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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피의 일요일'을 책임질 것인가?
[시론] 야만의 밤 책임져야 할 자들은 MB, 조중동, 검찰, 경찰과 전의경
 
이태경   기사입력  2008/06/30 [23:16]
28일 밤부터 29일 새벽에 걸쳐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폭력은 국민들의 마음속에 아물지 않는 생채기를 남겼다. 피와 통곡과 비명으로 가득했던 밤을 책임질 자들은 대체 누구일까? 누가 감히 주권자인 국민을 능욕하고 짓밟았는가? 지금부터 '피의 일요일'에 대해 책임이 있는 자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MB
 
이번 사태의 최종적이고도 가장 무거운 책임은 당연히 MB의 몫이다. 그는 협상의 기본원칙을 모두 어긴채 미국산 쇠고기수입에 관한 미국측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는 어리석음을 범해 이른바 광우병 정국의 문을 열었다. 사정을 더욱 악화시킨 건 협상 이후 그가 보인 처신이다. 그는 재협상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최초 협상 결과와 본질상 전혀 다를 바 없는 추가협상 결과와 청와대 수석들의 인사를 통해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아울러 지지율이 반등하는 기미를 보이자 표변해 국가정체성 운운 하며 촛불집회에 강경하게 대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든 국가권력이 '촛불'을 압살하기 위해 떨쳐나섰다. '피의 일요일'은 그가 촛불집회를 힘으로 누르겠다고 결심한 때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MB는 여전히 청와대에 칩거한 채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유리돼 있다. 국민들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다름아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존중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그리도 힘든일일까?  
 
조중동
 
MB가 이번 사태의 최대 정치적 책임자라면 조중동은 사실상 이번 사태를 배후에서 조종한 세력이라 할 수 있다. 참여정부 때와는 180도 달라진 논조로 MB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폭 지지했던 조중동은 자신들의 뜻대로 국민들이 움직이지 않는데다 네티즌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소비자운동을 펼치자 당황해 우왕좌왕을 거듭하다 마침내 중심(?)을 잡고 촛불집회 진압의 총사령부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반미친북으로 모는 건 기본이고 폭도로도 둔갑시킨다. 80년 5월에 보여주었던 솜씨가 거의 30년이 다된 지금도 전혀 녹슬지 않은 것이다. 그뿐 아니다. 정부를 대신해 검경에 강경대응을 지시하는가 하면 한나라당과 청와대를 꾸짖기도 한다.  
 
결국 조중동의 뜻대로 일이 됐다. 국가권력이 국민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으니 말이다. 우리는 지금 민주화 20년 만에 언론권력이 국가권력의 위에 서서 컨트롤 타워역할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검찰
 
참여정부 초기에 검찰권 독립(?)을 위해 위태롭다 싶을 만큼 대통령과 맞서던 검찰의 기개는 사라진지 오래다. 요즈음 검찰은 심지어 청와대가 의뢰한 '청부수사'를 한다는 조롱을 받는 지경이다. 네티즌들이 벌이는 정당한 소비자주권운동에 대해 수사를 한다고 하지 않나, PD수첩에 대해 5명의 검사를 투입해 수사를 한다고 하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검찰이 검찰권의 독립을 진정으로 수호할 의지가 있었다면 사실상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는 김경한 법무부장관이 내리는 부당한 수사지시들을 거부하는 것이 옳았다. 또한 검찰이 자신들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려 했다면 촛불집회에 대해 강경일변도의 진압을 고수하는 경찰을 적절히 제어하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대한민국 검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주권자인 국민들은 최근에 보인 검찰의 행보를 보면서 검찰이 입만 열면 외치는 검찰권 독립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되었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임채진 검찰총장은 촛불집회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검찰은 대한민국 국민들보다 MB가 더 두렵나 보다. 주권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검찰을 국민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지켜볼 일이다.
 
경찰수뇌부와 현장 지휘관들

 
'피의 일요일'을 현장에서 충실히 연출한 것은 어청수 경찰청장 이하 경찰 수뇌부와 현장 지휘관들이었다. 어 청장은 타임머신을 타고 5공화국에서 온 사람같다. 신기하게도 어 청장의 눈에는 국민들은 보이지 않고 폭도들만 보이는 모양이다. 어 처장 휘하에 있는 현장 지휘관들도 청장의 뜻을 좇아 촛불을 끄는데 골몰하고 있다.
 
이상한 것은 국민을 폭도로 아는 경찰이 인권 운운하며 수사권 독립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경찰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나 하는 걸까?
 
일부 전의경
 
일찍이 테오도로 아도르노는 나치에 가담해 학살자집단으로 활약한 인간형을 '권위주의적 성격'(authoritarian personality)을 가진 사람들로 규정한 바 있다. 즉 잠재적으로 파시스트적인 성향의 개인들이 있는데 이들이 객관적 조건이 형성되자 나치의 전위대가 되어 살육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물론 아도르노의 이같은 지적은 구조를 등한시하고 개인이 지닌 퍼스낼리티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장했다고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등으로부터 비판받은 바 있다.
 
그러나 지난 28일 밤부터 29일 새벽까지 세종로에서 일부 전의경들이 보인 행태를 보면 아도르노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스팔트 바닥에 나뒹구는 젊은 여성을 둘러싸고 경찰봉을 내리치고 전투화로 짓밟는 전의경들, 비폭력을 외치며 바닥에 드러누운 시민운동가들을 유유히 밟고 가는가 하면 곤봉과 방패로 내리찍는 전의경들, 가만히 서 있는 의료봉사단원의 얼굴을 향해 방패를 날리는 전의경, 비무장의 시민들을 향해 쇠파이프와 깨진 보도블럭을 던지는 전의경들의 심성에는 도대체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피곤하고 지치고 잠을 못잤다는 것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이들은 자신들이 한 행동이 크나큰 범죄라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아니 양심에 가책을 느낄 줄이나 알까?
 
어쨌든 좋다. 광기어린 폭력을 행사한 전의경들의 행동은 모든 국민들의 마음속에 또렷이 새겨져 언제까지나 기억될 것이다. 폭력을 행사한 자들이 제대를 한 후 어디서 무엇을 하건 그들의 이마에 새겨진 주홍글씨는 결코 지워지지 않고 그들의 삶을 옥죌 것이다.
 
결국 비폭력이 폭력을 이긴다
 
위에서 '피의 일요일'에 대해 책임이 있는 자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폭력은 언뜻 무서워보이고 강해보이지만 종국에는 비폭력 앞에 무릎을 꿇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이 이를 증명한다. 국가권력이 국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여 사용하는 폭력은 국가권력의 취약성과 정당성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다.
 
국가권력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할 때까지 촛불은 타올라야 한다. 단 그 촛불은 비폭력을 전제로 할 때 한층 의미가 있을 것이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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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6/30 [23:1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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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웃기고 2008/07/01 [22:13] 수정 | 삭제
  • 강기갑 의원이 '미국 가서 대통령 하라'고 했는데 이는 너무 이엠비의 능력을 과장한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이엠비를 개 취급하지 사람 취급하겠나. 강의원은 개도 사람으로 보이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