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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는 계속되어야 한다
[디지털문화의 쟁점들] 인터넷 유료화
 
문화연대   기사입력  2003/06/15 [21:04]
어느 날이었던가
지극히 복고적인 이미지로 초코바를 먹던 소년이 엉덩이를 흔들며 묻는다.
"아버지! 내가 누구에요?"
그러나 근엄해야 할 아버지는 "나두 잘 몰러"라는 깨는(?) 대답과 함께 씨익 웃는다. 그리고 바로 그 아버지는 다시 등장하여 이렇게 말했었다. "나두 공짜가 좋아!" 그리고 한 술 더 떠 "세상을 다 가져라(공짜로)"라고…

얼마 전 외계인에게 살해당한 이 아버지의 유언이 최근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다. 제법 그럴 듯했던, 자본주의의 가장 보편적인 법칙을 가로지르며 공짜 문화의 새 역사를 만들 것 같았던 인터넷이 유료화라는 갈등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중앙일보( http://www.joins.com )가 진행한 인터넷 유료화에 대한 설문조사에 참가한 네티즌의 95%는 "현재 사용하는 사이트가 유료화 될 경우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답변했으며, 여타의 사이트에서 진행된 설문에서도 평균 80% 이상이 유료화 반대를 명확하게 표명하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더 이상 공짜는 없다"파 와 "공짜는 계속되어야 한다"파. 그러나 역시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도 명확하지도 않다. 더욱이 이러한 이분법에 근거한 논란은 유료화를 둘러 싼 담론의 거품만 재생산하고 있다. 왜냐하면 극단적인 이분법에는 언제나 과장 혹은 비약과 오해가 많기 때문이다.

먼저 가장 큰 비약은 "사용자의 비용 부담 원칙을 파기한 공짜 문화 때문에 디지털 경제가 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주장의 배후에는 무의식적으로 사용자들이 인터넷에서 공짜의 혜택을 받아왔다는 전제가 내재돼 있다. 하지만 이는 주객이 전도된 해석이다.
즉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공짜 문화의 확산은 사실 사용자의 혜택이나 기업의 배려였다기보다 '원숭이와 짚신'의 우화를 응용한 기업의 전략이자 선택이었을 뿐이다.

"너구리가 어느 날 원숭이에게 짚신을 선물한다. 물론 공짜로. 그리고 그 선물 공세는 계속된다. 원숭이의 발바닥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공짜에 눈이 어두워 짚신을 애용하던 원숭이는 어느 날 짚신이 없으면 돌아다닐 수 없는 처지가 된다. 하지만 너구리는 이제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하며 짚신에 대한 비용을 원숭이에게 요구한다. 결국 원숭이는 짚신을 얻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다 사용하고 결국 너구리의 노예가 된다"

이 우화를 기업들은 실천했을 뿐이고, 이 교훈은 인터넷 이전부터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인 마케팅으로 활용되어 왔다.따라서 유료화에 대한 결정은 언제나 기업의 선택권이지만, 역설적으로 유료화 서비스에 대한 선택권은 사용자들의 권리다. 머리 좋은, 혹은 유능한 너구리가 되지 못한 것이 원숭이의 책임은 결코 아닌 것이다.

더욱이 재미있는 것은 유료화의 근거로, 과거 산업사회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 사용자 부담의 법칙 등을 강요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며칠 전까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특성을 강조한 후 물질 폐위론에 근거하여 신 경제를 설파하기에 바빴던 사람들이다. 즉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탈 물질적이기 때문에 산업사회와는 달리 지식과 정보에 기반한 무형의 이윤 창출이 가능하다", 또는 "디지털 패러다임에서는 절대 물건을 팔아 돈을 벌려고 하지 말라. 공짜의 위력을 통해 사용자를 모으고, 이를 통해 광고비와 주가를 올리는 브랜드 효과가 디지털 경제의 새로운 법칙이다"라며 무수한 출판물을 쏟아 냈다.그리고 이를 근거로 디지털 경제는 산업사회와 자본주의의 상품 교환법칙을 허물고 공짜 세상을 선언했다. 국제전화도 공짜, e메일도 공짜, 각종 프로그램 내려받기도 공짜, 심지어 보너스 상품까지…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했던가. 불행히도 디지털 경제의 신봉자들이 믿어 의심치 않은 새로운 법칙은 기업뿐만 아니라 사용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무한 복제성은 콘텐츠에 대한 초기 노동력의 투자와는 달리 클릭 한 번이면 새로운 생산물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즉 산업사회의 상품(물질성에 근거한)에 내재되었던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와서 사용가치만 가지게 되고, 교환가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자본주의의 상품 교환법칙은 중대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막의 오아시스로만 보였던 디지털 경제의 네트워크 효과와 잠김 효과가 의도와는 달리 공짜 문화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댄다고 해서, 안면과 입장을 확 바꾼 후 뒤늦게 산업사회의 상품 교환법칙을 준수하라고 외치는 것은 억지에 불과한 것이다.도끼를 믿은 것도, 찍힌 발등도 바로 자기 자신이니까.

결국 유료화는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경제법칙에 따라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될 것이다. 아무리 기업들에게 유료화가 유일한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설득해 봤자 결국 각자의 주판알 결과에 따라 선택될 것이고, 아무리 네티즌에게 공짜 문화에 대한 어설픈 도덕주의적 비난에 기대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봤자 본전도 못 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화려한 경제용어로 도배된 채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인터넷 유료화냐? 공짜냐?"는 또 다른 거품 담론에 불과하다.
기업에게는 "어떻게 유료화 할 것인가?"라는 절대로 쉽지 않은 절대 절명의 숙제가, 네티즌이나 소비자에게는 "어떻게 공짜를 활용하여 주머니를 두둑하게 할 것인가?"라는 생계 운영의 현명함만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디지털 경제의 새로운 변화도,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가기 위한 새로운 전략도, 인터넷 강국이 되기 위한 새로운 과제도 아니다.
정보사회에 뒤처진 네티즌 문화나 왜곡된 인터넷 문화, 그리고 공짜에 눈 먼 세상 탓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언제나 존재해 온 자본주의의 냉정한 "게임의 법칙"이었을 뿐이다. "안 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못해서 안 하는 것"인 셈이다.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 협약을 맺은 문화연대에서 발행한 주간문화정책뉴스레터 '문화사회' http://culture.jinbo.net/ 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 필자는 문화연대 이원재 정책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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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6/15 [21:0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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