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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잡는 학벌사회, 죽음으로 이끄는 대학입시
[논단] 해마다 사람 죽이는 대학서열체제, 입시 언제까지 방치할 텐가
 
하재근   기사입력  2007/11/23 [02:33]
17일 새벽에 서울지역에서 수험생이 투신한 시체로 발견됐다. 숨진 수험생은 삼수생으로 명문대 진학을 꿈꿔왔지만 수능 가채점 결과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 실망했다고 한다.
 
학벌사회가 또다시 사람을 죽였다. 사람에게 거짓말을 시키고, 한을 품게 만들고, 급기야는 목숨까지 끊게 하는 학벌사회, 입시경쟁체제를 우리가 언제까지 안고 가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명문대 학벌의 가치가 사람 목숨과 맞먹을 정도로 절대적인 가치가 돼버렸다. 학벌 간판이 사람 위에 군림하면서 그 사람의 신분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상층부를 상위 학벌이 독점하기 때문에 하위 학벌이나 학력은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상위 학벌의 지배만을 받을 뿐이다. 그것이 과도한 입시경쟁을 부르고 해마다 자살을 초래하고 있다.
 
작년 수능 땐 대구시에서 여학생이 투신자살했다. 자살한 학생은 그 전해 지방대에 입학했으나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기 위해 또 수능을 봤다고 한다. 대학 위에 대학 있고 대학 밑에 대학 있는 대학서열체제의 실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대학과 대학 사이에 사람 목숨만큼의 서열격차가 있기 때문에 상위 서열 대학에 가기 위한 경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90년대 이후 지방대가 점차 고사하고 있다. 과거엔 지방 명문대가 서울 지역 상위 대학 수준의 대접을 받았었으니 지금은 그냥 지방대일 뿐이다. 지방대 졸업생 중 60% 이상이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보도된 적도 있다. 대학서열체제가 심화되고 있다는 징후다.
 
그에 따라 명문대 프리미엄이 점점 커지고 입시 경쟁과 사교육비의 폐단도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승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지는 승자독식구조가 강해지는 것이다. 그럴수록 승자 그룹에 끼려는 경쟁은 살벌해진다. 또 그럴수록 나중에 승자가 누리는 특권도 당연해진다. 입시가 국민의 신분을 가르고, 장차의 특권과 피지배를 정당화해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입시전쟁에 패배한 학생들은 학벌세탁을 위해 편입을 노리거나, 대학원을 준비하거나, 유학을 준비하거나, 반수·재수·삼수를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결국 자살이라는 사태까지 빚어진 것이다.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피하고 싶을 정도로 우리 ‘삼류대’들의 처지는 비참하다. 이런 사태는 삼류대 학벌이 우리 사회에서 받는 차별이 만든 것이다. 10대 때의 입시성적을 기준으로 누구에겐 특권을 주고 다른 대다수는 차별하는 이런 체제가 언제까지 유지되어야 하는가.
 
2005년, 2006년에도 수험생의 투신자살 사건이 잇달아 벌어졌다. 이것이 학생 개인의 심성 문제인가? 학력위조 사건이 그 개인의 윤리성 문제가 아닌 것처럼 해마다 반복되는 입시 자살도 사회적 타살이다.
 
2006년에 아이들살리기운동본부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입시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친 적이 있다는 학생이 38.5%다.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는 학생은 32%다.
학교를 그만 두고 싶은 적이 있었던 학생은 45.6%다.
좌절감을 느끼거나 의욕상실에 빠진 적이 있다는 학생은 64.9%다.
자살 충동을 느꼈던 학생은 20.2%다.
그리고, 자살을 실제로 시도해 본 적이 있는 학생이 무려 5%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입시 경쟁의 지옥 속에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당연히 세계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세상에 살고 있다. 약 40%가 건강을 해쳐가며, 약 65%가 좌절감을 느끼며, 20%가 자살 충동을 느끼며, 그 중 5%는 실제로 자살을 기도해가며 지옥을 헤쳐 나가고 있다.
 
2005년에 중간고사 성적을 비관해 목숨을 끊은 학생은 아래와 같은 유서를 남겼다.
 
‘시험을 못 쳐서 미안하다. 엄마 아빠, 죄송해요.’
 
아이들에게는 고통만을, 일류학교에 못 들어간 절대다수 대학생들에게는 콤플렉스만을 안겨주는 입시경쟁. 이 체제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사교육비 고통과 학벌이라는 사회적 비효율뿐이다.
 
시험성적 때문에 죄인이 되고, 시험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이 기괴한 나라. 사람 위에 시험성적이 군림하는 나라에서 언제까지 우리가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대학 위에 대학 있고 대학 밑에 대학 있는 대학서열체제가 만든 것이다. 그것이 다시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는 신분제로 연결된다. 대학서열체제와 입시의 폐단. 정녕 혁파할 수 없는가.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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