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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삼국지가 내게 불편한 이유
황석영과 창작과비평사, 삼국지 천하에 뛰어들다
 
정문순   기사입력  2003/09/15 [09:28]

▲삼국지, 황석영 저     ©창작과비평사
중국의 4대 기서 중 하나라 불리는 것 중 삼국지(연의)만큼 한국의 독서 시장을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독자들을 사로잡아온 것도 없다. 코흘리개들은 그 이름을 딴 게임에 열광하고 청소년들은 입시에 도움이 된다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지며 장년층 이상은 처세의 비결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여 책장을 넘긴다. 출판계 쪽을 보자면 민음사와 이문열이 지난 십 수년 동안 평정하다시피한 삼국지 시장에 허다한 작가와 출판사들이 올망졸망 가세하고 있는 형세다. 그런데 창작과비평사와 황석영이 여기에 뛰어들어 삼국지 천하에 변동이 일어날 조짐이라고 한다. 물량공세도 만만찮다. 6월 중순 출간 이후 금세 40만부를 돌파한 기념으로 대대적인 경품 행사도 진행 중이다. 작가가 상종을 하지 않을 줄 알았던 조선일보에도 창검이 현란한 전면광고가 떴다.

[관련기사] 취재부, 창작과비평, 조선일보 광고는 배신이야!, 대자보(2003. 9. 10)

돌이켜보면 그동안 삼국지 번역에 이름을 얹어온 장안의 내로라하는 역대 문사들 중 삼국지 장사의 시장성에 현혹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암울한 식민지 말기, 붓을 던질 수는 없어 회고 취미로 도피했던 박태원의 경우가 다소 예외라면 박종화나 정비석, 그리고 자신의 파시즘 논리를 작품에다 꿰맞춘 이문열 등은 하나같이 고전의 성가에 자신의 이름을 보태어 흥행을 도모했던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황석영은 어떠할까? 수감의 고통을 잊기 위해 집필을 시작했다는 그에게도 삼국지 장사에 열을 올리고자 한 욕망이 있었는가?

▲9월 6일자 창작과 비평사의 조선일보 전면광고     ©조선일보 PDF

단적으로 말해 황석영과 삼국지의 결합은 그리 어울리는 이름이 아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오래 전에 일본 작가가 손댄 삼국지 관련 도서에 그가 번역에 손댄 적이 있기는 하다.) 대하소설 '장길산'의 무협지적 성격과 대중성을 염두에 둔다면 작가의 이름이 삼국지와 어울리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나마 '장길산'이 일개 통속물의 범주로만 폄하되지 않는 것은 작품의 저류에 흐르고 있는 민중성의 구현이라는 작가 의식 때문이다. 그렇다면 황석영이 삼국지에서 발견한 것은 대중성과 통속성을 넘는 고전다운 심오함이었는가?

아무리 세월의 무상함을 희롱하는 희대의 고전이라고 해도 고전은 엄연히 그것이 생산된 당대의 산물이며, 오늘날 수용되는 방식이 옛날과 꼭 같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삼국지를 들추어보면 도무지 마뜩치 않은 장면들, 이를테면 오직 기발한 꾀 하나로 수 천 여명에 불과한 병력으로도 몇 십 만명의 군사를 물리친다든지, 세 치 혀를 놀려 한 나라의 진로를 뒤바꾸게 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수시로 등장한다. 어려운 상황을 지혜와 기개로써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교훈으로 삼을 만하기는 하다. 그러나 한 줌의 역량으로 태산의 기세를 물리치거나 단기필마로 사지를 헤쳐나가는 것이 가능할 만큼 세상이 호락호락하지는 않다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삼국지 처세술이라는 이름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갖가지 계교를 대인 관계에 활용할 것을 권고하는 책이 쏟아져 나오는 데서 뒷받침되듯이, 삼국지에 허다하게 보이는 기상천외한 계책들이 행여 독자로 하여금 객관적 조건이나 개인의 노력은 무시하고 기지만 잘 쓰면 남을 이기고 성공할 수 있다는 식의 얄팍한 사고를 은연 중에 주입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렇다고 하여 삼국지가 한창 서민층에서 열독되던 그 옛날에도 사람에게 약은 꾀를 가르치는 책이라고 경계했던 '고매한' 선비들의 의도에 그대로 동조할 생각은 없다. 삼국지에서 합리주의 정신의 결여처럼 보이는 기발한 계책이나 귀신담의 등장은, 달리 생각하면 유교적 합리성이라는 이름의 경직성을 초월한 낭만성의 발로로서 당대 민중에게는 견고한 신분제 사회의 숨통이 트여지는 것 같은 해방감의 일종을 맛보게 해준 독서 경험으로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야기책이 민중에게 문자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등 소설의 등장이 곧 민중적 역량의 성장과 일치했던, 삼국지를 비롯한 대중소설이 태생하고 널리 읽혀지던 근대를 앞둔 당시와 지금은 삼국지가 수용되는 방식 나아가 삼국지 자체의 의미가 같을 수 없다. 

본디 우리 독서시장에서 그 동안 널리 읽혀지던 삼국지는 일본 작가의 손에 번역된 것을 다시 들여온 것이 태반이었다. 그것은 사람을 관리 자원으로 보는 일본 특유의 조직문화가 반영된 일본판 삼국지가 우리에게도 거부감 없이 수용된 것과 관련지어 풀이할 수 있다. 곧 오늘의 한국 독자들, 특히 장년 이후의 남성들에게 삼국지의 존재는, 살벌하기 이를 데 없는 정글자본주의에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의 교과서라는 용도와 무관할 수 없는 것이다.

삼국지 출간과 관련하여 황석영의 변을 들어보면 그는 이문열의 것을 의식하고 있음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그는 이씨와 달리 민중이 대의명분에 충실한 유비 집단을 옹호한 것에 초점을 두었으며 원본에 충실하게 번역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세상을 뒤집어엎고자 했던 의적 '장길산'의 작가가 민중성을 그렇게 관변적으로 해석하는 데 가슴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알다시피 삼국지 서사를 일관하는 기본 줄기는 유씨 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유비 집단에게 한(漢)을 잇는 정통성과 천하를 통일할 대의가 부과된 것이며, 그것이 곧 민중성에 관한 한 작품의 치명적인 결함임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본디 촉한에 정통을 부여한 당대 보수적인 역사관의 반영이라는 색채에서 탈피하지 못했으며, 한(漢)의 폭정에 시달리던 민중이 유씨를 지지할 이유가 있을 리 없다는 인식과는 무관하기만 한 작품이다. 차라리 '장길산'의 작가라면, 갑자년에 창천(蒼天)을 뒤엎고자 했던, 한 제국을 뿌리부터 흔듦으로써 군웅이 할거하는 기반을 마련해준 셈이 되었으나 소설에서 일개 도적떼로만 묘사된 태평도(황건적)의 봉기 같은 것에 관심을 두지 못할 것도 없다.

전란으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민초들이나, 군웅들의 싸움에 애꿎은 희생만 당한 군졸들도 아무렇게나 다루어져도 좋은 것은 아닐 터. 전장에 동원된 군사들의 애환만큼은 판소리 '적벽가'에서 여실히 맛볼 수 있는 바, 그렇게만 따지자면 21세기 한국의 작가들의 삼국지 수용 방식은 수백 년 전보다 퇴보한 것일까.

지금은 사랑방에서 낭독 솜씨 좋은 사람이 필사본 삼국지를 읽어주면 주위의 사람들이 때로는 환호하고 탄식하며 함께 어우러지면서 독서인구의 확대를 통해 민중문화의 저변을 확장해가던 시대가 아니다. 만약 이 시대에 삼국지의 민중성에 주목한다면 원전 그대로의 번역이 아니라 새로운 개작이나 창작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사실 황석영이 누누이 강조하는 원전에 충실한 번역이라는 것은 '평역'이라는 이름의 이모씨 것을 제외하고 삼국지 번역에 손을 댄 대개의 작가와 출판사들이 강조해오던 것일 뿐이다. 어차피 모든 작가에게야 자신의 작품만이 원본이자 유일본이지 않은가. 모르긴 해도 시간이 좀 지나면 원본 그대로의 번역은 작가적 상상력이 제약을 받는다며 또 다른 번역본들이 삼국지 시장에 출몰할 것이다.

일괄하자면 황석영 번역판 삼국지는 진보와 민중성을 시장 경쟁력의 수단으로 동원한 출판사와 작가의 야심적인 문화상품에 속한다. 작품이 되기보다 상품으로 소비되는 데 안주해버린 소설이라면 어설픈 민중성을 흉보게 하는 데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대충 훑어본 나로서는 기왕의 삼국지 번역본들과 두드러지게 구별되는 개성을 느낄 수는 없었다. 기존의 것에서 보이는 오류들이 많이 수정되었다지만 내 수준의 삼국지 지식으로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은 오류들이 여럿 손에 잡혔다. 어쨌든 이들과 도저히 이념적으로 어울릴 법하지 않은 조선일보가 요란한 광고로써 원군으로 나서준 데는 적어도 상업성에서만큼은 서로 손발이 잘 맞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의 어지간한 계교를 능가하는 진보상업주의의 절묘함이라고 할까. 이 시대의 독자들은 거대 출판사와 공룡 언론의 위세를 업지 않고 오직 작가의 손끝에서만 탄생된 작품을 맛볼 기회를 누릴 수는 없는 것인지 씁쓸하다. 사족으로 한마디만 보태자면, 이번에 황석영과 인터뷰한 언론사에 분명히 조선일보도 끼어 있었다. 동인문학상을 거부한 작가라면 그 동안 조선일보를 대하는 심경에 어떤 변화가 일었음은 분명한데 독자에게 최소한의 해명은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작가가 삼국지에서 배웠다는 옛 사람의 대의명분에 부합되는 것이 아닌지. /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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