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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조중동 수구언론의 리모콘인가
윤부총리의 고무줄 철학과 철사 소신
 
양문석   기사입력  2003/05/04 [10:47]
윤덕홍 교육부총리는 취임사에서 "교육부를 없애고 돌아오면 가장 훌륭한 장관’이라고 말한 지인이 있었고 교육부무용론을 주장한 정치가도 있으며 관료 중 시대감각이 가장 뒤떨어진 게 교육관료라는 얘기도 있다"며 취임사를 풀었다. 또 "교육부는 장관 뺑뺑이 돌리고 바지저고리 만드는 곳이며 6개월 뺑뺑이 돌면 뭐가 뭔지 모르고 다음달쯤 장관이 바뀐다는말을 했다"며 "뺑뺑이 돌리거나 바지저고리를 만들지 말고 함께 교육문제를 풀어가자" 일갈했다.

이런 윤부총리가 불과 2개월도 몇 안된 시점에서 기존의 철학과 소신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다. 윤부총리의 최근 행각을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취임사에서 밝혔듯이 교육부를 없애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교육부가 학교교육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반전평화교육마저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통일된 교안과 지침을 내리겠단다. 갑자기 철권통치시절로 교육부가 되돌아가는 것같다.

민주당 국회의원인 박상천씨가 야당시절에 '특별검사제'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국민의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맡은 후 특별검사제를 반대하면서 "소신이 바뀌었다"며 기존의 주장을 철회한 적이 있다. 한데 윤부총리는 소신이 변했다는 고해성사도 없이 표변해버렸다.

3월7일. 서울대 공익법인화 주장에 대해 "임명 이전에 교수로서 개인 생각을 얘기한 것"라며 발을 빼며 "서울대와 국립대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면 검토해볼 수 있는 방안이 아니냐는 의견을 밝힌 것"이라고 변명했다. 교수시절에는 심각했던 서울대와 국립대 문제가 장관시절에는 덜 심각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3월8일. 윤부총리는 8일 '교육 현안 중 NEIS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라디오 사회자의 질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유보해야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일주일만에 이 주장을 뒤집는다. 3월13일, 윤부총리는 NEIS 중단 발언에 대해 "언론보도는 장관이 아닌 교수로서 개인의 입장을 밝혔던 것"이라고 변명한 것이다.

3월17일. 현행 6(초등)?3(중학)?3(고교)?4(대학) 학제를 5(초등)?5(중등)?3(대학) 학제로 개편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한데 이것도 며칠 안가 "현 학제가 50년간 유지됐기 때문에 이제 20년, 30년을 내다보고 장기적으로 학제에 대해 연구, 검토할 시기가 됐다는 개인 생각을 말한 것"라고 변명했다.

4월로 접어들면서 윤부총리는 교수시설과 전혀 딴판의 새로운 인간이 되어 나타난다. 예를 들어 국무회의에서 전교조의 '공동수업자료집' 내용을 두고 "일부내용이 폭력성·혐오감·잔학상을 필요 이상으로 부각시키는 등 자라나는 학생들로 하여금 미국에 대한 적대감이나 반미감정을 은연중에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교육의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한다.

일단 그 논리의 부실함과 억지에서 '교수출신이 맞나'하는 의구심을 일으키고, 장관의 자리에 올라서 발언한 것이 문제되면 교수시절에 생각했던 것을 밝힌 것이라며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가. 일차적으로 윤부총리의 고무줄같은 철학과 철사같은 소신이다. 교육운동에 헌신했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다르게 권력을 잡으면서 모래 위에 지은 성곽처럼 허무하게 무너지는 철학과 소신에 대해 부끄럼을 느끼기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다. 이런 모습에서 명망을 쌓으려는 자들의 '틈새'시장인 교육운동을 하지 않았나 하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이며, 결코 변명해주고 싶지 않은 비판이다.

다음으로 윤부총리를 철사로 만들고 고무줄로 만들어버린 언론의 보도태도다. 하기야 개인이 확고한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있다면야 크게 문제될 것도 없지만, 출세과정에서 갖었던 철학과 소신이라면 언제든지 손바닥을 뒤집듯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언론이기 때문이다.

3월7일 취임후 한 3일간 쏟아낸 윤부총리의 교육관련 발언은 이미 지칠대로 지친 한국교육현장에 단비와 같은 역할을 했고, 갈라진 논 바닥에 흘러들어가는 소낙비의 시원함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과 3일천하로 막내렸고, 거기에는 조선일보나 동아일보같은 수구언론들의 대대적인 공세가 있었다.

3월10일 조선 동아의 사설을 보면 '성급한 말 잔치', '불안한 입', '어설픈', '말을 아껴야', '경솔한 처사', '전교조 주장에 손을 들어'와 같은 표현은 윤부총리의 전의를 꺽을 만하다. 또 학교장자살사건에서 전교조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수구언론의 보도태도를 목격하면서 충분히 겁먹고 수구언론쪽으로 줄서기의 필요성을 느겼을만하다.

수구언론들은 개혁에 반드시 발목을 잡는다는 내부원칙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 개혁은 이들의 딴지를 돌파하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된다. 한데 문제는 이들의 딴지에 굴복하는 윤부총리같은 이들이 장관직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철학도 소신도 없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수구언론의 목소리는 강화되고 수구언론의 목숨은 또 연장된다. / 논설위원

* 필자는 언론학 박사로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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