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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기곡경, 고건의 ‘대를 이어 벼슬하자’
[공희준의 일망타진] 벼슬중독증 걸린 고건, 개과천선과 대오각성의 사이
 
공희준   기사입력  2009/12/23 [16:22]
1. 한동안 국민의 관심권에서 사라졌던 고건 전 총리가 다시 여론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양이다. 이명박 정권이 하사한 감투 하나를 날름 받아먹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과 관계된 자리들이 오가면 항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곤 하는 ‘고사’니 ‘삼고초려’니 하는 수식어가 없는 걸로 미루어보아 ‘날름’이란 부사가 이 경우에는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싶다.

고건 씨가 관장할 대통령 직속의 이른바 ‘사회통합위원회’의 주된 역할은 계층, 이념, 세대, 지역 간 갈등을 해소하는 데 있다고 한다. 넓은 길 놔두고 샛길로만 바득바득 찾아든다는 뜻의 사자성어인 ‘방기곡경(旁岐曲徑)’이 딱 어울린다고 하겠다. 한국사회의 온갖 사회적 갈등의 골을 메울 방법은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강남부자들만 회개하면 된다. 강남부자들의 수괴 이상도 이하도 아닐 대통령 이명박 씨의 개과천선 역시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사회통합위원회에는 고건 씨 이외에도 여러 유명 인사들이 망라되었다는 소식이다. 김명자, 문정인, 이문열, 황석영 씨 등이 구성원이란다. 위원회의 출범동기와 면면을 살피니 조직의 목적 달성은 애당초 글러먹은 분위기다. 대신에 소중한 산소만 애꿎게 잡아먹힐 전망이다. 회의에 출석할 사람들 중에 대중교통 이용할 만한 분들은 거의 안 보이는 탓이다. 사회통합위원회 회의하느라 추가로 배출될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떠올리니 벌써부터 숨이 턱하니 막혀올 지경이다.
 
▲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가 출범한 23일 오후 서울 창성동 정부청사 별관에서 고건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현판식을 갖고 있다.     © CBS노컷뉴스

고건 씨를 변절자라고 욕하고픈 마음은 없다. 오히려 그가 측은해진다. 상습적인 연쇄강간범을 일컫는 ‘발바리’들 중에는 그 죄질은 불량함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불쌍하게 생각되는 자들이 간간이 존재한다. 본인 스스로도 억제할 수가 없는 섹스중독증에 걸린 자들이 그렇다. 이거, 물리적이든 화학적이든 거세하기 전에는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

2. 고건 전 총리께는 나의 표현과 수사법이 과할 수도 있음에 대해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싶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나쁜 머리로는 적당한 비유를 발상할 수 없으니 말이다. 사실 스타일만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고건 씨만큼 세련되고 점잖은 인물은 원로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 씨 정도다.

나는 고건 씨는 하루라도 벼슬길에 나서지 않으면, 즉 국록을 먹지 않으면 병이 날 수밖에 없는 특이체질이리라고 믿는다. 요번 자리는 맡아봤자 좋은 소리 결코 못 들을 게 명약관화함을 고건 씨 자신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욱이 2MB 유형의 인간상은 고건 씨처럼 품격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막장이다. 개인적으로는 벌레만도 못하게 느껴질 대통령이 주는 임명장을 사약 마시는 기분으로 받아들었을 고건 씨의 속내가 전혀 편하지만은 않았으리라.

나쁜 줄 알면서도 하는 게 중독이다. 마약중독자도, 섹스중독자도, 도박중독자도 마약과 섹스와 도박이 다 나쁜 줄은 안다. 그럼에도 알면서도 한다. 그러기에 중독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벼슬하는 걸 개인의 성공이요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온 터다. 약물도, 섹스도, 도박도 적당히 하면 이롭다. 문제는 도가 지나친 데서 비롯된다.

벼슬 또한 마찬가지다. 본인의 소신이 시대정신에 부합하고, 능력이 주어진 소임을 너끈히 감당할 수 있을 때만 국리민복에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바람직한 시대정신과는 어울리지 않고, 책임을 다해내기에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이가 계속 자리에 집착한다면 그건 순전히 중독의 결과물일 따름이다.

西土(중국)에서는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다. “대를 이어 충성하자!”는 북한 정권의 맹목적 구호가 임진강을 건너오자 “대를 이어 벼슬하자!”로 변질됐다고나 할까. 기실 대를 이은 충성을 가장 열심히 하는 곳은 삼성이다.

고건 씨도, 그리고 이명박 정권서 국무총리 퇴임하자마자 대형로펌 ‘김앤장’에 방정맞게 취직자리 알아본 한승수 씨도 방기곡경을 멀리한 대표적 벼슬아치들이다. 그들은 샛길과 굽은 길을 걸은 적이 없다. 언제나 곧게 뻗은 대로를 고집하였다. 단지 꺼림칙한 구석이 있다면 고건 씨나 한승수 씨나 언제나 남들이 힘겹게 닦아놓은 곧고 넓은 길만을 편하게 걸어왔다는 점이다. 삽질에 환장한 이명박 정권 아래서 손에 삽 한 번 잡아보지 않았을 부잣집 도련님 부류가 역으로 출세하는 게 참으로 이상하다.

영원한 현역을 자임할 고건 전 총리께 일개 양민 주제로나마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사항이 있다. 이제는 민간부문에서도 좀 활동해주시라는 거다. 우리 주변에는 실패한 연애로, 헤어진 인연으로 말미암아 괴로워하는 남녀들이 무수히 많다. 과거의 추억의 굴레에 갇혀서 새로운 짝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이 불쌍한 청춘들에게 정권이 바뀔 적마다 늘 쿨하게 새출발 잘하신 고건 씨의 쿨한 마인드를 부디 전수해달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존립을 위협하는 저출산 문제 해결에 일조할, 경륜의 쿨한 웨딩사업가 고건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글쓴이는 시사평론가, <이수만 평전>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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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2/23 [16:2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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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라 2009/12/24 [17:15] 수정 | 삭제
  • 나는 고건 씨는 하루라도 벼슬길에 나서지 않으면, 즉 국록을 먹지 않으면
    병이 날 수밖에 없는 특이 체질이리라고 믿는다. ???

    표현이 잼 있네요 ^^

    한때 민주,개혁세력에서 너무 큰 기대를 하였던 것 아닐까요?
    고건은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겁니다.
  • 새삼스레 2009/12/23 [22:51] 수정 | 삭제

  • 고건의 살아온 역사가 나열하듯이 그가 백로의 스팩트럼에 낄 자리는 없다.
    다만 그 나름 상대적 능력과 상대적 덜 지저분함을 달고 다닐 뿐이다.

    그는 온 국민 사기치며 충분히 할수 있었던 개혁을 팽개치고
    청와대에서 달러박스를 공식 수령한 뇌물현과는 조금 차원이 다르다.

    새삼스레 백로가 까마귀로 된듯이 자지러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비판은 비판 할 수 있는 도덕성이 있음으로 해서 정당성이 확보됨을 인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