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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 진실공방 외치던 언론은 어디갔나?
이명박 정권의 나팔수가 언론을 개탄한다
 
예외석   기사입력  2007/12/25 [11:48]

여우와 호랑이
 
일제강점기 시절에 문필가들이 협박에 못 이겨 쓴 글보다 자발적 협력에 의한 글들이 많았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일제에 협력했건 어쨌건 글을 쓴 행위 자체보다 자기가 쓴 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파렴치를 더 가증스러워할 따름이다. 우리는 그것을 위증 또는 위선이라고 표현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BBK의 집요한 진실공방에도 불구하고 18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필자는 그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이명박이라는 사람은 과연 후흑의 달인이구나. 정치를 하려면 저 정도의 똥배짱은 있어야 할 것이다.” 머리 벗겨진 어느 분처럼 말이다.
 
문제는 정작 언론의 태도이다. 대선 하루 전까지 BBK 진실에 대한 기사를 연일 보도하던 신문과 방송들이 돌변하여 ‘이명박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며칠간 꽃가마를 태워주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너무 지나칠 정도로 앞서나간 기사나 사설은 벌써부터 권력 앞에 줄서기 하는 듯한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보수언론들이 현 정부를 비방하거나 이명박 당선자가 후보시절에 추켜세워 주던 것은 그런 것이려니 하고 얄밉지는 않다. 가재는 게 편이기 때문이다. 눈에 영 거슬리는 것은 진보와 개혁을 표방하던 언론들의 기사 논조들이다. 이는 인터넷 언론이나 종이신문 할 것 없이 다들 마찬가지다.
 
언론사에서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문필가들이다. 문필가들이 권력의 향배와 시류에 편승하듯이 새로운 실세들이 등장할 때마다 경의를 표한다면 과연 시민들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같은 기자가 시도 때도 없이 변죽을 울린다면 결국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BBK 진실공방은 이제 흘러간 옛 노래가 되어버렸나. 그러면 그동안 사회정의니 뭐니 목청을 높였던 그 모든 일련의 몸짓들이 한낱 딴따라 악극단의 어릿광대짓이었단 말인가. 그 많던 언론사의 기자들이 결국 피리를 부는 대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던 들쥐 떼들이었단 말인가.
 
펜은 총과 칼보다 강하고 예리하다 했던가. 그 많은 펜들이 다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베어 먹거나 혹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하 케익을 자르는 플라스틱 칼로 둔갑해버린 것일까. 마치 잔칫집 떡에만 눈이 팔려 오뉴월 소부랄 늘어지듯 정론직필은 안중에도 없고 물덤벙술덤벙 엉뚱한 수작들만 해대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매서운 겨울 한파에 시민들의 궐기를 촉구하던 촛불집회마저도 할 일 없어 거리에 모인 초라한 길놀이였단 말인가. 아, 이 비정하고 서글픈 현실이여. 정녕 굿이나 보고 떡이나 한입 물고 있으란 말인가. 먹다먹다 배불러서 씹다 뱉은 떡 조각도 떡이던가. 그것 주워 먹으려고 침묵하려는가.
 
여우가 호랑이를 찾아와 제 그림자만 보면 모든 짐승이 도망간다는 얘기를 하여 백수의 왕인 호랑이에게 뒤에 따라 오면서 보게 하고 나아가니 과연 짐승들이 달아났다는 우화가 있다. 제 힘이 아닌 남의 힘을 빌려 약한 자를 농락한다는 비유다.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호랑이를 배경으로 둔 여우의 교활함이 아니라 당당한 호랑이로써 호랑이 앞에 맞서는 것이다.
 
어느 언론사의 기자분이 이렇게 된 것이 차라리 잘 됐다고 표현했다. 필자역시 그 생각에 동감한다. 이제 쭉정이는 날아가 버리고 알곡만 남게 되었다. 호랑이를 배경삼아 얄랑거리던 여우들이 본색을 드러냈으니 침묵하지 않는 진짜 호랑이들의 힘찬 소리를 한번 듣고 싶다.
 
언론이 침묵하면 백성들은 더 침묵하게 된다. 역사는 흔히 개 가죽을 쓰고 호랑이 춤을 춘다는 말이 있다. 때가 되면 개 가죽은 헌 개 가죽처럼 동댕이쳐지게 되어있다. 돌을 던지면 호랑이는 그 돌을 던진 사람에게 달려들지만 어리석은 개는 돌을 쫒아간다. 호랑이가 되던 개가 되던 그것은 이제 백성들의 몫이다. 다만 그 우민화를 깨우쳐 줄 사명은 언론에게 있으니 부디 힘찬 진군의 나팔을 계속 불러주었으면 한다.
 
저 멀리 보이는 산들은 말이 없다. 산을 오르내리며 허옇게 뿌리를 드러낸 나무들의 의연함에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산은 인간들에게 무수히 짓밟혀 가고 있지만 자연은 아무 불평 없이 우리를 받아주고 있다. 펜을 든 사람들도 저 산과 나무들처럼 초연함을 잃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 필자는 경남 진주시 거주하며 한국항공우주산업 노동자, 시인/수필가, 열린사회희망연대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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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12/25 [11: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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