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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국 급성장에 '위협론'으로 견제했다
[21세기 중국과 한반도 2] 미, 90년대부터 대외관계 통한 견제 및 봉쇄
 
이재봉   기사입력  2007/09/06 [19:38]
 2. 중국의 급성장에 대한 미국의 견제와 ‘중국 위협론’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과 군사력 증강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여온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늦어도 1990년대 초부터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국가로 간주하고, 크게 국방 전략 및 대외 관계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거나 봉쇄해왔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부터 나라 안팎에서 중국 위협론을 확산시켜 왔다.
 
 1) 국방 및 안보 전략을 통한 견제
 
  첫째, 1992년 4월 미국 국방부는 냉전 종식 이후 최초의 <방위 계획 지침>을 발표하면서 탈냉전 시대 미국의 대외 정책 및 국방 정책의 중요한 목표가 “새로운 경쟁국의 재등장을 막는 것”이라고 밝혀 중국에 대한 견제와 봉쇄를 예고하였다. ‘방위 계획 지침’은 국가 안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군사 전략을 개발하기 위해 국방부가 수년마다 마련하는 국방 지침으로,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잠재적 경쟁국들이 지역 강대국으로 등장하는 것부터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폴 월포위츠 국방부 정책 담당 차관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월포위츠 독트린’으로 불리기도 했던 초안이 1992년 2월 만들어져 주요 내용이 3월 <뉴욕 타임즈>에 보도된 뒤 거센 논란이 일자 백악관은 국방부에 수정을 요구하였는데, 딕 체니 국방부장관과 콜린 파월 합참의장의 감독 아래 다시 쓰여져 4월에 발표된 수정안엔 문맥만 부드럽게 바뀌었을 뿐 핵심 내용은 고쳐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초안엔 “우리의 제 1 목표는 새로운 경쟁국의 재등장을 막는 것”이라고 했지만, 수정본엔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목표는 침략을 저지하거나 패배시키는 것이며.... 셋째 목표는 어느 적대적인 국가가 우리의 이익에 치명적인 지역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으며, 미국과 동맹국들의 이익에 세계적 위협이 재등장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조금 고쳐진 것이다. 나아가 이 내용은 미국의 안보 정책에 지속적으로 반영되어 그로부터 10년 뒤 부쉬 독트린으로 널리 알려진 2002년의 <국가 안보 전략>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이 목표는 국방부장관이 1993년 1월 발표한 <1990년대를 위한 방위 전략>에 글자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 나타났다. 그리고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은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막대한 전략적 경제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데, 미국은 이 지역에 전진 배치된 병력을 충분히 유지하면서 균형을 깨뜨리는 군사 경쟁국의 등장을 막고 어느 적대 국가가 이 지역을 지배하려는 시도를 저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나아가 중국과는 현실주의적 바탕에서 관계를 진전시키는 한편 이와 동시에 대만이 자신을 방위하는데 필요한 군사력을 지닐 수 있도록 미국이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밝혔다.
 
  둘째, 백악관이 수년마다 발표하는 ‘국가 안보 전략’은 미국의 종합적인 안보 정책인데 여기에서도 해가 흐를수록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해왔다. 1996년 2월 백악관이 발표한 <개입과 확장을 위한 국가 안보 전략>에서는, 미국이 태평양 국가로서 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이 지역에 적극적으로 주둔하며 지속적으로 주도해나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중국은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대만의 안보에 기여할 것이며, 중국과 대만 사이의 문제들의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다.
 
  1999년 12월 발표한 <새로운 세기를 위한 국가 안보 전략>에서는, 21세기를 앞두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일본과의 공동 안보를 강조하며 일본에 대한 공격뿐만 아니라 “일본 주변 지역의 상황”에 대해서도 미국과 일본이 협조할 것을 밝혔다. 이 지침은 어떤 다른 나라를 직접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아래에서 다시 소개하듯,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대처하겠다는 뜻이 아닐 수 없다.
 
  2002년 9월 발표된 <국가 안보 전략>은 부쉬 행정부 최초의 공식적인 안보 정책으로 “미국의 대외 정책을 대담하고 종합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부쉬 독트린으로 널리 알려진 이 전략의 핵심 내용은 미국이 “잠재적으로 위험한 국가들”에 대해 냉전 시기에 개발된 경제 제재를 비롯한 봉쇄와 저지보다는 유일의 초강대국 지위를 이용하여 직접적이고 일방적인 군사 행동을 취하는 것이 가능하기도 하고 정당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만약 미국이나 동맹국들이 대량파괴무기 생산에 관련된 테러리스트들이나 “깡패 국가들”로부터 위협을 당할 가능성이 있으면 “선제 공격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어 다른 나라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안보 전략에서, 중국과 관련하여, 미국은 강력하고 평화로우며 번영하는 중국의 등장을 환영하지만, 중국이 민주적으로 발전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중국의 지도자들이 공산주의 유산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나기를 촉구했다. 아울러 중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주변국들을 위협할 수 있는 선진 군사력을 추구하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을 따르고 있다면서 대만의 자위에 대한 미국의 공약을 부각시켰다.
 
  2006년 3월엔 부쉬 대통령 두 번째 임기의 국가 안보 전략이 발표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중국에 대한 견제를 더욱 강조하였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의무로 국민의 안보를 지키는 것 다음에 냉전 시대에서처럼 세계를 나눌 수 있는 강력한 경쟁국의 재등장을 막는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구체적으로, 중국이 투명하지 않은 방법으로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거나 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에 대해 무조건 지원하는 것 등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과 세계에 불안을 심화하는 행위라며, 미국 및 다른 주요 국가들과 함께 세계의 안정과 안보에 기여해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그리고 대만과의 문제는 강압이나 일방적 행동을 취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다.
 
  셋째, 국방부장관이 4년마다 펴내는 ‘4개년 방위 검토 보고서’는 의회법에 따라 국방부의 전반적인 전략 계획을 담은 문서다. 냉전 종식 이후 최초로 작성되어 1997년 5월 발표된 <4개년 방위 검토 보고서>는 1997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을 방위하는데 필요한 사항을 근본적이고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물로, 2015년 안에 적어도 한 국가가 미국의 이익에 군사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의지와 수단을 갖게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지위를 2015년까지 유지하겠지만, 그 후엔 지역적 강대국이나 세계적 경쟁국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데, 러시아와 중국이 그런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명시하였다.
 
  2001년 9월 발표된 <4개년 방위 검토 보고서>는 미국이 가까운 장래에는 경쟁국과 맞서지 않겠지만, 지역적 강대국들이 미국의 이해가 치명적인 지역의 안정을 위협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특히 아시아에서 대규모 군비 경쟁이 일어날 것이라며, 방대한 자원을 가진 군사 경쟁국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하였다. 중국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6년 2월 발표된 <4개년 방위 검토 보고서>에는 노골적으로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였다. “강대국으로 등장하는 주요 국가들 가운데 중국이 미국과 군사적으로 경쟁할 가장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중국을 직접 지목한 것이다. 나아가 미사일 방어 체제 구축을 강조하였는데, 아래에서 자세히 소개하듯, 미국은 북한을 포함한 이른바 “깡패 국가”들의 미사일 개발을 구실로, 실제로는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여 미사일 방어 체제를 구축해오고 있다. 한편, 이 보고서는 2005년 3월에 발표된 <국가 방위 전략>을 토대로 하여 작성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 전략에서는 떠오르는 강대국들이 미국과 동맹국들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거나 주요 지역에 대한 지배를 추구함으로써 미국의 이익을 위협할 수 있으리라고 주장하였다.
 
  넷째, 이 밖에 2001년 9.11 이후 세워진 군사 전략의 일환으로 작성되어 2001년 12월 의회에 보고된 <핵 태세 검토 보고서>나 주한미군 기지 이전 및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을 끌었던 2004년 6월의 <세계 방위 태세 검토>에서도 중국에 대한 견제를 늦추지 않았다. 먼저 ‘핵 태세 검토 보고서’에서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을 포함한 이른바 “깡패 국가들”에 대해 핵무기로 선제 공격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는데, 즉각적으로 무력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사례로 이스라엘에 대한 이라크의 공격, 남한에 대한 북한의 공격, 그리고 대만에 대한 중국의 공격을 꼽았다.
 
  그리고 ‘세계 방위 태세 검토’에서는 미국이 아시아에 해군과 공군을 추가로 전진 배치하는 한편, 일본과 한국의 군사 기지들과 사령부들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역적으로나 세계적 교전이 가능하도록 통합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냉전 시대엔 소련과 북한을 겨냥하여 휴전선 근처에 육군 중심의 주한미군을 전진 배치하였지만, 앞으로는 중국을 겨냥하여 서해안 쪽으로 해군과 공군 중심의 주한미군을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다섯째, 중국에 대한 견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국방 및 안보 전략에서 새롭게 주목할만한 점은 국방부장관이 2000년부터 해마다 중국의 군사력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의회에 제출한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가 국방부장관으로 하여금 현재와 미래의 중국 군사 전략에 관해 앞으로 20년 동안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규정한 국가 방위 위임법을 2000년에 제정하였는데, 인민해방군의 군사 기술 개발, 중국의 안보 전략과 군사 전략, 대만 해협의 안보 상황 등을 다루도록 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 성장과 이에 따른 군사력 증강에 관해 미국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먼저 2000년 6월 의회에 제출된 최초의 보고서는, 중국의 선택이 미국의 힘을 상쇄하기에는 제한적이지만 중국의 안보 정책이 미국의 안보 정책과 지위에 대해 정치적으로 도전하는 방향으로 점차 나아가고 있다며 경계하였다. 예를 들어, 그 무렵 러시아와 함께 유엔 회원국들이 미국의 미사일 방어 개발을 비난하는 유엔 결의안을 지지하도록 성공적으로 로비를 벌였다는 것이다. 나아가 중국이 대만과 남지나해 등에서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지역 안보 전략을 추구하며 아시아에서 지배적인 강대국이 되려고 한다고 밝혔다.
 
  2003년 보고서에서는, 중국이 2002년 12월 발표한 방위 백서가 중국군의 규모나 수준 그리고 예산 등에 관해 거의 밝히지 않는 등 내용이 불투명하다고 주장하며, 중국의 방위비 지출인 공식 발표보다 세 배 이상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중국에 보내는 미국의 군사 교환 대표단에게 중국은 시범 부대만 보여줄 뿐 상급 부대나 작전 훈련 또는 실제 연습 등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의 보고서들은 중국이 세계적 야망을 가진 정치 경제 강대국으로 급성장하는 것이 동아시아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하면서 인민해방군이 중국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단기간의 고강도 전쟁에서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준비하며 현대화를 추진한다고 분석하였다. 중국군의 현대화는 1990년대 중반부터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하려는 방안까지 염두에 두고 추진하는데 단기적으로는 대만 독립을 저지하는데 초점을 맞추며 유사시 미국의 개입에 맞설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것이다.
 
  특히 2006년과 2007년 보고서에서는 2006년의 <4개년 방위 검토 보고서>를 인용하며 “중국이 미국과 군사적으로 경쟁할 가장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며, 머지 않아 중국의 군사력 증강이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포함한 대만과의 충돌을 준비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나아가 자원이나 영토분쟁을 포함하여 다른 지역에서의 충돌도 준비하는 등 중국의 군사 확장이 이미 지역의 군사 균형을 깨뜨리고 있다며 전략적 군사 현대화의 속도와 폭에 경계심을 나타냈다.
 
  여섯째, 위와 같은 국방 및 안보 전략 가운데 중국을 겨냥하여 아마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정책은 미사일 방어 체제 구축일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1994년부터 당시 공화당이 지배하는 의회의 압력에 따라 미사일 방어 체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냉전 시대인 1983년 레이건 행정부가 소련을 겨냥하여 입안했던 “전략 방위 구상” 또는 이른바 “우주 전쟁” 계획을 냉전 종식 이후 중국을 겨냥하여 실행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1996년 3월, 2003년까지 제한적인 미사일 방어 체제를 구축한다는 <미국 방위 법령>이 미국 의회에 제출되었지만 표결에 부쳐지지는 않았다. 어느 나라든 2010년까지는 미국을 미사일로 위협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정보 보고가 1995년 11월 나온 데다 막대한 비용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1998년 7월 미국이 2010년 이전에 미사일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수정된 정보 보고가 나오고 1998년 8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자, 1999년 미국 의회는 미사일 방어 체제 구축에 관한 법령을 통과시키고, 클린턴 대통령은 이에 서명했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 종료를 몇 개월 앞둔 2000년 9월, 미사일 방어 기술이 부족하고 러시아와 중국이 거세게 반대하는 데다 우방국들까지 우려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이를 진행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2001년 1월 부쉬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미사일 방어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그의 공약을 확인했으며, 2001년 5월 국방대학교에서의 연설을 통해 국가 안보 정책을 밝히며 이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미사일 방어 체제를 일본과 공동으로 구축하기 위한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왔다. 클린턴 행정부도 1996년 4월 발표한 <미일 안보 공동 선언>을 통해 미사일 방어 체제 구축을 위해 두 나라가 지속적으로 협력하기로 다짐했지만 큰 진전은 없던 터였다.
 
  예를 들어, 미국과 일본 두 나라의 외교 및 국방 장관들의 모임인 미일안보자문위원회는 2002년 12월 미사일 방어 기술에 관한 공동 연구를 계속하며 미사일 방어에 관한 자문과 협력을 강화할 것을 합의하였다. 그 이후 열린 수 차례의 미일안보자문위원회에서 이를 거듭 확인해온 가운데 2007년 5월 열린 자문위원회에서는 두 나라가 미사일 방어 체제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구축하는 과정에서 전술적이고 전략적인 공조를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기로 합의했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2006년 11월 및 2007년 4월의 미일 정상 회담에서도 양국의 안보 협력 방안을 검토하며 특히 미사일 방어 분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2) 대외 관계를 통한 중국 견제 및 봉쇄
 
  첫째, 미국이 중국을 “잠재적 경쟁국”으로 간주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1990년대부터 실시한 가장 대표적인 대외 정책은 일본과의 동맹 강화일 것이다. 그 첫 산물이 1996년 4월 발표된 <미일 안보 공동 선언>이다. “21세기를 위한 동맹”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선언의 핵심 내용은 냉전이 끝났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곳으로 남아있으니 두 나라 사이의 동맹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비롯한 군사력 강화, 해결되지 않는 영토 분쟁, 잠재적 지역 갈등, 대량 파괴 무기 확산 등을 불안정의 요인으로 꼽으면서 미사일 방어 체제 구축에 지속적으로 협력하기로 한 점은 중국을 공개적으로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중국을 견제하며 압박한 것이었다.
 
  이 선언의 내용은 다음 해에 조금 수정되어 더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1997년 6월 발표된 <미일 방위 협력 지침 검토에 관한 잠정 보고서>에서 양국 군사 동맹의 가장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뿐만 아니라 “일본 주변 지역의 상황”에 대한 효과적 대응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일본 주변 지역”이란 대만도 포함하게 되므로 이는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가상하여 미국과 일본이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참고로, 이에 대해 중국은 거세게 반발하였고 주변 국가들에서는 일본의 군비 강화 및 무력 개입 가능성을 우려하였다. 그리고, 뒤에서 자세히 소개하듯, 해외의 한 언론은 이에 대해 “미국과 중국 사이의 냉전”이 시작된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2005년 2월엔 처음으로 미국과 일본의 “공동 전략 목표”에 대만을 포함시킴으로써 공개적으로 중국을 압박하였다. 두 나라는 대만 해협에 관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중국 군사 업무의 투명성 향상을 공동 전략 목표에 포함시킨다는 내용의 미일안보자문위원회에서 공동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또한 두 나라의 외교 및 국방 장관들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지속적인 도전 행위가 예측하기 어렵고 불확실한 상황을 자아내고 있다며 이 지역에서 일고 있는 군사력 현대화에 주의를 기울이기로 하였다.
 
  이에 덧붙여,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수단으로 일본의 재무장을 막고 있는 ‘평화 헌법’을 수정하여 ‘정상 국가’가 되도록 촉구하는 한편,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다. 예를 들어, 콜린 파월 국무부장관은 2004년 8월 일본을 방문하여 고이즈미 수상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이 세계 무대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기 바라면 헌법 9조의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쉬 대통령은 2006년 6월 고이즈미 총리와 정상 회담을 갖고, 미국은 일본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될 수 있도록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새로운 세기의 미일 동맹”이란 공동 성명문을 발표하였다.
 
  둘째, 미국는 일본과의 동맹 강화에 이어 대만에 대한 지원을 통해서도 중국을 견제하거나 봉쇄해 왔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서 가장 민감하고 갈등을 불러일으킨 주제는 대만에 관한 문제였다. 미국과 중국은 1972년 2월 “샹하이 공동 코뮤니케”를 통해 중국은 오직 하나이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데 합의하였다. 그리고 1978년 12월 “외교 관계 확립에 관한 공동 코뮤니케”에서 이를 재확인하면서, 미국은 대만과의 국교를 단절하고 대만에서 병력과 군사 시설을 철수하는 대신 중국은 미국인들이 대만인들과 비공식 접촉을 지속하는 것을 인정하였다.
 
  한편, 1979년 봄 미국 의회는 미국 정부가 대만 방위를 위하여 대만에 지속적으로 무기를 공급하도록 요구하는 <대만 관계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미국이 대만에 무기 수출을 늘리자 1981년 중국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여 8개월 간의 협상 끝에 1982년 8월 세 번째로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에 관한 공동 코뮤니케”를 내놓게 되었다. 여기서 미국은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수준을 점차적으로 낮추는 대신 중국은 대만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와 거의 동시에 미국은 대만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대만 지도층에게 비밀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약속을 하였다. “미국은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종식 일자를 정하지 않고, <대만 관계법>의 내용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며, 대만의 주권에 관한 지위를 바꾸지 않고, 대만에 대한 중국의 주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대만 사이에 이러한 미묘한 관계가 지속되다 1995-96년 세 나라 사이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하였다. 1995년 5월, 클린턴 대통령이 의회의 압력에 따라 리덩후이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을 허용하자, 중국은 이에 항의하여 1995년 7월 주미대사를 소환하고 대만 근해에서 군사 훈련을 실시했으며, 1996년 2-3월 대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미사일 발사까지 포함한 군사 훈련을 확대 실시했다. 이에 미국은 중국에 경고를 보내고 대만 근해로 항공모함 2척을 급파했다. 중국은 하나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 통일은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을 증명한 것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국교 정상화 이후 가장 아슬아슬했던 그리고 두 나라 사이에 무력 충돌까지 일어날 뻔했던 위기였던 것이다.
 
  대만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에 더 심각한 위협은 미국이 앞에 소개한 미사일 방어 체제를 구축하는데 일본뿐만 아니라 대만까지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만은 미국의 주도 아래 미사일 방어 체제를 구축하기로 결정하였는데, 2004년 이를 위해 153억 달러를 특별 방위 예산으로 책정하였다. 이와 아울러 미국이 2007년 현재 대만에 첨단 미사일을 판매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셋째, 미국은 국제 사회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는 정책을 통해서도 중국을 견제하였다. 1993년 7월, 미국 의회는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중국의 2000년 올림픽 경기 유치를 거부하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는데, 두 달 뒤 열린 올림픽 개최지 결선 투표에서 베이징은 시드니에 43대 45로 졌다. 미국은 투표권을 행사한 88개국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지만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고려하면 미국 때문에 중국이 올림픽 경기를 유치하지 못한 것이 명백하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 및 군사력 증강에 의한 위협보다는 1989년 6월의 티엔안먼 (天安門) 사태를 비롯한 인권 탄압을 이유로 삼았지만, 중국의 급부상에 따른 견제 심리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넷째, 위와 같은 대외 정책과 아울러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과 연구자들 및 언론인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외에서 ‘중국 위협론’을 확산시키며 미국 정부와 의회에 중국을 견제하도록 촉구해왔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은 2000년 기고한 논문에서 중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정에 “잠재적 위협”으로, 클린턴 행정부가 불렀던 “전력적 동반자”가 아니라 “전략적 경쟁자”라고 주장하였다. 포토 고스 중앙정보국장은 2005년 2월 상원 정보위원회 증언에서 중국의 향상된 군사력이 대만 해협에서 힘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고 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부장관은 2005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 4차 아시아안보회의 기조 연설에서 중국의 급속한 군사력 증강이 주변 국가들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죤 네그로폰테 국가정보국장은 2006년 2월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중국이 급속하게 떠오르는 강대국으로서 세계적으로 꾸준히 확장하여 곧 미국의 경쟁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증언하였다. 이 밖에 주로 네오콘들을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과 언론인들이 ‘중국 위협론’을 확산시키며 미국 정부의 강력한 대응책을 촉구해왔다.

1. 중국 위협론과 '새로운 냉전' 속 한반도         (지난호)
2. 중국의 급성장에 대한 미국의 견제와 ‘중국 위협론’(이번호)
3. 미국의 견제에 대한 중국의 대응    (다음호)
4. ‘새로운 냉전’과 한반도의 평화 통일
 
* 글쓴이는 원광대 교수로서 <남이랑북이랑>(http://pbpm.hihome.com)의 편집인이며, 본문은 소식지 102호(2007. 9월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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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9/06 [19: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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