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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협론'은 '중국 기회론'으로 바뀌어야
[21세기 중국과 한반도 3] '새로운 냉전'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통일 모색
 
이재봉   기사입력  2007/10/25 [15:46]
3. 중국의 대응
 
앞에서 소개한 미국의 적극적이고 공세적 견제에 대해 중국은 대체로 소극적이고 수세적 대응을 해오고 있다. 아직은 미국에 정면으로 맞설 때가 아니라 생각하고 1980년대부터 전개해온 이른바 타오꽝양휘 (韜光養晦) 전략으로 묵묵하고 착실하게 힘을 기르고 있는 것 같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제기되어온 ‘중국 위협론’에 대해 ‘중국 기회론’으로 대응하는 한편, 2000년대부터는 ‘평화로운 부상 (和平屈起)’이나 ‘평화로운 발전 (和平發展)’을 내세우며 지역이나 세계에 위협적인 나라가 아니라 평화적인 국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해온 것이다.
 
예를 들어, 1999년 4월 클린턴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미국을 공식 방문한 주룽지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은 많은 핵무기를 갖고 있지만 중국은 매우 조금 가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전혀 위협이 될 수 없다. 중국은 미국에 가장 큰 잠재적 시장이지 위협이 아니다. 그러므로 ‘중국 위협론’은 ‘중국 기회론’으로 바뀌어야 한다. 물론, 미국의 노골적인 견제나 봉쇄에 대해 중국이 소극적인 대응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역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다.
 
1) 국방 및 안보 전략을 통한 대응
 
첫째, 앞에서 소개했듯, 중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1990년대부터 국방 예산을 크게 늘리고 있다. 중국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2004년 255억 달러, 2005년 299억 달러, 2006년 350억 달러, 2007년 450억 달러로 해마다 15% 이상 국방비를 늘려온 것이다. 군사비 지출 분야에서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의 발표대로 세계 4위 또는 아시아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미국뿐만 아니라 중립적인 연구 기관에서도 중국의 국방비는 공식 발표보다 훨씬 많으리라고 추정한다.
 
둘째, 이와 아울러 1999년부터 미사일 및 핵무기를 비롯한 전략 무기 증강에 초점을 맞춘 군사 현대화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1999년 11월 최초로 무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데 이어 2003년 10월엔 유인 우주선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으며, 2007년 1월엔 위성 요격 실험까지 성공하였다. 나아가 미국의 F16 전투기에 필적하는 최신예 전투기 젠10을 실전 배치한 데 이어 미국 어느 지역이든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둥펑 (東風) 31호’도 실전 배치하였다. 그리고 늦어도 2010년까지는 대규모 핵잠수함 및 항공모함을 만들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셋째, 중국은 미국의 대만 지원에 맞서 대만 독립을 저지하기 위하여 2005년 3월 반분열국가법 (反分裂國家法)을 제정하였다. 미국이 1979년 대만관계법을 만들어 대만에 지속적으로 무기를 판매하며 대만 문제에 개입해온데 반하여, 중국은 반분열국가법을 통해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며 대만과의 평화적 통일을 추구하되, 만약 대만이 어떠한 상황에서든 독립을 추진하면 반평화적 또는 무력으로 이를 저지할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2) 대외 관계를 통한 대응
 
첫째, 미국이 중국을 '잠재적 경쟁국'으로 간주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실시한 가장 대표적인 대외 정책이 일본과의 동맹 강화라면, 이에 대한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대응은 러시아와의 전력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한 것이다. 1996년의 미일 안보 공동 선언과 1997년의 미일 방위 협력 지침 검토에 관한 잠정 보고서에 대응하여 중국은 러시아는 1996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및 2001년 중러 선린 우호 협력 조약을 내놓았다. 두 나라가 미국과 일본의 패권 추구에 맞서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등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두 나라는 2004년 10월 국경 분쟁을 완전히 해결하였으며, 2005년 7월에는 21세기 세계 질서에 관한 공동 성명을 통해 미국 대외 정책의 현재 방향에 대한 전면적 반대를 선언하였다. 2005년 8월에는 중소 분쟁 이후 ‘평화 사명 2005’라는 이름 아래 최초로 중국 영토 안에서 대규모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하여 미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에 경고를 보냈다. 나아가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05-06년 사이 1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5번이나 만나 우호를 증진하며 군사 교류를 늘리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두 나라는 2007년에 이미 8차례의 합동 군사 활동을 벌였다.
 
둘째, 중국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인도와도 2005년 4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였다. 미일 동맹 강화에 맞서기 위해, 1962년 인도와 국경 문제로 전쟁까지 치른 뒤 43년간 지속된 불화 관계를 끝내고 흔히 ‘친디아 (Chindia)’로 불리는 중국-인도 시대의 문을 연 것이다. 나아가 2007년 5월에는 두 나라가 시기를 못박지는 않았지만 정기적으로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셋째, 중국은 상하이협력기구 (SCO)를 통하여 유라시아 및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력과 영향력을 줄이려고 시도해왔다. 이 기구는 중국의 주도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 등 6개국이 2001년 상하이에서 창설한 지역 안보 협력체로 냉전 시대 바르샤바 조약 (the Warsaw Pact)에 비유되기도 하고 ‘동쪽의 나토 (the NATO of the East)’로 불리기도 하는데, 지금까지 수 차례의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하며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예를 들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공 및 점령을 겨냥하여 상하이협력기구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일정을 밝히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나아가 상하이협력기구 6개국은 2007년 8월 '평화사명 2007'이라는 이름의 합동 군사 훈련을 가졌다. 2005년 8월엔 중국과 소련 2개국이 ‘평화 사명 2005’라는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하였지만, 2년 뒤엔 6개국 모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넷째, 중국은 세계 각처의 개발도상국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새로 추구하거나 강화해왔다. 특히 미국이 깡패 국가들로 부르는 북한 및 이란과의 밀접한 관계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면서 세계적 브로커 또는 지도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때때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력을 견제하면서 6자 회담에서 주도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해오는 한편, 이란과는 외교 및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지속적으로 협력을 강화해온 것이다.
 
새로운 냉전과 한반도의 평화 통일
 
위와 같은 미국의 대중 견제 및 봉쇄 그리고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과 관련하여 적지 않은 학자들과 언론인들은 ‘새로운 냉전 (A New Cold War)’ 또는 ‘제 2차 냉전 (The Second Cold War)’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펴왔다.
 
첫째, 요한 갈퉁 (Johan Galtung)은 미국이 1990년대 초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를 동유럽으로 확장하면서 1996년 일본과 공동 안보 선언을 하고, 이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가 1996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하면서 군사 협력 강화를 발표하자 제 2차 냉전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둘째, 방글라데쉬 신문 이테파크 (The Ittefaq)는 1997년 미국과 일본이 “일본 주변 지역”까지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공동 안보 선언을 발표하자, “미국과 중국 사이의 냉전”이 전 세계는 아닐지라도 아시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셋째, 앤드류 스몰 (Andrew Small)은 2005년을 제 2차 냉전의 첫해로 기록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중국이 미국의 견제 및 봉쇄에 맞서 2005년 3월 반분열국가법을 제정하고, 4월 인도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확립했으며, 7월 러시아와 21세기 세계 질서에 관한 공동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8월엔 대규모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했던 것이다.
 
물론 ‘냉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미국과 중국 사이의 냉전이 199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200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간주할 수 있으며,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냉전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 대립으로 좁게 정의한다면 미국과 중국이 지금까지 보여준 갈등과 경쟁은 냉전이 아니지만, 냉전을 정치 외교적 긴장 및 군사적 경쟁으로 넓게 정의한다면 미국과 중국 사이의 냉전은 1990년대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마누엘 파스트리크 (Emanuel Pastreich)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이나 경쟁이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 사이의 군사적 갈등과 비슷하기 않고 과거 미국과 영국 사이에 벌어졌던 세계적 시장 확보 경쟁과 비슷하다고 주장하였다. 냉전이라기보다는 한 나라가 세계 강대국으로 떠오르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갈등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가 미국-일본과 중국-러시아 사이의 대립이나 냉전으로 발전하든, 두 나라가 세계 초강대국 지위를 놓고 갈등이나 경쟁을 벌이든,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이나 경쟁 또는 냉전이 더욱 심화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전에 남북한이 평화 체제를 구축하고 통일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1. 중국 위협론과 '새로운 냉전' 속 한반도         (지지난호)
2. 중국의 급성장에 대한 미국의 견제와 ‘중국 위협론’(지난호)
3. 미국의 견제에 대한 중국의 대응과  한반도의 평화 통일 (이번호)

 
* 글쓴이는 원광대 교수로서 <남이랑북이랑>(http://pbpm.hihome.com)의 편집인이며, 본문은 소식지 103호(2007. 10월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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