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순의 문학과 여성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군대에 빼앗긴 목숨들, 영웅이거나 하찮거나
[정문순 칼럼] 징병제 국가는 징집된 영혼들의 죽음에 책임져라
 
정문순   기사입력  2010/04/26 [21:19]
천안함 희생자 중 직업군인을 제외한 의무병들은 모두 16명이다. 죽음에 등급을 매겨서도 안되고 누구 한 사람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있을 수 없지만,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군대에 징집되어 살아 돌아오지 못한 목숨들은 더 안타깝고 원통하다. 최연소자인 고(故)장철희 이병이 19세이다. 100일 휴가도 가지 못한 신참 입대자였다. 봄날을 느낄 수 없는 거센 바닷바람에 채 적응이나 했을까. 

천안함 비극이 일어난 것과 비슷한 시기에 전방에서 병사가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는 뉴스가 속보로 타전되었다. 1990년생 송모 이병. 주인 잃은 미니홈피에 들어가보니 농구를 좋아하는 활달한 청년이었다. 대학을 다니다 지난 연말에 입대했는데, 전방에 배치된 지 불과 6일만의 날벼락이었다. 친구들이 입대 소식을 듣고 격려를 보낸 글과, 청천벽력 소식에 애통해하는 글이 큰 시차 없이 나란히 놓여 있어 방문객의 마음을 더 쓰라리게 한다. 
 
▲ 천안함 전사자 46명의 해군장 둘째 날인 26일 경기도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 내 체육관에 마련된 희생장병 46명의 합동분향소에서 고 정태준 일병의 어머니가 아들의 영정 사진을 만지며 절규하고 있다.     © 노컷뉴스 오대일 기자

국방부에서 자살로 추정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유족들이 반발한다는 소식이 나오더니 그 이후 소식은 더 이상 뉴스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애초 군인 사망이라는 ‘평범한’ 사건이 속보를 탄 것도, 천안함 침몰을 두고 북한과의 연루설이 모락모락 지펴지는 분위기에 힘 입어 전방 초소를 지키는 경계병의 사망도 북한과 끈을 잇고 싶은 자들의 욕망이 발동한 때문이었다. 북한과 관계없다면 그만이었다. 

2008년 군대에서 사망한 군인들은 모두 134명이다. 사흘에 한 번 꼴로 일어나는 군인들의 사망은 속보는커녕 토막 뉴스로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병으로 삶을 마친 송모 청년도 참혹한 사연을 가졌으나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젊은 죽음들 중 하나로 묻혀 버릴 것이다. 세상이 이름을 불러주고 눈물 흘리고 애석해하는 것은 천안함 희생 군인이라야 가능했다. 젊은 목숨을 무참하게 집어삼킨 총탄의 원흉이 어떻게 결론 났을까. 부모는 피가 미처 식지도 않았을 자식을 벌써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었나보다. 그의 미니홈피에는 장례식에 못 가서 미안하다는 친구들의 글 몇 개가 쓸쓸하게 남아 있다. 

군대에서 원통하게 목숨을 빼앗긴 점은 다를 바 없는데도 누군가는 순국 영웅으로 칭해지는 건, 누군가의 죽음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을 것이다. 순국이라 하지 마라, 영웅이라 하지 마라. 목숨이 열 개쯤 있으면 모를까. 19살, 20살에 죽어 순국 선열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영웅 대접과 오직 하나뿐인 목숨을 맞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으나 피지도 못하고 저버린 넋을 미화하는 건 그들에 대한 모독이다. ‘꽃다운’ 나이라는 표현도 부적절할 만큼 미처 봉오리가 열리기도 전, 어린 나이라고 해도 좋을 젊음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으랴. 

징병제 나라는 그런 나라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햄버그 가게에 앉아 여자 친구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데이트 약속을 정하고 있었을 젊음들의 목숨조차 보장하지 못한다. 농구를 하고 있을 청년이 총탄에 스러지고, 기차에 관심 많은 청년이(고 장철희 이병) 바다에 육신이 삼켜져도 이를 당연하게 생각할 뿐. 한 해 100명 넘게 스러지는 목숨들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거나, 애꿎은 죽음을 영웅적이라 떠받드는 세상은 징병제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징병제 국가에서 구국의 산화와 ‘개죽음’은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다. 
 
국민에게 의사를 묻지 않고 군대에 잡아가는 나라는, 드러나지 않는 죽음은 무의미하거나 대단치 않은 일로, 감출 수 없는 죽음은 각별하게 하늘 끝까지 드높이지 않으면 존재 가치를 이어나갈 수 없다. 원하지 않는 군대에 끌려가 사나흘 피었다 지는 벚꽃보다 속절없고 원통한 죽음을 당한 앳된 영혼들을, 징병제 국가는 책임져라.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0/04/26 [21:19]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