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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이나 랩으로 신나는 '안티조선' 어때!
진보개혁 담론의 유포를 위해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야
 
황진태   기사입력  2003/11/01 [14:03]

진보개혁담론에도 다양한 매체가 필요하다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R.A.T.M의 앨범재킷 사진     ©tubemusic
본 기자는 지난 기사에서 “정치야 놀자! 진보에도 조기교육이 필요하다”라는 글을 통해서 어려서부터 굳이 고공정치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의 정치화와 의식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었다. 그 주장과 함께 기자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요즘 신세대에 맞춰서 그들이 좋아하고 취향에 맞는 매체를 통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그들의 정치의식을 함양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공상 말이다. 그렇다면 요즘 신세대에 단연 인기를 받는 소실점은 어디에 있을까? 연예인, 그 중에서도 가수가 아닐까 본다.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와 가사에 정치적인 메시지를 함축한다면 그들은 흥겨운 리듬 속에서 굳이 사회과학서적을 읽지 않더라도 즐겁게 정치적인 사고를 습득할 수 있지 않을까. 기자의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효과가 분명 있다고 본다. 기자가 중학교 3학년 시절 DJ D.O.C의 뱃노래란 노래를 듣고서는 –사실 비판보다는 비난에 가까운 가사였지만- 사회성 짙은 가사를 통해서 ‘이런 음악도 있었구나!’ 하는 번쩍임이 들었고 이후에 세상을 좀 비딱하게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엔터테이너라는 가수들이 특히나 비판적인 메시지를 갖고 있다는 장르인 힙합에서 그들이 쏟아내는 요즘의 가사는 한계가 있다. 그들의 가사에는 자신들의 힙합진영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명 DISS라고 불리우는 비난에 가까운 헐뜯기를 하거나 혹은 사회를 향해서 비판하더라도 양비론에 가까운 그나마 기자가 즐겨 듣는 비판성향의 대중적인 랩퍼, 조PD조차도 “국회에서 설거지나 하는 병X들이지”하는 대안은 없고, 자칫. 그의 음악을 듣는 학생들에게 정치냉소주의만을 구축, 강화 시켜 줄 수 있다.  

[관련기사] 황진태, 정치야 놀자! 진보에도 조기교육이 필요하다, 대자보(2003. 10. 24) 

다음으로 본 기자가 소개하는 그룹이 한국사회문화지형에 적합한 정형은 아니겠지만 거울효과를 통하여 한국에서 절실한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는 가수의 대안을 모색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좌파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T.M)의 정치한 음악

하드코어(Hardcore)음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R.A.T.M(Rage Against The Machine)을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테다. 여기서는 R.A.T.M의 음악적인 면(물론 그들의 하드코어 음악이 그들의 사회비판성과 연결,강화 시켜주는 게 사실이나)보다는 그들의 가사와 활동적인 면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자.

R.AT.M의 1집은 ‘Rage Against The Machine’ 그들 밴드명을 그대로 앨범 타이틀로 삼았다. 이들 1집 앨범재킷을 펼치기 전에 눈에 띄는 확 들어오는 앨범재킷사진이 있다. 바로 린지 브라이스가 찍은 독재 정권에 대항하여 분신하는 베트남 승려의 충격적인 흑백사진이다.(이 사진은 퓰리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여기서 이미 음악을 듣기 전에 그들의 마이너리티(minority)를 예감할 수 있겠다. 그들의 첫 싱글 곡 Freedom은 FBI 요원을 살해한 혐의로 20년째 복역중인 인디언 인권 운동가 레네드 펠셔를 소재로 하고 있다. (특히 Freedom의 뮤직비디오(M/V)에서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레네드 펠셔가 구금되기까지의 상황을 낱낱이 재현하여 가사를 보다 절실히 청취자들이 공감 할 수 있다.) 그리고 매트릭스 O.S.T 수록곡으로 더욱 알려진 Wake Up은 매트릭스의 엔터테이너 적인 속성과는 무관하게도 가사의 내용은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 등의 흑인운동가를 다루고 있다. 이외에 “몇 년, 몇 십년, 몇 백년 동안 끊임없이 들어 온 편파적 이야기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스템의 내부를 한번 체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가사를 담고있는 Take The Power Back등의 곡에서 ‘기계에 저항하는 분노(rage against the machine)’로 가득 찬 그들의 불만을 듣고 읽을 수 있다.

자본가와 좌파의 동침?

그렇다면 과연 좌파성향의 정치밴드가 자본주의 음반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당시 1집이 나온 92년 한해 미국에서만도 100만장, 유럽에서 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물론 이러한 성공에는 그들의 정치적인 성향과는 대조되는 오히려 ‘적’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대기업 SONY의 마케팅이 뒷받침되었다. 이러한 ‘적과의 동침’에 대해서 R.A.T.M의 프론트맨이자 랩퍼(Rapper)인 잭 드 라 로차(Zack De La Rocha)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같은 밴드가 소니같은 메이저 회사와 손잡은 것에 대해 ‘적과의 동침’이라는 말로 비난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대기업이 우리를 착취하는 만큼 우리도 그들을 착취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메이저 레이블을 통하는 방법은 광고 전속 모델로 서는 따위 보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것을 대중이 얻을 수 있다.”(Sub 1998.6월.p.160)

이러한 그의 발언에 대해서 몇 년 전 있었던 당대비평과 강준만 교수 사이에 벌어진 ‘일상적 파시즘’논쟁과 연관하여 조선일보에 진보적 지식인들의 기고논란으로 불거진 문제와 비슷한 상황으로 포개어 지기도 하는데 여기는 이는 논외로 하고, 어쨌든 R.A.T.M의 ‘적과의 동침’은 그들의 성공과 좌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계속하여 성공가두를 달린다. 이러한 대기업과의 동침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신 언급하겠다.

1집 활동을 접고서 그룹 내의 갈등이 일기도 했으나 4년 만에 2집을 갖고 돌아온 그들의 바싹 마른 음악과 저항적인 메시지는 여전했다. 1집에서부터 끊임없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제국의 문화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녹아 있는 People of the sun과 Evil empire.(특히, Evil empire의 M/V에서는 수십, 수백개의 붉은 깃발들이 바람에 휘날린다. 그들의 메시지는 가사를 탈출하여 가히 민중을 길거리로 선동하기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이 두 곡 외에도 Wind Blow의 가사에서는 “제너럴 일렉트릭사, NBC/ABC방송, 디즈니사 등으로 대표된 나프타(NAFTA)의 남북 아메리카의 상호 경제 종주관계의 불평등 관계를 인지하게 만든다.”(R.A.T.M 2집 앨범 서문에서, 정문영) 이러한 가사를 통해서 한국의 상황이 비춰지지 않은가? 경제특구법, FTA, 대미종속적인 경제구조 등 말이다. 이들 음악의 미국적인 상황을 통해서 한국적인 상황을 유추하여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생각부터가 좌파적 상상력이고 새로운 매체를 이용하는 대안일 테다.   

또한 2집 앨범재킷에서 눈에 띄는 목록이 있다. 바로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한 배려의 차원에서 인지 체 게바라의 게릴라 전투,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노엄 촘스키의 촘스키 독자, 노먼 메일러의 벌거벗음과 죽은자들 등의 도서목록이 소개되어있다.

다음으로 잭 드 라 로차가 탈퇴를 앞두고 마지막 앨범이 돼버린 3집 ‘Battle Of Los Angeles’에서는 Guerrilla radio와Voice Of The Voiceless에서 필라델피아 경관 살인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투옥 중인 무미아 아부 자말(Mumia Abu-Jamal)의 석방을 요구하며 ‘FREE MUMIA’란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판매하며 과연 그들다운 음악과 행동을 변치 않고 보여주었다.

음악 이외의 퍼포먼스와 정치활동

R.AT.M 이전에도 R.E.M, U2등 정치색이 짙은 밴드는 적잖게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R.AT.M이 그들과 확연히 선을 긋는 뚜렷한 좌파정치밴드(그들을 소개할 때 보통 ‘극좌’라는 수사를 사용하는데 이는 팝칼럼리스트 정문영씨가 말하듯 “정치적인 의미만이라기 보다 일종의 ‘용납할 수 있는’ 범용적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나을 듯 싶다.)라고 불리워지는 것은 음악 이외의 그들의 행동양식과 활동때문이라고 보고 싶다. “ 93년 롤라팔루자 투어 중 가진 필라델피아 공연에서 음악 검열제도에 대한 항의로 벌거벗은 채 가슴에는 P-M-R-C(Parents Music Resource Center:음반 등급 검열위원회)란 글자를 쓰고, 입은 테이프로 봉한 채 20여 분간 침묵 시위를 벌이고, 또한 Mumia Abu-Jamal의 석방을 위해 UN 인권위원회에서의 탄원 연설을 비롯한 각종 집회와 자선 공연을 갖는 등 행동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R.AT.M 공식사이트 참고) 그리고 미국의 양심적 지성인 노엄 촘스키와 잭 드 라 로차의 라디오 대담 등과 3집 앨범 재킷에 수록되어 있는 FAIR, ZNET 등의 미국내 시민단체와 좌파매체의 인터넷 홈페이지주소 첨부는 그들이 음악 외에 넓은 활동영역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R.A.T.M은 없는가?

현재 한국에서 R.A.T.M과 같은 정치밴드를 찾기란 어렵다. 그저 해외음악을 모방(imitatio)하는 수준이지 한국사회에 알맞게 적용된(mimesis) 음악을 찾기란 불모지인 것이다. 특히, 그나마 사회비판적인 음악을 보여주고 있다는 힙합장르의 음악에서도 양비론적이고 전문적인 사회의제에 대한 인식과 지식이 결여되어 있으며 아직까지 힙합장르 자체가 타 장르에 비해 매니아적인 성향과 대중성을 획득하려는 사이에서의 고민이 반영되어 그저 사랑을 담은 가사로 그치는 게 아닌가 본다.

그러나 이미 활동을 중단 했지만 힙합가수 중에서도 눈 여겨 볼만한 가수가 있다. 바로 디지(deegie)란 랩퍼인데 그의 라임(가사)을 한 번 살펴 보면 “청소년보호법 x라 만들지/ 결국 단란주점 가서 영계 꼬시지”라며 국회의원의 이중성에 메스를 까발리고, 전직 대통령들의 성대모사를 통해 정치커넥션의 암울한 자화상을 파헤치고 있다.(tubemusic.com참고) 또한 대자보에서도 주력하고 있는 안티조선에 대해서 “X선일보 조광일보”라는 가사를 통해서 조선일보를 공격한다. 기자가 처음에 디지의 음악을 접했을 때는 가사가 상당히 획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가수가 가사를 부를 수 있구나.’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는 2집 이후로 은퇴를 선언하고 가수활동을 중단했다. R.A.T.M의 마케팅을 받쳐줬던 SONY의 사례처럼 든든한 마케팅력이 있었다면 TV에서 조선일보를 씹는 디지 같은 랩퍼들의 공연을 대수롭지 않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러한 ‘왕건이’를 몰라보는 음반 관계자들이 안타깝다.

더불어 한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R.A.T.M류의 하드코어 장르를 한국에 대중화한 서태지씨가 서태지와 아이들로 활동했을 당시 보여준 교실이데아, 컴백홈(COME BACK HOME) 같은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긴 음악을 하드코어를 통해서 보여주기는커녕 오히려 해외에서 인정 받으려면 가사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작곡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그의 의중에서 읽어지는 탈정치화도 정치화된 음악을 기대했던 기자로서는 못내 아쉽다.

정치힙합 들어보셨나요?

얼마 전 한겨레를 통해서 앵거(Anger)라는 신인가수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인터뷰에 의하면 “나는 당당한 좌파(word is a weapon)라고 선언한 그는 “우리의 영웅 장군님의 기념관을 짓는”정부와 “여기저기 시뻘겋게 칠해대는 망나니”(건전가요 2) 보수언론, 그리고 “유전을 손에 쥐려 유엔조차 무시한”부시에 대한 분노를 떠뜨린다.”고 한다.

현재 대학년 4학년으로 “계속 음악을 할 것인가 아니면 취직해 ‘넥타이 대열’에 합류할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통해서 어렵게 만든 앨범과 데뷔에 기자는 그 용기와 투지에 먼저 갈채를 보내고 싶다.

또한 “지금의 정치적 음악은 다분히 희화화된 힙합과 민중가요 정도죠. 그러나 앞으로 사회 문화적 변혁을 주도할 청년 세대에게는 코드가 맞지 않습니다. 이 세대의 취향에 맞는 힙합 리듬에 실린 강렬한 메시지가 필요합니다.”는 앵거의 다부진 포부도 좀 더 좋은 음반사를 만나서 속된말로 ‘뜨고 나서라도’ 변치 않길 바란다. 

정치야 듣고 놀아보자

기자의 주변 사람들만 하더라도 ‘정치’에 ‘정’자만 나오더라도 ‘치’를 떠는 사람이 많다. 말그대로 ‘정치’인 것이다. 이러한 정치’냉소’주의는 내년 총선에서의 투표율저하 문제 정도가 아니라 지금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꿈나무들에게도 자칫 ‘냉해’를 입을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이에 대해서 어려서부터 (이념적인 색채는 어느 정도 ‘지양’하더라도 한편으로는 ‘지향’이 필요한 모순적이지만) 정치적인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혹자는 무슨 어린 아이에게 벌써부터 정치의식을 심어주냐고 이의를 제기하실 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자는 그러한 이의도 즐거운 정치, 일상의 정치를 경험하지 못한 고공정치의 공허함만이 습속화된 기성세대의 우울한 초상이 반영된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란 즐거운 것이다! 스위스 한 자치주의 선거에서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투표장을 가서 자치주에 어떠한 시설을 설치하느냐의 유무를 따지는 생활중심의 선거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선거를 체험하듯이 우리에게도 고공정치가 아닌 고도를 낮춰서 땅으로 밟을 수 있는 생활정치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 가수와 음악은 그러한 가치를 학습하기에 너무나도 적합한 매체가 아닌가? 기능적 지식(영어연수, 조기교육)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21세기에 필요로 하는 창의적 자발적 사고는 ‘비판적 지식’의 학습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앞으로 귀도 즐겁게 해주며 메시지도 담지된 다양한 정치성향의 가수활동을 기대해본다. /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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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1/01 [14:0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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