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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와 개혁, 스웨덴 총선 관전법
[국제논단] 중도우파연합의 승리는 시장의 강조아닌 개혁의 수용에 있어
 
송준모   기사입력  2006/09/20 [01:55]
지난 17일 스웨덴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우파에게 있어서는 12년만의 쾌거이다. 사민당은 스웨덴 복지모델의 위기를 예언하고 중도우파연합은 시장주의를 통하여 복지를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를 모토로 내세우던 스웨덴식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에 시장주의적 메스가 가해진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현재로서는 예상하기 힘들다. 한가지 예상 가능한 것은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스웨덴 사회는 결코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스웨덴 사회는 총선을 통하여 루비콘 강을 건너버렸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배역은 시간이 정해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유럽 한 국가의 선거결과에 그치지 않는다. 전세계의 좌파와 우파 모두가 이 작은 국가의 선거결과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의 대다수는 스웨덴의 선거결과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쯤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예전부터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논쟁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예시는 바로 스웨덴이었다. 그렇다면 복지국가의 궁극적 형태에 가장 가까웠던 스웨덴의 ‘실패’ 는 신자유주의의 승리와 복지국가의 종말을 의미하는가.
 
스웨덴과는 꽤나 먼 이국땅에서 벌써 축배를 올리고 있는 세력들이 보인다. 이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복지국가는 실패하였으니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자고 한다. 하지만 정작 승리의 당사자인 스웨덴 중도우파연합은 복지국가의 ‘개혁’ 을 이야기하며 비교적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개혁과 전환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현재 제기된 안건만 보더라도 부분적인 수치상의 조절만 있을 뿐이지 근본적 제도의 철폐는 논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복지국가의 실패를 의미한다면 수정자본주의 역시 자본주의의 실패로 간주하여야 할 것이다. 극단적 지점의 부정이 전반적 경향 전체의 부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각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서 모든 이념의 실패를 읽는 이들은 많지 않다.
 
체제의 폐해는 수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집권세력이 스스로 수정하지 않는다면 반대세력에게 수정을 맡기는 것은 민주국가에서는 당연한 이치이다. 어디선가 축배를 올리고 있는 이들은 술에 취하기 전에 국어사전부터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복지국가의 실패는 수정이 전환으로 바뀌었을 때 논해도 늦지 않다.
 
오히려 이번 총선 결과는 복지국가와 좌파가 스웨덴에 착실히 뿌리를 내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수치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수치상으로만 보아도 호들갑을 떨 정도의 ‘패배’ 로 보이지는 않지만 스웨덴 중도우파연합 승리의 주역인 신온건당의 레토릭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보수당에서 신온건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정책을 좀 더 온건하게 바꾸는 등의 변형과정을 거쳐서야 간신히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세계의 어떤 보수정당이 노동자의 정당을 표방하겠는가. 이들이 집권에 성공한 것은 기존의 사민주의 헤게모니에 자신들을 맞추는 정상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이 승리는 보수당이 아닌 신온건당의 승리라고 보는 것이 맞다. 결국 중도우파연합은 승리를 하였지만 좌파의 게임을 수용하였고 그 틀 안에서만 승리할 수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은 우파연합은 좌파의 게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들이 헤게모니 다툼 없이 좌파가 제시한 아젠다만을 따라가기에 급급한다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게임에서 패배하게 될 것이다. 스웨덴 국민들은 이들이 복지국가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고 그들에게 투표하였다. 이들이 좌파의 게임을 수용하지 않고 본격 신자유주의 정당을 표방하였다면 과연 몇 %나 득표하였을지 궁금하다.
 
현재는 이렇게 사민주의의 틀이 확고히 형성되어 있지만 과거 자유당과의 연정 시절에는 사민당이 자본주의의 틀에 갇혀서 지지부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등의 인물들이 주도한, 자유당과의 대결을 불사한 틀을 깨는 투쟁에 힘입어 결국 오늘날의 복지국가 스웨덴이 탄생하였다. 이번 총선은 사민주의 헤게모니의 공고함을 재확인 시켜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스웨덴 사민당의 아버지인 얄마르 브란팅이 오늘날의 총선 결과를 본다면 탄식을 할 것이다. 그동안 헤게모니에 안주한 좌파 세력이 무기력함을 내비치며 자신들의 원동력이였던 투쟁을 게을리하였다면 이번 선거결과를 계기로 좌파는 다시 민중의 광야로 나가 모든 불평등과 부조리에 맞서 투쟁하여야 한다. 좌파가 기존 헤게모니에 안주한다면 신자유주의가 스웨덴을 망쳐놓기 전까지는 이들에게 돌아오는 표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먼 이국땅인 한국의 좌파들도 이 기회에 스웨덴 사민당의 역사와 그동안의 행보를 살펴보고 검토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야 노동자 정당의 제도권 진입을 이루어낸 사회에서 복지국가의 실패를 열심히 떠드는 일부 언론의 스웨덴 때리기에는 신경쓰지 말자. 스웨덴 사민당은 우리에게 있어 반면교사의 의미보다는 모범이 되는 측면이 더 많다. 물론 투쟁의 결과에 안주하여 궁극적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해야겠지만, 복지국가의 실패라는 우파의 레토릭에 말려드는 것은 자멸을 초래하는 일이다. 스웨덴사민당의 실수는 복지국가 자체가 아니라, 복지국가에서 멈추어 버린 것이다. 임노동자기금이라는 정책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이 사회에서 복지국가 이후의 대안제시를 주문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은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우파가 집권한 스웨덴이 어떤 길을 걷는가 지켜보는 일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당분간 우파가 독자적 노선을 걷기는 힘들겠지만 그들이 헤게모니 대결을 시작한 후가 문제이다. 우파가 대결을 통하여 헤게모니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면 좌파의 게임에서 벗어나 자의적인 아젠다를 설정할 것이고 이는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가능하게 한다. 충분한 힘을 얻은후의 우파는 개혁에 그칠 것인가 배를 갈아탈 것인가.
 
스웨덴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함인 바사호 박물관이 있다. 이는 스웨덴의 국력이 융성했던 바사왕조 통치기에 당시 세계 최대의 규모로 건조하였지만 진수식 때 원인을 알 수 없이 침몰했던 전함 바사호를 인양하여 전시해놓은 것이다.
 
스웨덴 사민당은 과거 바사왕조 못지 않은 번영을 구가하였지만 아직 침몰한 배를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새로이 집권한 중도우파연합이 복지국가라는 낡은 배를 수리하는 것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 체제로 배를 갈아탄다면 스웨덴이라는 국가 역시 바사호와 같은 운명을 밟게 되리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치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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