 사법주권체계 자체를 부정하는 협상." 이것이 '新 을사늑약'이 아니고 대체 무엇인가. 이보다 더 정확한 의미 규정이 또 있을까. 표현만 안 했을 뿐 '미국에 나라 팔아먹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한국의 외교주권을 일본에 갖다 바친 협상이라면, 2011년 한미FTA는 한국의 헌법체계와 사법주권 전체를 미국에 갖다 바친 협상이라는 게 홍 대표의 설명이다. 이명박 정부는 안 그래도 불리한 협정을 더 불리하게 만들어버렸다. 지극히 비판적이던 오바마 대통령이 적극 비준으로 돌아선 이유이다. 더군다나 한미FTA는 경제주권을 침해한 협정이라는 지적이 더 많다. 서민들에겐 을사늑약보다 더 심대한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협정을 숱한 거짓말과 말바꾸기는 물론 대통령의 훈령까지 무시하며 체결을 주도한 통상교섭본부장. 그가 '제2의 이완용' 소리를 듣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노무현의 성찰 "비준 서두르지 말고, 고칠 건 고쳐야" 

'불편한 진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바로 한미FTA 체결 당사자인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입장 변화'다. 

퇴임 후인 2008년 11월 10일 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개설한 <민주주의2.0> 게시판에 직접 쓴 글 한 편을 올렸다. 제목은 '한-미 FTA 비준, 과연 서둘러야 할 일일까요?'였다. 그는 "한미FTA 체결 후 미국 금융위기로 상황이 변했으니, 재협상을 통해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금융 부문과 우리에게 불리했던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이 쓴 글을 한미FTA 재협상 관련 부분만 그대로 옮겨보자. 


한미 FTA 비준, 과연 서둘러야 할 일일까요? 

글쓴이: 노공이산(고 노무현 전 대통령 ID)

2008-11-10 22:36:00  

한미 FTA 국내 비준을 놓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신중한 대응이 필요한 때입니다. 

비준을 하기 전에 두 가지 문제를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는 비준을 서두르는 것이 외교 전략으로 적절한 것인가? 하는 문제이고.
하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재협상이 필요 없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중략)  

우리의 입장에서도 협정의 내용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미 간 협정을 체결한 후에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했습니다.  

우리 경제와 금융 제도 전반에 관한 점검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국제적으로도 금융제도와 질서를 재편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마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국도 그리고 다른 나라도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한미 FTA 안에도 해당되는 내용이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고쳐야 할 것입니다.
다행히 금융 제도 부분에 그런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도 고치고 지난 번 협상에서 우리의 입장을 관철하지 못하여한 아쉬운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재협상 없이는 발효되기 어려운 협정입니다.
폐기해 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비준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재협상을 철저히 준비하여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폐기할 생각이라면 비준 같은 것 하지 말고 폐기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중략) 

이 글을 쓰면서 걱정이 많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을 번복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양심선언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의 입장은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황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정책은 상황이 변화하면 변화한 상황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실용주의이고, 국익외교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중략)    


반성 없는 '인지부조화·자가당착'이 품격을 논하다 

이처럼 상황변화론을 들어 한미FTA 재검토·재협상을 가장 먼저 제기한 당사자가 바로 노 전 대통령인 것이다. 정동영은 이런 노무현의 성찰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며 일찌감치 '한미FTA 독소조항 제거를 위한' 재협상·재검토를 주장해 왔다. 그리고 지난 7월 민주당의 당론(10+2 재재협상안)으로 관철시켰다. 

그런데도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한미FTA 비준 반대에 나선 야당 인사들을 싸잡아 노무현을 모독한 배신자 취급하고 있다. 자기 눈의 들보는 감추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말하는 인지부조화 습성이 만들어낸 '왜곡의 극치'다. 이것이 바로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자가당착 아닐까. 

지금 미국 사회는 '99% 국민'의 '1% 부자'들에 대한 분노가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로 폭발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에 퍼져 거대한 '부자 증세'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월가식 금융시스템 도입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한미FTA 비준에 안달이 나 있다. 시대착오도 유만부동(類萬不同)이다.  

문득 지난 2007년 7월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FTA 체결에 따른 '제2차 금융허브 회의'에서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보고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월가 출신의 금융전문가를 경제부총리 자문관으로 영입.'  

한미FTA의 속살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대자보> 편집위원. 항상 이 나라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쪽에 서 있고자 하는 평범한 생활인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1/10/19 [17:45]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