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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가슴에 타들어 온 별똥별
故 권정생 선생을 기억하며
 
염신규   기사입력  2007/06/15 [15:27]
권정생 선생의 생전모습 ⓒ 월간 작은책
▲ 권정생 선생의 생전모습 ⓒ 월간 작은책

초등학교 1학년 때일 것이다. 이제 막 글을 깨치고 책 읽기에 빠져서 손에 닿는 각종 동화책을 삼키듯이 읽어댈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주로 그림이 많고 글이 적은 책을 중심으로 읽었지만 점점 깨알만한 글씨가 가득한 책들을 읽어댔다. 밤에 잠도 안자고 책을 읽다가 부모님께 혼난 적도 적지 않았다. 상대적으로는 지금에 비해 어린이들에게 놀거리가 적던 시절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동화책과 위인전을 미친 듯이 읽던 어느 날 그전까지 읽던 일반적 동화책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의 동화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전까지 읽었던 동화들은 주로 천진난만한 소년, 소녀들이 꿈 같은 세계에서 겪는 환상적인 모험담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당도 있고 아슬아슬한 위험들도 있었지만 결코 체감될 수 있는 난관이나 고통이 아니었다. 악몽이 아무리 무서워도 깨고 나면 그만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동화책의 이야기들은 그렇지 않았다.

명확하게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화’가 아닌 ‘소년소설’로 분류되었던 故 권정생 선생의 창작집 『사과나무밭 달님』의 세계는, 물론 전혀 겪어보지 못한 과거의 일들이긴 했지만 대부분 실제 역사적 상황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고 지난했던 한국 근대사의 아픔들이 개인들에게 가했던 상처들을 담고 있었다. 한센인이 되어서 가족과 생이별을 겪는 젊은 가장의 이야기(‘해룡이’), 피난간 사람들의 옷을 입었다가 빨갱이로 몰리는 노파(‘똬리골댁 할머니’), 저임금 노동자가 되서 이국땅을 떠도는 일제 치하의 사내(‘공 아저씨’) 등 외부로부터 강제된 한국 근대의 잔인한 어둠 속을 버텨야했던 민중들의 슬픔과 애환이 다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강한 충격을 주었던 작품은「별똥별」이었다. 당시 이 단편을 서너번 반복해서 읽고 무척 슬프게 울었다. 희미한 기억을 떠올려 보면 대충 이 작품은 고향의 소꼽친구로 태어나서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며 사랑을 나누던 남녀가 한국전쟁과 월남전 등을 겪으면서 각자 파괴되어가는 이야기다. 동화적 은유와 상징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소녀는 양공주가 되고 소년은 도시 빈민으로 편입되었다가 월남전에서 전사하게 되는 게 이 작품의 줄거리다. 물론 당시에는 근대사에 대한 지식이 전무 하다시피 한 연령이었기 때문에 작품이 다루고 있는 내용에 대해 추상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지만 막연하게나마 역사의 수레바퀴에 훼손당한 개인의 존재와 사랑이 느껴졌고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 때 그 느낌은 사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별똥별」 이후, 더 이상 동화나 소년소설을 읽지 않을 나이가 될 때까지 내내 권정생 선생님의 열렬한 팬으로 살았다. 아니 그런 나이가 되서도 권 선생님의 책은 가끔 읽었던 것 같다.『몽실언니』처럼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작품도 좋았지만『초가집이 있던 마을』 같은 작품을 특히 좋아했다. 역시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이 작품은 카톨릭 계통의 어린이 잡지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연재 당시에는『해와같이 달과같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국전쟁을 겪는 어느 평범한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소년들의 우정과 갈등을 그린 작품이었는데 소년들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전쟁 발발과 함께 마을에서 시작된 이념 대립이 전쟁 이후까지도 남아서 사람들을 반목하게 만드는 상황을 보여준 문제적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권 선생님의 작품 세계가 모두 이렇게 어둡고 무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대중적 인지도 높은『강아지똥』같은 작품에서 특히 두드러지기도 하지만 선생님의 대부분 작품에는 생명과 인간에 대한 낙관이 전제로 깔려있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스스로 자신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존재에 대한 믿음은 선생님이 실제로 살았던 너무도 험난한 인생 여정에 비춰보자면 역설적이기조차 하다.『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의 경우 권 선생님의 실제 삶이 가장 전면적으로 드러났던 작품이다. 주인공인 종지기 아저씨는 선생님 자신을 모델로 하고 있는데 (권 선생님은 젊은 시절 전신 결핵을 앓으신 이후 평생 병고와 가난에 시달리시며 시골 교회에서 종지기 생활을 하셨다) 가난과 고통스러운 삶을 웃음과 낙관으로 승화시키는 달관과 해학의 세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권정생 선생의 예술적 업적을 평가하는 것은 문학평론가들의 몫일 것이다. 필자는 그저 권 선생의 일방적 팬일 뿐이며 27년 전「별똥별」처럼 어린 소년의 가슴에 파고들었던 선생님의 작고 소식에 도저한 슬픔과 한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다시 생각해보니 여전히 권 선생님이 꿈꾸신 세상이 무엇인지 미처 다 듣지 못했다는 게 무엇보다 한스럽다. 신문기사 식으로 얘기하자면 “한국 아동문학의 거성”이 지셨고 필자의 개인적 소회를 밝히자면 “인생의 가장 큰 스승”을 잃었다.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 동족을 위해 /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테고 / 대포도 안 만들테고 / 탱크도 안 만들테고 / 핵무기도 안 만들테고 / 국방의 의무란 것도 /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테고 / 그래서 /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 잃지 않아도 될테고 / 젊은이들은 / 꽃을 사랑하고 / 연인을 사랑하고 / 자연을 사랑하고 / 무지개를 사랑하고 /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 더 많은 것을 아끼고 / 사랑하며 살 것이고 / 세상은 아름답고 / 따사로워질 것이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 권정생


* 필자는 민예총 정책기획팀장입니다.


* 본 기사는 민예총 컬처뉴스 (www.culturenews.net) 에서 제공했으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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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6/15 [15:2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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