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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고영재PD의 선택과 '디 워'의 심형래
[하재근 칼럼] 고PD "공익위해 수익금 독립영화 기부"..'대박' 심형래는?
 
하재근   기사입력  2009/03/06 [09:30]
얼마 전에 <워낭소리>를 제작한 고영재 프로듀서가 영화의 수익금 30%를 독립영화 발전에 쓰겠다고 했다. 관객 100만 명 기준으로 추산했을 때 약 9억 원 정도의 금액이라고 한다. 9억 원이면 가난한 제작자 입장에선 엄청난 거액이다.

그는 “독립영화가 좋아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감독, 정책활동가, 각종 영화제의 상근 실무자들 그리고 각종 협회의 상근자들이 좋은 여건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이다”라고 했다.

국가가 국가재정으로 해야 할 일을 사비로 하려는 것이다. 이런 분야에 투자하는 것은 직접적 이익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본인에겐 손해이나, 장기적으로 독립영화 활성화라는 국익이 발생해 국민에게 보탬이 된다. 국민을 위해 이런 손해를 감수할 개인은 별로 없으므로, 대체로 이런 일은 국가의 몫이다.

하지만 <워낭소리>의 고영재 프로듀서는 공익을 위해 사익의 축소를 감수했다. 이런 것을 일러 ‘시민의 공공적 책무’를 다한다고 표현한다. 기득권층이나 사회지도층 혹은 정치인, 즉 ‘공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우리 사회는 연예인더러 공인이라며 사생활 캐는 용도로 쓰고 있다. 이런 차에 고영재 프로듀서가 공인의 행위가 어때야 함을 보여줬다.

물론 고영재 프로듀서는 공인이 아니다. 공인이 아닌데도 공공적 책무를 감당하는 것이다. 진짜 공인들이 부끄러워 할 일이다. 
 
▲     © <워낭소리>, <디워> 공식홈페이지

- 심형래도 공인은 아니지만 -

고영재 프로듀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영화가 잘 되는 것은 관객이 제작진에게 준 선물이고 그 선물은 반드시 사회에 돌려줘야 하는 것이 독립영화의 자세다'라는 것이 제가 일관되게 가져온 철학”

흥행은 관객이 제작진에게 준 선물이므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극단적인 부의 집중, 양극화-민생파탄이 진행되는 한국의 사업가들이 귀담아 들어야 한다. 난 이 기사를 읽었을 때 심형래 감독 생각이 났다.

심 감독도 공인은 아니다. 그가 영화 수익금으로 사회에 이바지해야 할 의무는 전혀 없다. 하지만 <디워>의 흥행은 <워낭소리>보다 훨씬 더 사회에 빚진 것이다. 그러므로 심 감독은 한국사회로부터 엄청난 선물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디워 100분토론’에서 진중권 씨는 <디워>가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거기에 아무런 반박을 못했다. 그저 <디워>가 한국영화이나 잘 봐주자고만 하며, 냉정한 평가를 보류하자고 했다.

이것은 수많은 ‘디빠’들을 격분케 했다. ‘디까’들은 그것을 애국주의라며 비난했다. 하지만 <디워>가 형편없는 작품이라는 평가는 분명히 맞는 것이었고, 그 영화를 우리가 봐줘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국산품’이라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없는 게 분명한 사실이었다. 또, 그런 영화를 지켜주기 위해선 당연히 ‘평가’를 보류해야 했다.

만약 한국인이 <디워>를 냉정하게 평가했다고 치자. 그랬다면 <디워>의 흥행이 가능했을까? <디워>의 작품성을 상찬하며 <디워> 흥행이 절대로 애국주의가 아니라고 했던 ‘디빠’들은 손을 가슴에 얹고 생각해볼 일이다. 과연 <디워>가 중국이나 일본이나 헐리우드 영화였다고 해도 자신이 극장에 가서 그 영화를 보고, 또 주위 사람들에게 권했을까?

내가 극장에서 <디워>를 본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국산품이었기 때문이고, 본 다음에 다른 사람들에게 권한 이유는 단 하나, 영구아트무비가 망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인위적으로 도와주지 않으면 망할 것 같았으니까.

이렇게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영구아트무비를 도와준 관객들은 별로 없었겠지만, <디워>의 흥행엔 분명히 ‘국민적 성원’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워낭소리>가 받은 선물, 그 이상의 거국적 성원을 <디워>는 받았던 것이다.

- <디워>는 국민에게 빚을 지고 있다 -

이것은 <디워>가 <워낭소리>보다 더한 빚을 국민에게 지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 빚을 갚는 방법이 꼭 수익금 배분일 필요는 없다. 더 많은 투자를 해서 우리 기술로 더 놀라운 혁신을 이루어내면 그 자체로 국익이 된다. 그렇게 따지면 <워낭소리>도 수익금을 내놓을 필요까지는 없다. 더 좋은 독립영화로 국민에게 보답하면 된다.

하지만 <워낭소리>는 수익금의 일부를 국민을 위해 내놓는 길을 선택했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내고 있다. <디워>도 혹시 수익이 났다면, 수출흥행실적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수익의 일부를 한국 영화기술 발달을 위해 공유하면 어떨까?

국민적 성원으로 성장해서 수출매출실적만 강조하는 것은 한국의 재벌들이다. 그들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영구아트무비에 대한 국민적 성원을 고깝게 여겼던 진보파들에겐 이런 한국현대사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깔려있다. 한국에서 국민은 국익이라는 미명 하에 주기만 하고 받아본 적이 없는 불쌍한 존재다.

그런 나라이므로 더더욱이나 자기가 잘해서 얻은 흥행결과를 ‘관객의 선물’이라며 내놓는 고영재 프로듀서의 선택이 빛나는 것이다. IMF 금모으기 수준의 국민적 성원을 받은 심형래 감독이야말로 국민을 향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영구아트무비의 재정상황을 알 순 없지만, 만약 <디워>에서 이익이 났다면 적어도 10% 정도는 국가를 위해 쓸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영구아트무비>는 국민기업으로 거듭나고, 지속적인 국민성원이라는 항구적 이익을 획득할 것이다.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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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3/06 [09:3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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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니까 2009/03/07 [18:55] 수정 | 삭제
  • 어차피 시작한 정치질, 될성싶은 정치인이려면 떡잎을 제대로 키워야죠. 어쨌거나 주변에서 님처럼 안타까워 해 주는 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재근 저 친구는 행운입니다.
  • 수로부인 2009/03/07 [11:01] 수정 | 삭제
  • 항상 재근씨 칼럼에 댓글이 많이 달리는 것 같네요. 그런데 저는 하재근씨가 이런 댓글을 보시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분명히 새겨들을 이야기가 있을텐데... 변함없는 걸 보면 안보시는 것 같아 아쉽네요.
  • 그러니까 2009/03/06 [22:40] 수정 | 삭제
  • 본인은 '노빠'였다가 '노까'가 되고 '디빠'가 되더니 이젠 '디까'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지.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 그렇지만 어느 날 좌파적 진보 옷을 입더니 또 어느날엔 민족주의자 옷을 걸치고 나오고, 어느 글은 대중을 '빠'에서 탈출시키겠다는 의지로 계몽하듯 대중을 대하고 어떨 때는 '빠'를 옹호하듯 대중문화의 전도사가 되고, 그러한 '입장변화'에 설득력 있는 해명도 분명한 반성도 없이 그저 이리 저리 글로 매무시를 뽐내려 한단 말이야. 그런데 프로의 눈엔 다 보여요. 본인만 시선을 못 느끼는 거야. 왜냐고? 영글은 신념에 의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건너는 멋과 폼으로 쓰기 때문이야.

    자신이 바로 그러한 '빠'일 때 대중을 미욱한 '숭배빠돌이'로 양산하는데 앞장섰고 최소한으로라도 그 결과에 기여하였으면서도 '자기반성'은 없다는 것이야. 그러고는 그것도 길지 않은 시간에 정체가 다르게 바뀌어 글질 한다는 것이야.

    이 글에서도 '디워'에 대한 '입장' 혹은 '입장의 변화'에 대한 본인의 철학을 분명이 하지 못하고 있어. 초보들은 이런 글이 두리 뭉실이라 못 느끼겠지만 말야. 다시 말해 지금 다시 언급하면서 '디워'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유보해야 하는 것이 지금도 맞다는 것인지. 아니면 냉정한 평가를 했어야 하는데 본인이 오류였다는 것인지. 영화(예술) 평가에 진보적 접근에서도 '국산품'이라는 애국주의적 가치척도를 소지해야 한다는 것인지. 그 애국주의 앞에서 뜬금없는 '사회환원'이라는 진보적 가치제시가 맛있게 버물려 질 수 있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하지 않고 한마디로 당구 칠 때 대충 쳐 놓고 쫑 보는 식의 글을 쓴다니까.

    재근씨의 어떤 특성이자 일종의 정치적 정체성이야. 젊은 친구인데 그 점이 참 맘에 안들어. 가슴으로 살아 갈 사람이 아니라 말로 살아가는 많은 정치인의 전형이 느껴진다는 말이야. 심형래 감독 탓할 거 없어요. 본인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