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먼저 진보진영이 아니라 보수진영이 정의하는 포퓰리즘의 개념에 대한 설명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 후보로 거론되었던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지난해 10월18일, 선진화국민회의 정책대회 발제문에서 포퓰리즘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합니다.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 populism)이란 단기적 정파이익을 위하여 장기적 국가이익을 버리고 국민의 일시적 정서에 영합하고 인기를 조작하고 선동하는 정책과 정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포퓰리즘적 정책과 정치는 당연 전문가나 학자의 객관적 합리적 의견보다는 다중(多衆)의 감성적 의견이나 비전문가들의 속론(俗論)에 기초하여 정책과 정치를 구상하고 추진한다. 그러니 그 정책과 정치가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포퓰리즘이 성하면 시장경제도 자유민주주의도 모두 실패하고 결국은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서 주저앉게 된다. 많은 중진국이 선진국진입에 실패한 이유가 바로 이 포퓰리즘의 발효에 있었다.”-박세일,“선진화를 막는 5적(反선진화 5적)과 선진화를 위한 10대 국가과제”.선진화국민회의 정책대회 제안서,2007/10/18 저는 이 정의에 대하여 특별하게 트집 잡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원래 ‘포퓰리즘’이란 대중들의 합성의 오류에 편승하는 정치적 행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합성의 오류’란 개개인의 사익의 총합이 공익의 확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사익의 총합보다 더 큰 공익을 훼손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부동산 투기’가 있을 것입니다.
포퓰리스트들은 합성의 오류에 빠진 대중들의 오류를 교정하며 보다 큰 공익과 공공선을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대중들의 합성의 오류에 편승하여 공익과 공공선을 훼손하고 사익만을 챙기는 정치적 행태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박세일씨가 오매불망 추종하는 이명박 당선인은 포퓰리즘과 거리가 먼 인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하겠다고 하는 것이 그의 가장 대표적인 포퓰리즘적 행태일 것입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은 운하 주변 지역의 부동산 투기만 유발할 뿐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정도는 극히 미미하고 국가재정 낭비만 엄청나게 유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실증자료를 토대로 계산한 바에 의하면 경부운하 건설사업은 경제성장에 5년간 매년 고작 0.02%p 기여하는 대신, 사업 준공 후 매년 사업적자 보전비용으로 1조 원씩 혈세를 낭비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명박 정부의 주요정책 중에서 한반도 대운하건설 추진정책에 버금가게 고약한 포퓰리즘 정책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혼부부 내집마련 지원정책’입니다.
모든 포퓰리즘 정책이 다 그렇듯이 이 정책도 그럴 듯한 외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저출산 시대를 극복하기 위하여 신혼부부에게 안정적인 주거지를 마련해 준다는 것이 이 정책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역시 모든 정책이 다 그렇듯 이 정책 또한 각론에 악마적 요소를 담뿍 안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명박 당선인의 공식 홈페이지(
www.mbplaza.net)에 올라가 있는 대선공약 보도자료에 의하면 이들이 지원하고자 하는 지원대상 신혼부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명박 진영이 말하는 지원대상 신혼부부 추정과정>
*신혼부부 세대 총수------------30.2만 세대(100.0%)
*34세 미만 주출산연령(여성)세대---24.8만 세대(82.1%)
*무주택 세대------------------16.9만 세대(68.1%)
*서울,수도권,광역시 거주 세대-----12.1만 세대(71.5%)<---지원 대상 눈치 빠른 분들은 금방 알아차리셨겠지만 이 정책의 함정은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우선 이 정책은 34세 이상 신혼부부를 지원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습니다. 헌법상 평등권 침해로 위헌 소지가 다분합니다. 차후에 이명박 정부가 이 정책이 출산장려를 위한 것이므로 지원대상을 34세 미만으로 한정하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항변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헌법재판소가 미치지 않는 이상 이런 연령 제한이 타당하다고 판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향후에 지원대상이 될 무주택세대 신혼부부 세대 수가 16.9만 세대에 그칠 것이라는 주장도 황당한 추정일 뿐입니다. 위 보도자료에 의하면 이명박 정부가 신혼부부를 위하여 현시세보다 한참 낮은 평당 분양가 786만원의 주택을 우선 공급해 준다고 하는데 미래에 결혼하게 될 예비부부들 중 둘 다 미치지 않고서야 결혼 전에 집을 살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있는 신혼부부들이라면 있던 집도 팔고 결혼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위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서울,수도권,광역시 거주하는 신혼부부 세대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주택을 지원한다고 하는데 이 또한 황당한 구상일 뿐입니다. 그들 구상대로 정책을 추진하게 되면 대도시들 이외 지역에 거주하는 예비부부들이 모두들 대도시로 들어가서 결혼을 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책은 지역균형발전에도 철저히 역행하는 정책입니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포퓰리스트들도 이 부분에는 신경이 쓰였는지 농어촌과 중소도시의 신혼부부에 대해서도 주택구입자금을 장기저리로 융자해 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보도자료 말미에 그런 꼬리 글을 달았다고 하여 이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소도시와 농어촌 예비부부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대도시로 들어가서 결혼하게 되면 당장에 분양가 786만원의 신축 고급주택을 구입할 수가 있고 거액의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중소도시와 농어촌 예비부부들은 대도시 신혼부부에 대한 차별적 지원이라는 로또를 노리고 너도나도 짐을 싸서 대도시로 진입할 것입니다.
더구나 이명박 후보 시절 공약에 의하면 신혼부부에 대한 주택전매기간도 자녀 1명 이하일 때 10년, 2명일 때 5년, 3명 이상일 때 3년 등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중소도시와 농어촌 신혼부부들이 대도시에 들어와서 결혼하여 5년 안에 자녀 2명만 낳으면 5년 안에 억대의 시세차익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에서 결혼하고 거주하면서 장기저리 융자에 만족할 신혼부부가 어디 있겠습니까.
결국 이명박 정부가 위헌 시비나 형평성 시비를 벗어나려면 매년 결혼하는 30만 세대의 신혼부부 전체에게 동일한 기준의 지원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도 중소도시와 농어촌 예비 부부의 대도시 진입 가속화 문제, 지난 몇 년 사이 이미 결혼한 신혼부부들과의 형평성 문제, 더 나아가 여러 세대와 계층의 기혼부부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등 수많은 부수적인 문제를 추가로 해결해야 하는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원래 정부의 재정지원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때는 국민들에게 형평성 있게 지원해 주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전체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형평성 없는 차별적 지원은 국가재정의 효율적 배분을 해치고 소득재분배 정책에도 역행하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신혼부부 주택지원정책’은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다 잃었으니 이런 경우를 일컬어 ‘최악’이라 할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명박 정부의 신혼부부 지원정책은 최악의 포퓰리즘 정책입니다. 정부는 서민층이든 부유층이든 국민들이 자신의 능력에 맞는 규모의 주택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부가 저리 융자니 뭐니 하면서 빚을 내서 주택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국민들이 자기 사업을 하면서 빚을 내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저리로 융자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소득 증진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주택마련에 정부가 저리융자를 한다? 그것은 정부가 나서서 투기를 부추키는 것일 뿐입니다. 정부가 내집 마련을 도와준다는 미명 하에 투기를 부추킨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국민들은 각자가 내집 마련을 능력껏 하는 것입니다.그리고 내집 마련이 매우 어려운 저소득 계층을 위해서 정부는 공영임대주택을 마련해서 도와 주면 되는 것입니다.
신혼부부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생애 첫 주택구입자란 이유만으로 정부가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지원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나라처럼 복지재정이 취약한 나라에서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형평성 모두에 역행하는 이런 포퓰리즘적 정책을 시도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서민이든 부유층이든 정부가 빚내서 집 사도록 부추켜서도 안됩니다. 그 놈의 빚 때문에 가계부채가 엄청나게 폭발하고 있는데 정부가 빚을 내서 집 사는 사람들에게 저리로 투기하도록 도와준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