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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고질병 드러낸 버지니아 공대 참사보도
[언론비평] 사생활과 명예훼손에 오보 자행, 사과한 언론사는 하나 없어
 
김철관   기사입력  2007/05/13 [23:10]
학생과 교수를 포함해 32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참사 사건이 지난 4월 연일 보도됐다. 그중 범인으로 지목된 고 조승희 씨와 그 주변을 둘러싼 보도가 주류를 이뤘다. 지금은 조금 잠잠해진 모습이다.
 
당시 분향소가 설치된 미국 버지니아 대학 캠퍼스에서는 조문 행렬이 끈이질 않았다. 추모 촛불집회도 있었다. 우리 명동 성당, 새문안교회 등에서도 분향소가 설치돼 조문객들의 애도가 뒤따랐다. 지난 4월 21일 저녁 서울 시청광장에서도 버지니아 참사 추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국적을 떠나, 잘잘못을 떠나 고인을 추모한다는 것은 동·서양할 것 없이 인간이 갖고 있는 아름다운 미덕이다.
 
진정국면에 들어서면서 참사사건 수사도 차분히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현재 버지니아주 경찰은 고 조승희 씨가 어떻게, 왜 그랬는지 등 범행 규명에 수사력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신문 지면이나 방송 화면을 통해 난리 법석을 떨었던 냄비 언론의 근성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언론의 고질적 병폐인 냄비 근성의 보도를 보면서 언론의 역할을 생각해봤다. 언론은 무엇보다도 객관성, 정확성, 보편타당성이 생명이다. 그리고 사실과 진실에 입각해야 한다.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도 유의할 대목이다. '돌다리도 두들기면서 건너라’는 말은 언론을 두고 하는 말인지 모른다. 특히 사건사고 기사는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검증과정을 거쳐 보도해야 한다.
 
▲조선일보의 조승희 씨 관련보도. 사건의 배경이나 사회적 문제는 도외시 한 채 희대의 살인마로 묘사하고 있다.     ©조선일보 4월 20일자 PDF

하지만 버지나아 공대 참사사건 보도는 언론사간의 속보경쟁으로 점철됐다. 언론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망각한 듯 보였다. 외신을 인용한 모 신문과 방송은 처음 범인을 중국계 학생으로 보도했고. 이후 한국국적의 학생임이 밝혀졌다.
 
모 언론은 사건 직후 ‘고 조승희 씨의 부모가 자살했다’고 보도했다. 이것도 엄연히 오보이다. 이 뿐만 아니다. 조씨가 한국에서 지하방을 살았다느니, 누나가 공부를 잘해 더 소외됐다느니 등의 보도로 사건과 아무 관련 없는 가족(누나 등)의 사생활을 들췄다.
 
가족의 명예훼손은 물론 사생활을 침해한 것이다. 동생으로 인해 충격을 받았던 누나의 이름을 익명 아닌 실명으로 보도한 언론도 있었다. 이런 보도가 나간 직후 조씨 가족은 실명으로 AP통신을 통해 사과성명서를 발표했다.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진실한 사과였다. 사과성명문 문안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이제 일체 개인의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언론들에게 가족의 사생활을 보장하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설령 살인을 저지른 사람도 법정 판결에 의하지 않고서는 무죄라는 것이 법리해석이다. 이것을 법치주의 무죄추정의 원칙이라고 한다. 직접 가해자가 아닌 가족들이 죄를 지은 가해자처럼 연결시키는 보도는 삼가 했어야 했다.

이번 언론보도에 있어 특히 또 하나 지적할 점이 있다. 언론사들은 시청자와 독자의 알권리 차원이라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경솔한 상업주의적 경향의 보도형태다.
 
미국 NBC 방송은 입수한 고 조승희 씨의 육성 동영상을 여과 없이 내보내 미국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우리 방송과 신문, 인터넷 미디어 또한 마찬가지였다. 미국 NBC 방송의 보도된 내용을 입수해 그대로 보도했다. 총구를 겨누고 있는 조씨의 사진이나 육성 동영상을 거리낌 없이 인용했다. 상업성과 특종의식에 사로잡혀 조씨의 황당무계한 주장을 그대로 방영한 우를 범했다.
 
이런 보도는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또 다른 아픔을 준 것일 뿐 아니라, 판단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에게 모방범죄와 같은 폭력 학습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했어야 했다.
 
언론은 사건 직후부터 차분히 지켜보고 냉정한 보도태도를 가져야 했었다. 조금 더디더라도 객관적이고 정확하고 보편타당한 보도, 진실하고 사실적 보도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부화뇌동했다. 쓸데없는 속보경쟁으로 오보와 왜곡보도를 양산했다.
 
오보를 일삼아도 지금까지 어느 언론사 하나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떳떳한 사과 한 마디 없다. 아니면 말고 식이다. 특히 거짓정보로 거짓여론을 형성하게 한 언론사를 상대로 반론을 제기한 시청자와 독자도 드물다.
 
앞으로 미래 사회가 걱정된다. 잘못된 언론을 바로 잡기위해서는 언론 소비자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언론사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가야 한다. 정의사회 구현은 언론소비자들인 국민이 발 벗고 나설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언론소비자운동이 존재해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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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5/13 [23:1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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