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방미 외교는 굴종적이기만 했나?
[시사만화째려보기] 노무현을 위한 변명
 
이광렬   기사입력  2003/06/15 [19:58]

98년 외환위기 직후 집권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가적 위기 상황을 맞아 체면 불구 자존심 불구하고 외국 순방길에서 적극적인 세일즈 외교에 나선 바 있다. 당장 거덜나기 직전의 나라 한번 살려보겠다고 거의 구걸하다시피 하며 처절하게 “한국 좀 사가라”며 외자유치에 나섰던 것이다.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갖춰야 할 자존심 같은 것은 일찌감치 내버린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더러 굴욕적이라고 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대통령이 위기에 빠진 나라를 살리려 체면을 벗어던지고 노력하는 것이 눈물겹다 했을 뿐이었다.


▲2월24일<내일만평>     ©김경수

 그로부터 5년 뒤인 지금도, 안타깝지만 마찬가지로 위기상황이다. 한반도 전쟁 위기론이 증폭되면서 경제까지 타격을 받는 이중고라는 점에서, 어찌 보면 오히려 IMF 위기 때보다도 더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98년 외자를 구걸해야 했던 김대중 정부나, 오늘날 한반도 평화보장을 구걸해야 하는 노무현 정부 사이에 별 차이는 없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의 구걸에 대해선 유난히 ‘굴욕’의 목소리가 드높다. 노대통령에게 배신감을 느꼈다는 울분의 소리와 그가 변절했다는 아우성, 더러는 그가 ‘친미 사대주의자’라는 매도까지 난무한다.

 지난 한주의 시사만화들에는 이러한 비판 여론을 반영하거나 혹은 더 나아가 주도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개혁 성향의 시사만화들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혹은 비난)으로 일관했고, 내내 노무현 정부에 적대감을 드러내던 신문의 만화들은 한편으로 의아스러워 했고 한편으로는 끝내 냉소를 흘렸다.


▲5월15일<조선만평>신경무  

 <조선만평>은 5월 13일자에서, 미국에 우호적 자세를 보이던 노 대통령을 보고 “‘노’ 맞아?”라며 의아해 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빌어 노대통령의 방미 행보에 대한 조선일보의 의아함을 전하고 있다. 이 만화는 이후에도, 연일 계속되는 노무현의 친미발언을 칭찬하지도 그렇다고 비판하지도 못하는 애매한 처지를 그림으로 옮겼다. 조선일보의 의아함은 15일자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부시에게서 “허위보고”로 질책받는 미 기관들을 그리고 있는 이 만화는, 노대통령의 대미 성향 평가에 자신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만다.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 하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만화에서 거론하는 문제의 “허위보고서” 출처가 조선일보라는 점이다. 그것이 정말 “허위보고서”였다면 조선일보도 저들 옆에서 머리박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5월16일<나대로선생> 이홍우    


 <나대로선생>이 설정한 일관된 기준은 오로지 친노대 반노인 듯 하다. 이 만화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언행에 대한 평이 아니라, 오로지 노무현 개인에 대한 반대만이 존재한다. 친미를 하든 반미를 하든 <나대로선생>은 노무현이 싫다는 식이다. 가령 5월 14일자나 16일자 <나대로선생>은 노무현의 이중성에만 강조점을 찍을 뿐, 구체적 내용에 대한 비판이 존재하지 않는다. 16일자에서는 “부사모”를 거론하며 노무현의 친미 경향을 문제삼는 듯 보이지만, 이게 평소 “강자 편들기”하면서(3월 22일자) “부사모”적 성격을 공공연히 드러내던 <나대로선생>이 할 소리인 것 같지는 않다. 노무현이 하면, 자기가 박수치던 일도 밉게 보이는가 보다. 해괴한 기준이다.


 한편, 진보적 성향으로 그동안 노무현 정부와 ‘코드’를 맞춰오던 시사만화들이 이번 노대통령의 방미행적에 대해 내리는 비판의 강도는 실로 가차없는 것이었다. 시사만화들은 노대통령의 미국내 발언을 “굴욕”으로 인상깊게 시각화하며, 여론이 대통령의 방미 외교를 “햇볕정책”에 대한 사형선고를 내린 것으로, 또는 미국에 “맹목적인” “구걸”을 한 것으로 각인케 하는데 일조하였다. 이들 시사만화들의 비판 수위는 가혹하다 여겨질 정도다.

 

▲5월15일<김용민의그림마당> ©김용민

5월 14일자 <매일희평>은 노대통령이 “구걸 수준 친미외교”로 부시를 기고만장하게 만들고 있다고 평한다.  5월 15일자 <경인만평>은 노무현 대통령의 친미 발언을 단칼에 “맹목적 친미발언”으로 단정한다. 같은 날 <김용민의 그림마당> 역시 미국 정상 구두를 닦아주는 한국 정상의 모습을 통해 굴욕적 인상을 강조한다. 5월 17일자 <장도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남북정상회담 뒤 노벨상을 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에 빗대어 “No밸상”감이라고 비꼬고 있다.


 가혹한 비판의 강도는 정상회담 이후에 더 강해졌다. 15일자 <한겨레그림판>은 대통령이 한반도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격하시켰다고 통탄해 한다. 15일자 <부일만평>과 16일자 <국민만평>은 같은 ‘디즈니랜드’ 발상으로 노대통령을 단순히 미국에 놀러간 철없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5월15일<부일만평>     ©손문상

 이들 시사만화들에서 느껴지는 아쉬운 점은 대통령의 정상회담 외교가 굴종적이고 친미적이었다면 왜 그러했는지에 대한 통찰을 하려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 만화들은 대통령의 단선적인 발언 내용과 표현들을 그저 자존심에 근거해 평가함으로써, 그 언행의 배경과 이유에 접근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언행이 굴욕적이라는 표면적 사실에만 포커스를 맞춤으로써, 시사만화들은 아무런 실익과 이유 없이 미국에 알랑방귀나 뀌어댄 맛이 살짝 간 존재로 대통령을 그리고 있다. 이들 만화들로만 파악한다면, 대통령은 분명 정신 나간게 틀림없다. 아무런 이유 없이 미국에 아부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5월14일<매일희평>     ©김경수

 그런데 그렇게 상황이 간단치 않으니 문제다. 정치인 노무현이 미국에 잘 보이려고 했다면 진작에 미국에 잘 보였을 일이었다. 미국에 놀러가고 싶었다면 정치 인생 15년 사이에 그 흔한 외유 한번 떴음직도 했다. 자연인 노무현이 한 발언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 발언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들 하지만, 난 도리어 그것이 대통령 노무현의 발언이기에 이해의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왜 노무현이 대통령씩이나 돼서 안하던 짓을 하겠느냐는 얘기다.


 문제는 한국의 의지와 상관없이 악화 일로에 치닫고 있는 북한 핵 문제의 존재다. 세계 여론의 냉담한 반응이나 북한의 으름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라크 침략 이후 미국의 오만함은 현재 미국의 단독 북폭 가능성을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이고 있다. 미국 북한 할 것 없이 강경한 분위기를 주도하는 양측에 의해 남한 정부의 입지가 대단히 좁아진 것 또한 사실이다. 여기서 당면한 한반도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당장 남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대관절 무엇이겠는가? 미국의 북폭 가능성과 북한의 강경 노선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5월15일<경인만평>     ©김상돈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의 강경 여론 주도층에 의해 ‘반미인사’로 분류되고 그 결과 한국이 미국의 맹방이 아니라는 결과에 도달할 경우, 미국의 북폭 시나리오는 한층 손쉬워질 수가 있다. 또한 북한이 핵무기 보유설까지 흘리며 고도의 협상전략을 펴고 있는 마당에서 남한 정부가 다양한 협상 카드를 쥐고 있지 못할 경우, 끝내 남한은 북한 핵문제의 변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두 가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해 한반도 긴장을 풀고 경제 불안까지 걷히게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과시하는 것뿐이다. 그것은 미국에 한국이 그들의 맹방임을 확인시켜 줘 쉽게 한국을 저버리지 못하게 만들고,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 정부도 다양한 대응책을 갖고 있음을 강조해 위험천만한 협상을 진행시키지 못하게끔 하는 두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5월15일<한국만평>     ©배계규

 저간의 상황을 속속들이 다 이해하며 비판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사만화가 선동의 도구가 아닌 바에야, 표피적 내용만 가지고 흥분만 할 게 아니라 그 배경 파악을 통해 통찰력을 기울이는 노력 정도는 필요한 것이 아닐까? 물론, 시사만화의 좁은 지면에 논리적 배경까지 다 실어 나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5월 15일자 <한국만평>의 경우처럼, 최소한의 배경 파악 노력 자체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잃어버린 명분에만 흥분하지 말고 어떤 실리를 챙길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시선을 돌려야 하지 않았을까? 조금은 더 냉철한 시사만화일 수는 없었을까? 지난 한 주의 시사만화들을 보면서 들었던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필자 이광렬은...

단국대 영문과 졸업. 한겨레신문 등에 만화를 투고 했다. 본 매체에 [시사만화 째려보기]를 연재하는 그는, 영화와 문학을 막론하고 다양한 분야를 섬렵하며 신랄한 비평을 하는 열성적 문화 탐식가이기도 하다. 
시사만화를 분석함에 있어 기존 시사만화비평가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형식/미학적 접근을 함과 동시에 글의 리듬이 솔직하고 젊다는 것이 장점이다.  

실제로 만화 창작작업도 하는 그는 작가의 환경과 실상에 대해서 잘 아는터라 간간이 보여지는 비전문가의 허투루 넘겨집는 실수의 경우가 드물다.   만화와 글로 앞날을 개척중.

현재 카툰저널 뉴스툰(http://www.newstoon.net/)에서 시사만화째려보기코너를 담당하고 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3/06/15 [19:58]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