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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과의 연대, 국민 생존 담보하는 길
[정문순 칼럼] 美쇠고기, 국민 건강권 뿐 아니라 농민 생존권 걸려있어
 
정문순   기사입력  2008/05/15 [15:04]
“농민들은 왜 그렇게 떼쓰는 데만 길들여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개인 블로그에서 농민의 시위를 비난하는 글을 보았을 때 철없는 일부 도시민 생각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일부가 아니었나 보다. 월간잡지 ‘말’(2007.8)에는 2005년 쌀 협상 당시 국정조사에 참여한 송기호 변호사가, 도시민들 상당수가 쌀 시장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농민들의 목소리에 대해 “절망에 빠진 집단의 시대착오적인 주장”이라고 반응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는 기사가 나온다.
 
세계화 시대로 진입한 1990년대 초 우루과이라운드협정 당시만 해도 농업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 도시민들의 일반적 정서였다. 수천 년 이어져온 밥상의 주인인 쌀을 수입해 먹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던 때였다. 지금의 문화부장관 유모 씨가 출연하던 농촌드라마에서는 특집방송이 편성되어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는 연기자들이 농촌이 죽으면 모두 다 죽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끝내 농촌을 죽인 대가로 세계화를 추진해온 나라에 사는 지금의 도시민들에게 농민의 목소리는 고작 더 높은 세계화의 걸림돌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금언인 경쟁과 효율이 뼛속 깊이 내면화되어버린 도시인들이, 시장 논리로 재단할 수 없는 농업의 성격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가격 경쟁력이 없는 국내 농업은 시장에서 퇴출되어도 괜찮고 싼 값에 수입 농산물을 사먹으면 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도시민의 생각대로, 농민이 돈이 되지 않는 농업을 포기해야 시대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값싼 외국산 농산물이 국내 시장을 점령한 뒤에 일어나는 일도 시대정신과 맞아 떨어지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1950년대 이후 미국의 원조와 저가 공세에 밀려 밀과 옥수수 농사가 돌이킬 수 없이 파탄 나버린 역사가 있다.
 
사람들은 실험용 쥐도 안 먹더라는 살충제 범벅인 수입 밀가루 제품을 선택의 여지도 없이 구입해야 하고, 세계 곡물 가격이 치솟자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사먹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참깨 수입이 금지되던 시절 밀수 사건 중 1위를 차지하던 중국산 참깨는 국내 참기름 시장을 완전히 손에 넣었고, 국산 참깨는 농약을 쳐서 재배한 것이라도 유기농 매장에서야 볼 수 있을 정도로 귀하신 몸이 되었다. 
 
▲한미FTA에 따른 쌀시장 개방과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으로 우리 농가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 대자보

도시민의 기대와 달리 농사가 망하는 것은 농민이 망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피해는, 쌀 시장의 전면 개방에 맞서 쌀 나락을 불태우다 끝내 자신의 몸을 불태우기까지 하고 평생을 논밭에서 보낸 농민이 아스팔트에서 시위하다 전경에게 맞아 죽는 비극을 보고도 농민들더러 땡깡 부린다고 비웃는 도시민들에게 고스란히 건너 올 수밖에 없다. 광우병과 관련한 미국 소 수입 파동에서도 이와 같은 점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값싼 수입 농축산물과 자신의 건강을 맞바꾸는 일에는 둔감하다. 맹독성 농약으로 재배한 중국산 채소를 먹어도 당장 발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명에 관한 문제라면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맛이 없어 죽겠는 학교급식이 죽음의 밥상으로 변한다는 생각에 10대가 일어섰다. 일부 학자들은 촛불 집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어린 세대에게 정치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만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사람은 능력과 필요가 맞아 떨어지면 일을 저지르게 돼 있다. 아마도 탁월한 인터넷 활용 능력과, 목숨이 오가는 일이라는 절박한 의제가 10대를 움직인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치에 무심하고 공무원 시험으로 청춘을 보내는 20대와, 자기 앞가림에 급급하고 순응적 사고에 길들여진 기성세대에 의지할 수 없음을 안다. 인터넷에 올려진 수많은 광우병 정보는 그들의 손을 거친 게 많을 것이다. 오히려 종이신문이 인터넷에 퍼진 정보를 부랴부랴 수집하여 기사로 내는 처지이며, 나도 광우병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를 인터넷에서 어린 세대가 흥분과 열정으로 올렸을 내용에서 얻고 있다.
 
농촌-도시의 생태적 순환을 이해하지 못하는, 쌀 농사가 사라지고 외양간의 소 울음소리가 끊기면 도시에 사는 자신의 목숨조차 위협 받을 수도 있음에 무지한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를 선택했으며, 어린 세대가 이들의 착오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다.
 
도시민들이 농민의 생존권을 진작에 밥상의 생명권으로 받아들였다면 어린 세대가 촛불을 드는 일까지는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국민의 건강권, 검역 주권의 외침이 타오르는 촛불 현장에 농민과의 연대 목소리가 보태어지기를 바란다. 노무현 정부 방침대로 미국산 쇠고기 월령을 30개월 아래로 낮추는 것만으로는 풀릴 일이 아니다. 이웃의 생존권에 대한 지지가 곧 내 생존을 담보하는 길이 되는 것, 어디에나 통하는 진리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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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5/15 [15:0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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