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DakDoo의 소름돋기]70년대의 악몽 '소름'
과거의 악몽은 현재형으로, 역사의 근친상간을 그린 수작
 
김정곤   기사입력  2003/10/25 [19:50]

재개발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있으십니까? 낡은 복도를 중심으로 낡은 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몇 십년은 묵었을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방안을 떠돌고 있는 연탄 가스... 분명 한때는 희망의 상징이었을 그 아파트는 어느 순간 빈민의 상징으로 변해 버리고, 주변을 휘감는 고층 아파트들 사이에서 버려질 날만을 손꼽고 있던 그 낡은 아파트.

▲영화 소름중 한장면     ©씨네서울
그렇게 과거는 현재에 먹혀가고 현재는 또 미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소비해 갑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이 변해가는 와중에도 가끔은 끈질기게 달라붙어 그 사악한 뿌리를 현재로까지 뻗어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영화 ‘소름’처럼 말이죠.

영화 소름에서는 각 시대를 대표할만한 두 인물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인 용현과 선영 두 인물이지요. 용현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소환된 인물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그가 찾아가는 곳은 이제는 사람이 살지않는 다 낡아빠진 농가들이고 그가 태어나게 된 음울한 아파트이지요. 하지만 선영은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영화가 완성되기 두 해전에 완공된 두산 빌딩을 배경으로 그녀는 그녀의 이웃과 잠깐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요. 또한 그녀는 현대성의 상징이랄 수 있는 24시간 편의점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위의 글만 놓고 봤을 때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의 충돌을 그린 영화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로 상징되는 남자와 현재로 상징되는 여자와의 충돌을 그려낸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악몽처럼 잔존하는 과거의 기억이 어떻게 현대를 부숴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또한 그것이 어떻게 미래 또한 왜곡 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역사적 근친상간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영화 소름중 한장면     ©씨네서울
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는 아파트는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저소득층을 위한 아파트들 중의 하나이며 과거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파트이며 탈 시간적 공간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30년 전의 망령이 떠돌고 있으며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공유한 체 살아가고 있지요. 이러한 공간에 용현이라는 과거의 뿌리가 찾아 들어오면서 영화는 절망을 향해 치달아 갑니다.

한국사의 한 단면으로 느껴질 만큼 역겨움과 두려움, 그리고 절망적인 인간들을 배치한 이곳에서 살인은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혼돈은 단지 간헐적인 정전으로 표현됩니다.

이 재개발 직전의 아파트는 한국의 근대사를 표현하는 하나의 상징으로써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인간 군상들을 감싸고 있지요. 이제는 죽어버린 소설가 지망생의 글을 훔쳐 자신의 출세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전직 출판사 사장이나 30년 전의 사진으로 도배해놓고 아무런 욕망도 없이 다 허물어져 가는 아파트에 세를 놓으며 살아가는 이발소 주인과 화면상에 거의 들어 나지 않는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젊은 여성들, 모두 과거의 무엇인가에 매인 채 그저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표현 됩니다. 이는 선영 또한 마찬가지 이지만 오직 용현만이 다르게 표현됩니다. 그는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으로써의 살인을 벌이지 않을 뿐더러 오직 자신이 이해하는 범위를 침범하는 자들에 대해서만 응징을 내립니다. 자신의 최초 살인을 증거 하는 부분에서도 극명하게 들어 나는 부분이지요. 그런 용현은 이제 막 현대성으로 들어간 선영을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이게 됩니다. 또한 그것은 이 탈공간적 위치가 어떻게 30년 전의 망령에 '점령 당하는가'와도 부합되는 부분이지요.

▲영화 소름중 한장면     ©씨네서울
60년대 후반까지 문화적 성장을 꾸준하게 이룩하던 한국은 70년대 유신헌법과 긴급조치의 발효로 급속히 죽어가기 시작하고, 모든 것의 중심은 단지 경제적 지표로만 나열되어 갑니다. 그래서 이땅의 다양한 삶과 질은 어느 순간 몰가치한 것으로 폄하 당해 버리고 단지 경제대국의 위상건설이라는 경제제일 주의로의 국가로써 탈바꿈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들은 현대까지 꾸준히 유지되며 모든 사람들의 의식 속에 침투하고 있지요.

이러한 70년대의 상징적인 인물은 그의 가치를 부정하려는 자들을 죽음으로써 응징하게 되며 자기 안에 가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선영을 그가 즐겨 찾는 장소로 이끌고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바로 근대의 역사가 현대의 역사를 자신의 목적에 따라 관계를 맺는 역사적 근친상간 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용현의 노력은 당연하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선영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실체를 목격하게 됩니다.

배다른 남매, 과거 군사정권의 어두운 망령과 현재 민주정권의 아직은 어린 꼬마아이로써 아직까지는 과거 망령의 영향력 하에 놓여진 두 개의 이질적이면서도 끌릴 수 밖에 없는 지독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제 자신의 실체를 눈치챈 용현은 자신과 같은 과거의 인물인 출판사 사장에게 두려움과 역겨움을 동시에 느끼며 폭력을 가하게 되고, 이제는 탈공간의 위치에서 벗어나 70년대의 위치로 거듭난 아파트를 빠져 나옵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용현은 아파트 내부의 무엇인가를 봅니다. 비록 영화상에는 들어 나지 않지만 그건 용현 바로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그곳에 끝끝내 뿌리내린 자신의 망령을 말입니다.

얼마 전 개봉한 ‘4인용 식탁’과 이 영화는 거의 쌍둥이와도 같은 영화입니다. 사실 영화의 시나리오가 나온 시점을 본다면 오히려 4인용 식탁이 이 영화 보다 2년을 먼저 나왔지요. 하지만 영화가 가지는 정서는 거의 비슷하며 이 둘이 가지는 차이점이라면 4인용 식탁은 슬픔에 관한 영화이며 소름은 절망에 관한 영화라는 것입니다. 4인용 식탁은 중산층이라는 유령에 홀린 사람들의 고통을 담아내고 있지만, 소름은 30년 전의 기억에 지배당하는 사람들의 절망을 그리고 있는 영화입니다.

둘 다 70년대의 고통을 소유하면서 말이죠. 때문에 아직까지도 70년대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소름’은 정말이지 소름 끼치는 영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3/10/25 [19:5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