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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세계의 민중혁명과 3차 석유파동
[김영호 칼럼] 서방 반동세력 개입하여 사태 악화시키면 세계경제 붕괴
 
김영호   기사입력  2011/03/04 [18:28]

1948년 5월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 유대인 나라의 건설을 반대하던 주변 아랍국들이 이스라엘과 네 차례나 전쟁을 벌였으나 군사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패배하고 말았다. 이집트가 주축이 된 4차 중동전쟁(1973년 10월 6일~10월 26일)도 초기에는 승기를 잡았으나 미국의 지원에 힘입은 이스라엘에 패전하고 말았다. 이 전쟁 중에 중동국가들은 석유무기화에 나섰다. 유가인상과 생산감축을 단행하는 한편 이스라엘을 돕는 서방국가들에 대해 수출중단을 결행했다. 이에 따라 국제유가가 1973년 9월말 1배럴당 3.07달러에서 1974년 1월말 11.65달러로 넉 달 새 4배 가량 폭등했다. 이것이 1차 석유파동이다.

1970년대 중동지역에서 이란은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었다. 그 까닭에 이란은 아랍권의 석유무기화에 동참하지 않았다. 친미정책과 석유자원에 기반을 둔 팔레비 국왕의 폭압정치는 민중혁명을 부르고 말았다. 1978년 12월 26일~1979년 3월 5일 유전 노동자들이 팔레비왕정 타도를 외치며 파업에 돌입함으로써 석유생산이 중단되었다. 팔레비 실각과 함께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이란이슬람공화국이 탄생했다. 최고 실권자로 떠오른 이슬람 시아파의 종교지도자 호메이니는 미국과의 단교를 선언하는 한편 석유수출을 전면중단했다. 다른 중동 산유국들도 원유감산에 동참함으로써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났다. 1978년초 1배럴당 13.66달러였던 국제유가가 1981년 10월말 38.28달러로 34개월 동안 180%나 폭등했던 것이다.

지난 1월 튀니지의 가난한 시골에서 한 젊은 채소행상이 여경한테 손수레를 빼앗기고 뺨까지 맞았다. 그가 스스로 몸을 태워 분노를 말할 때 세상 어느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그의 분신이 트이터, 페이스북, 유튜브를 타고 나비효과를 일으키며 철옹성 같은 아랍세계의 독재체제를 무너트리는 쓰나미를 몰고 오리라고 말이다. ‘2011 아랍민중혁명’은 시발점인 튀니지에서 23년간 악정을 저질러온 자 엘아비딘 벤 알리를 축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있다. 이집트에서 더욱 세차진 그 파고가 리비아, 알제리, 모로코, 바레인, 예멘에 몰아친 데 이어 페르시아만을 건너 이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란에서는 2009년 6월 부정선거 규탄시위 이후 최대규모의 반정부시위가 다시 일어난 셈이다.

이집트의 친미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그는 이스라엘과 악수한 대가로 매년 미국한테서 받는 수십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버팀목 삼아 30년간 철권통치를 휘둘렀다. 탱크의 포신이 그를 끝까지 지켜줄 줄 알았지만 미국이 고개를 돌리자 그도 마침내 민중의 힘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리비아는 사태의 예측을 불허할 만큼 유동적이다. 42년간이란 긴 세월 탓인지 무아마르 카다피의 독재체제가 철벽을 두른 듯 두터운 모양이다. 동부지방에서 불기 시작한 ‘해방의 모래폭풍’이 빠른 기세로 수도 트리폴리로 향한다지만 친위세력의 살육만행이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폭격기가 뜨고 기관총을 난사한다는 끔찍한 소식들이 그치지 않는다. 자칫 유혈사태가 내전으로 치달을 형국이다.

리비아는 북아프리카 최대의 산유국이다. 1일 생산량이 120만 배럴로 세계시장 점유율은 2% 수준이다. 리비아 사태가 악화되자 공급차질을 예상한 국제유가가 100달러의 장벽을 뚫고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수급불안에 따라 투기자본이 가세한 탓도 있다. 리비아 사태가 장기화하면 1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2차 오일쇼크의 진앙지였던 이란의 1일 생산량은 220만 배럴이다. 반미국가인 이란의 사태도 유동적이다. 최악의 경우는 아라비아 반도의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으로 왕정타도의 물결이 번지는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최대 산유국으로 1일생산량이 640만배럴이다. 사태진전에 따라 3차 석유파동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의 철거는 일순에 공산주의를 무너트렸다. 장벽을 깨는 망치소리가 동구 공산권의 붕괴와 소비에트 공화국의 해체를 가져온 데 이어 죽의 장막을 넘어 천안문 사태를 촉발했다. 2011년 재스민 혁명의 바람은 북아프리카를 넘어 중동지역에도 넘실거리고 있다. 압제, 부패, 부정, 빈곤이 잉태한 ‘2011 아랍민중혁명’은 이슬람 세계에 세기적인 변혁의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서방의 반동세력이 개입하여 사태를 악화시키면 세계경제는 오일쇼크에 휩싸여 꽁꽁 언다. 1, 2차 석유파동이 그것을 말한다. 분명한 사실은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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